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 Jun 12. 2021

아빠의 첫 돈 공부

아빠 초등생 아들딸에게 알려주는수준의 시장경제 맛보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이 근 20년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급여생활로만 가정을 꾸리시던 부모님 아래서 정직과 성실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배우고 '열심히'만 살아온 저는 사실 '경제개념'이 없었습니다. 절약과 저축이 미덕이고, 과소비와 대출, 보증 등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것들을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경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우리 시장경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런 생각과 이해가 없었던, 즉 경제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수십 년을 급여로만 살아오시면서, 작지만 젊은 시절 마련한 자가에서, 한 동네에서 쭉 사시면서 부동산 투자도 없으셨고, 주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은퇴를 얼마 남기시지 않은 올해가 되어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혼하고 별도의 경제적 주체를 꾸려나간 지 근 15년이 되어가면서 저도 부동산은 은퇴 전에 마련해야 하는 일종의 '거처'라고 생각할 뿐이었고, 잘 알지 못하는 주식은 '도박'의 영역이라고 여기고 있었죠. 부모님께서 젊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할까요.


 매달 벌고, 일정 금액을 떼어서 적당히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이 하는 만큼' 미리 떼어 저축하고, 돈을 쓰고, 남는 돈이 있으면(거의 없었지만) 조금 더 모으고, 모자라면 마이너스 통장에서 미리 끌어 쓰고 그랬습니다. 몇십 만원씩 큰돈을 넣는 첫 상품이 '건너서 아는 형의 후배'가 추천해주는 종신형 변액보험이었으니 말 그대로 돈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20대에게 그런 상품을 파는 사람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차트 하나 글 한귀 이해하고 따져보지 못했던 제가 더 한심할 따름입니다.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된다고 할까요. 닥치면 하게 되는 것일까요. 취업 후 쭉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10년 전에 서울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는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사택에 거주하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집을 구하려고 하니 막막했습니다. 서울 끝자락 변두리 지역까지 나갔는데도 그전에 살던 20~30평 규모의 아파트에 살려고 하니 몇억이 훌쩍 넘었습니다. 근 10년을 부어오던 변액보험 해약을 비롯해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돈을 끌어모으고 나니 1억 도 채 안되더군요. 게다가 문제의 변액보험은 실질적인 수익률이 0%에 가까웠습니다.


 가용한 금액으로 가능한 집들을 와이프가 발품을 팔아 찾고 찾은 끝에, 언덕 기슭에 있는 아파트 1층에 전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널찍하긴 했지만 언덕 아래 있어서 해가 안 들고, 습한 시기면 곰팡이도 많이 생기는 집이었죠. 똑같이 급여생활을 했는데 차곡차곡 잘 모으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대출을 잘 공부하고 이용해서 원하는 지역과 환경에 자가를 마련한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보면서, '아, 내가 잘 모르면 똑같이 열심히 일해도 다른 결과가 생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난잡하게 아무런 목적 없이 흩어져있던 돈들을 '전세금'으로 정리하고, 조금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100만 원의 5% 이율이면 5만 원, 하룻저녁 삼겹살에 소맥 안 먹으면 될 금액이었지만, 1억의 5%면 500만 원, 얼추 한 달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거든요. '10억이 있으면 매달 급여만큼의 소득이 생기겠구나, 나는 결국 통장에 묶인 10억 정도의 가치를 하고 있을 뿐이었구나'라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십수 년을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한 하나의 인격체인 제가, 통장에서 숨만 쉬고 있는 아무 생각 없는 돈보다 더 가치가 없다니 제 스스로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해가 지나고 저도 제 집이 필요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절차 연습 삼아 인근 신축 아파트 청약을 신청해 보았습니다. 남들이 다 넣어야 한다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넣어놨던 십수 년 된 청약통장을 써보기로 한 것이죠. 다들 공부하고 시도하기보다, 질러놓고 나중에 공부한다고들 하는데,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운 좋게도 추첨제가 아직 살아있던 당시에 아파트 분양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이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더군요. 탈탈 털어 정리한 돈으로 분양금 일부는 해결이 되지만, 상당 부분은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절대 악이라고 여기고 있던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렇게 저의 돈 공부는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서평에 앞서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 책을 보니 그 몇 년 전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아직 저의 경제개념 쌓기, 가정의 경제적 문제 해결하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 경제서적, 재테크 서적을 탐독하는 것이고요. 


 이 책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돈'이 갖는 의미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목은 '아빠의 첫 돈 공부'이지만, 이미 각종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룬 저자 박성현 씨는 본인의 첫 돈 공부에 대한 글을 적기에는 너무 멀리 오시지 않았을까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살펴보니, 아빠가 했던 돈 공부를 자녀들에게 알기 쉽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내용에도 자녀들과의 대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 책은 당장 눈 앞의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전반적인 개념을 다루면서,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글을 수필의 형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보다는 '감정'이랄까요. 지난달에 읽었던 브라운스톤님의 '부의 인문학'이 성인을 위한 경제개념 서적이었다면, 이 책은 비슷한 내용들을 초등학생도 볼 수 있을 수준까지 끌어내려서 추린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옆길로 새자면, 부의 인문학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의 어려운 이론을 실제 우리가 손에 다루고 있는 투자 수준까지 끌어내려 쉽게 설명해준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대학원생들이나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을 고등학교 사회수업을 들은 사람들까지 끌어내린 것이 '부의 경제학'이었다면, 이 '아빠의 첫 돈 공부'는 그 내용을 또 추려서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여느 재테크 서적처럼 공격적이지 않아 읽기가 편안했습니다. 일부 책은 표현도 공격적이고, 투자에 대한 접근도 공격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이 책에서도 노동을 통한 급여생활자/자영업자를 '노예'라고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노동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로 좌우 시야를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노예'라는 표현은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나른한 주말 아침, 주말 독자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지난 시간을 반성해볼 수 있는 소중하고 소소한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만 살아왔던 제 자신에 대해, 앞으로는 '무지하면 그것 또한 잘못이다'는 충고를 새길 수 있었습니다.




8.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지금껏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무지한 채 열심히만 살았던 것이다.


21. 쉽게 말해, 시간을 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한 그들은 모두 노예일 뿐이다.


34. 그 선택이 없었다면, 나는 좀 더 인정받는 노예가 되기 위한 승진과 임금 상승 등을 위해 내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을 게 틀림없다. 돈을 좀 더 많이 받는 노예 역시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87. 돈을 그저 노동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편협함을 버리지 않는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97. 한 우물을 파면, 결국 하나의 우물만 갖게 될 것이다.


103. '신용카드가 있으면 돈을 헤프게 쓰게 되니, 체크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는 결국 '족쇄를 차고 있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노예나 할 소리다.


108.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수일 것이다.


117. 수학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데 사용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인간의 능력이라는 건 무한하지 않다. 따라서 잘할 수 없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신 보다 중요하고 유익한 지식을 얻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지혜롭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133. 내가 원하는 건 부자가 아니라 자유였기에, 자칫 돈의 노예가 될 수도 있는 투자 대상은 피하고 싶었다.


146. 국가가 화폐 시스템을 이용해 나의 노동력을 손쉽게 사용했던 것처럼, 내가 소유한 화폐를 도로 가져가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219. 치킨 회사를 사는 일, 즉 치킨 관련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치킨집을 차리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간단하고 쉽다. 직접 치킨을 튀길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 앞에서 언급했던 막대한 투자금과 영업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주식을 사는 행위만으로 치킨 산업의 발전에 따른 이익을 고스란히 받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중략) 공부와 노력을 통해 주식 투자의 메커니즘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치킨을 튀기고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경쟁에 노출되는 위험보다 치킨 관련주에 투자하는 위험이 훨씬 작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251. 경제적 자유의 핵심은, 쓰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버는 돈보다 더 적게 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돈을 많이 벌고 적게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294. 부자들의 조언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처럼, '누군가에게는 맞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틀린' 이야기일 때도 많다.



이전 01화 부의 인문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