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나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더 본격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라는 이야기
의도한 바는 없지만 서가 비슷한 곳에 꽂혀있던 엇비슷한 제목의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책은 '퇴사 학교'였는데, 당장 회사를 뛰쳐나가라는 내용보다는, 자발적 퇴사든, 권고사직이든, 정년은퇴든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한 번씩은 겪을 수밖에 없는 '퇴사'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에서 살펴본 책이었습니다.
연달아 읽은 이 책도 '퇴사 학교' 만큼이나 제목이 도발적입니다. '나는 회사를 해고한다.' 주체가 다르기는 하지만 회사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는 상통하죠. 하지만 두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서는 '회사로부터 해고당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남아 나의 회사생활 지속 여부를 회사가 아닌 내가 결정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어떻게 하면 더 회사생활을 잘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는 것이죠. 강렬한 제목은 역설을 위한 복선이었을까요. 제목에서 예상되거나 기대되었던 내용과는 사실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놀랐습니다.
책의 저자는 국내 대기업을 거쳐 외국계 기업 임원에 이르기까지 소위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성공한 분'입니다.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에서 일을 하다가, 본사로 발령 나서 독일 현지에서 열심히 적응하던 중,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고 나서 '해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책 전반에 걸쳐서 '잘 나가는 선배'가 해주던 '라떼는' 시리즈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데자뷔처럼 겹칩니다.
요즘은 워낙 귀에 쓴소리를 하면 '꼰대'다 '라떼'다 하면서 그 내용과 의도와는 무관하게 비하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나 의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이 책은 2015년도에 쓰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그간 사람들의 인식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열심히 잘해라'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책들의 많은 내용이 얼마 전에 읽었던 '그릿(https://www.facebook.com/readlibros/posts/137197768386533)'에서 강조하는 부분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외국 교수가 TED 강연장에 나와서 '어려운 일일지라도 열정적으로 견디고 헤쳐나가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나랑 별 차이 안나는 것 같은 몇 년 지기 선배나 그냥 우리나라 보통 아저씨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면 잔소리로 그치게 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문화적 사대주의 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후광효과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자에게 정확한 메시지가 전달이 되지 않을 때에는 분명 화자의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사회생활 16년, 언제부턴가 보고를 드려야 되는 분들의 숫자보다 보고를 받아야 하는 후배들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나가는 동시에, 어떻게 해야 이러한 메시지를 후배들에게 '꼰대스럽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책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 스스로가 성공적으로 회사생활을 하기 위해 해야, 회사로부터 해고당하지 않고, 제가 주도적으로 커리어를 관리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들이라면, 분명 후배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무리 좋은 약이라 스스로 필요하기 전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입에 쓴 이상한 물건일 뿐이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연구하고 학습한 것이 아니라면 가슴에 남지 않겠죠. 몇 년 전에 읽었던 'Excuse me: the survival guide to modern business etiquette'(번역서: 태도의 품격)이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꽤나 회자가 되었었는데, 기성세대들에게 신세대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Excuse Me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사회생활 예절 생존 가이드'입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90년 대생들에게 '어르신들하고 잘 지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입사 면접 첫 질문으로 연봉이나 휴가를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는 것들이었죠.
오늘 읽은 '나는 회사를 해고한다', 이 책은 앞서 읽었던 '퇴사 학교'보다는 'Excuse Me(태도의 품격)'에 더 가까운 책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는 회사를 해고한다'의 타깃 연령층이 40~50대인데 비해, 'Excuse Me(태도의 품격)'의 타깃은 20~30대로 서로 대결구도에 있는 세대에게 엇비슷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을 돌려서 보면, 세대를 막론하고, 태평양 동편과 서편을 막론하고,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다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요.
7.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내가 주변 환경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커리어를 갖추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20. 하지만 그렇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오히려 냉철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22.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중략) 원제 그대로를 직역하면 '여기까지 당신을 오게 한 것이 저기까지는 데려다줄 수 없다'인데, 책의 맥락에 맞춰 의미를 파악하면 '지금까지의 성공 비결이 앞으로의 성공 비결이 될 수는 없다' 정도가 될 것이다.
25. 윈스턴 처칠은 '해고란 매우 효과적으로 감추어진 신의 축복'이라고 했다.
32. 그러나 잘라보기도 하고 잘려보기도 한 내 입장에서 보는 진짜 커리어의 위기는 해고 통보 자체가 아니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다 보니 해고라는 작은 변수에 전혀 대응책도, 나아갈 방법도 모른다는 점이다. 점점 더 듣기 불편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조직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맷집을 잃는다. 코피가 나도록 얻어터져도 보고, 다운도 당해 보고, 그랬다가 다시 일어서도 보면서 단련돼야 하는데,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특별한 변화나 도전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 오히려 안락사로 이어진 꼴이 됐다. 안정된 울타리 안에 보호받으며 살기를 바라다보니 긴 커리어 여정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 살인적이지도 않은 자근 펀치 한 방에 KO 패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42. 첫째, 회사생활을 잘해야 한다. 우선 회사 안에서 무조건 살아나야겠다는 다짐을 하자.
47. 하지만 어제의 위대한 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듯 한두 번 핵심인재로 대우받았다 한들 그 자체가 오늘날의 고용시장에서 보험 역할을 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물며 실제 핵심인재도 아니면서 잘 나가는 부서나 요직에 잠시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또 중요 프로젝트에서 한두 번 참여했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면 이는 정말 심각하다.
52. 화려하지는 않지만 멀리 그리고 오래 뛰는 것. 그렇게 되려면 과거의 내 모습과 이별하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시작하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최고 Number One'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동료와 조직에게 그리고 시작에서 김용수 선수처럼 오랜 시간 동안 신뢰받을 수 있는 '한 사람 Only One'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58. 의미를 부여하기 애매한 자식 사교육이나 유흥비에는 생각 없이 돈을 쓰면서도, 자기 계발을 위해 책 한 권 사는 데는 벌벌 떠는 코미디 같은 인생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59.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성장한 이유는 보장보다 기회를 택했기 때문이다.
66. 그러니 절대 기죽어 지내지 마라. 옴츠러들 필요도 없다. 의식적으로 당당하고 즐겁게 많이 미소를 지어라.
90.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상사의 태도다. 상사로부터 같은 메시지가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상사가 계속 되풀이해 지적한다면 첫 번째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상사 입장에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일인데도 본인은 괜한 시비나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조종 범한다.
94. 따라서 회사 역시 개인 못지않게 노력하고 애써야 하지만, 해고라는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울 때 그 일시적인 비극의 주인공이 된 우리는 '회사의 책임과 몫'이라는 주제에 목을 매서는 안된다.
97. 원칙과 철학을 잊지 않고 본분을 망각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자기를 잘 관리하고 많은 연습을 한 후 무대에 오른 배우가 관객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101. 돌다리를 너무 많이 두드려서 결국엔 깨뜨린다. 도무지 모험이나 위험 감수 등을 할 각오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 외에는 시킬 일이 별로 없다. 이제 그 일마저 인턴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넘겨주는 것이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뒷담화를 좋아한다. 사실 이런 경우 똑똑한 베테랑 인사 전문가들은 그냥 내버려 둘 때가 많다. 대개 제 풀에 지치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들은 직원들 상에서조차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다. (중략) 법적인 권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동료나 상사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를 하겠다고 구두로 통보를 했다. 사직서를 곧 낼 것이라 예상했던 즈음에 돌연 육아휴직을 1년간 사용하겠다고 요청했다. 벌써 세 번째 휴직 신청이다. 장기 휴직을 떠나면서 짧게 문자메시지로 다녀오겠다고 몇 글자 남겼다. (중략) 그간 많은 직원들이 그녀의 업무를 분담해 업무에 펑크가 나지 않도록 했다. (중략) 이런 경우 국가에서 보장하는 권리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천국이라고 하는 유럽에서도 이런 직원은 없다. 권리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소속감과 책임감은 갖춰야 한다.
107. 첫째, 조직 내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이라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조금 더 담담한 마음을 갖게 할 것이다.
110.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시면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등의 말로 설득시키려 들지 마라. 당신을 재신임했을 때 회사가 얻게 될 가치를 객관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중략) 어설프게 '스리 쿠션'을 치지 마라. 어설픈 로비를 하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의사 결정권자로 하여금 결심을 굳히게 만드는 사람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세월이 아무 흘러도 정직과 성실을 넘어설 무기는 없다. 정치적인 역학관계 때문에 당신을 아군으로 끌어드리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복잡한 사내 정치판에 들어서는 것은 좋지 않다. 진정한 프로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라.
130. 시간의 속성이라는 것이 참 묘한 데가 있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분주하게 삶을 보낼 때는 실제로 너무 바빠 운동, 독서, 관심 분야 공부 등 자기 계발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막상 실업 상태에 놓여 시간이 넘쳐나도 그간 못했던 많은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예가 다반사다.
131.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공부와 생활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략) 운동도 마찬가지다. 애써 시간을 내 운동하려 들지 말고 생활 속에서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거나 평소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버릇을 들이자.
145. 무조건 잘해주고 칭찬만 하며 기다려주는 상사가 결코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런 상사가 훗날 최악의 상사로 재평가받을 수도 있다.
152.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라. 시키는 일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 이상 바로 시행하고 결과를 보여줘라. 이것이 되지 않을 경우 두 가지 부류 가운데 하나로 판정받는다. 진짜 무능한 사람이거나, 끝까지 개기는 사람이거나.
159. 그렇게 손만 뻗으면 가져갈 수 있는 좋은 무료 서비스는 놓치면서, 회사 밖의 프로그램(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은)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참가한다.
161. 최근 몇 년간 내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 중 특히 중년층이 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이 시대가 중년이 살기에 벅차다는 방증일 것이다.
164.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근무 시작 시간보다 40분에서 1시간 전 회사에 도착해 일을 시작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은 절대 아니다. 단지 헐레벌떡 출근해 쫓기면서 업무 하기보다는, 일을 조금 더 차분학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간적,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중략) 또 회사에 있는 동안 웬만하면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한다. 특히 붐비는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다른 층으로 이동할 일이 생기면, 짜증 내며 기다려야 하는 엘리베이터보다는 예측 가능한 시간 내에 내 의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계단을 선택하곤 한다. 초년 매니저 시절에 고수 선배들은 이런 말을 해주곤 했다. "너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라. 그렇지 못하면 곧 다른 사람이 너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175.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오고, 돌다리도 너무 두드리면 깨진다.
191. 끝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안에서든 밖에서든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퇴사해야겠다는 소리는 절대 하고 다니지 마라.
217. 실력 있는 후배들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중략) 특히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인 연공서열 때문에 후배들을 함부로 막 대하는 경우가 있다. 명심하라. 그들이 앞으로 회사의 요직을 맡을 사람들이며, 바로 얼마 후에 우리가 고개 숙여야 할 '슈퍼 갑'이 될지도 모른다.
224. 소리 없는 영웅들을 배려하고 챙겨주어라. 회사의 리셉션에서 근무하는 직원, 보안요원들, 주차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청소하는 분들, 비서 등 음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자.
227. 불합리하게 모든 일을 떠맡게 되는 상황은 옳지 않지만,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의 일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경솔하다.
228. 자꾸 옛날만을 회상하려고 한다면, 빨리 사표 내고 옛날 회사로 복귀하는 것이 서로의 행복을 위해 좋은 일이다.
235. 일을 하느라 가끔은 점심을 거르기도 하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할 때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무엇보다 하루 한 번은 내가 믿는 신에게 회사의 더 큰 성공을 간구한다.
238. "학생들이 수업 후나 방학 중에 무슨 일을 하는가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 학생이 우등생이 될지 아닐지, 졸업 후 취업 때문에 고생할지 말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257.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즉, 일상으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269. The whole world steps aside for the man who knows where he is going.
273. 하지만 정치력 없이(손바닥을 전혀 비비지 않고) 순진하게 엉덩이에 굳은살만 붙여서는 쉽게 학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처음 깨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