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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n 19. 2021

퇴사 학교

퇴사, 누군가 언젠가 반드시 닥쳐야 하는 순간

 대한민국 취업시장에서 대기업과 공무원 두 개를 빼면 아마 취업준비생 90%가 흩어지지 않을까요. 도발적인 제목의 '퇴사 학교'라는 이 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인 무려 '삼성전자'를 제 발로 퇴사한 장수한 님의 글입니다. 노오란 책 표지에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는 '퇴사'라는 제목은 선뜻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습니다. 책 머리말에 적어놓은 신 것처럼, 퇴사라는 것은 분명 모두가 언젠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알면서 이야기할 수 없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무작정 회사에서 도망치라는 글이 아닙니다. 젊어서하는 자진 퇴사이든, 정년이 도래한 퇴사이든, 회사 사정에 의한 권고사직이든, 무슨 경우이든 간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프랑스 작가의 말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작정 회사가 그려놓은 틀에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흘러가지 말고, 내리라는 데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하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와 경로를 정하고 그것에 맞춰 일할 때 일 하고, 떠나야 할 때 떠나라는 이야기입니다.


 전에 읽었던 경제서적인 부의 추월차선(https://www.facebook.com/readlibros/posts/137177025055274)에 나온 맥락과 비슷한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에만 진짜 '나'로서 살고, 주말 2~3일을 위하 남은 4~5일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죠. 일주일 내내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서는, 내 인생 100%를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합니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조금은 솔직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무작정 회사로부터 도망치라는 대책 없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았습니다. 무조건 기성세대가 틀렸다고만 몰아세우지 않아서 읽기에 편했습니다. 저도, 그들도, 모두들 한 때는 신입사원이었고, 지금도 지금 신입사원들 만큼이나 - 어떤 부분에서는 훨씬 더 - 힘들고 고민이 많습니다. 책에 인용된 각종 사례들에 사회생활 15년, 20년 이상 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많아서 더 공감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퇴사, 어차피 입사를 했으면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입니다. 이 책은 '학교'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퇴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학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퇴사 이후의 경제적 준비라던가 일종의 '요령'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퇴사를 결심한 젊은 친구들 보다는, '언젠가 나도 퇴사를 하겠지'라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가지고 있는 분들이 그 과정을 '인지'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책 내용의 적지 않은 부분이 기존 본인이 쓰신 책을 직접 인용한 내용이고, 본인의 글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사연, 댓글 등을 가져와서 쓰다 보니 그렇게 내용이 알차거나 가득 차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비워내는 과정인 퇴사'를 다루는 책에서 알찬 정보들이 가득 차 있을 필요는 없겠지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가 기차 같다는 생각을요. 기차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창밖 풍경을 보면서 내가 달리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나는 가만히 앉아있을 뿐인데 말이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착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도착했다'라고 말이죠. 사실은 기차가 도착한 것뿐입니다. 회사라는 열차에 올라타서 내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봉도 늘고 명함도 생기고, 무언가 '세상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 다리와 심장과 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약해지고 몇 걸음만 걸어도 헐떡거리게 될 것입니다. 도착하고 싶은 곳에 내 두 다리로 직접 갈 수 있는 방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칩니다.




5.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도 '퇴사'란 단어를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할 수는 없는 그런 금기어가 되어버렸습니다.


17.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18. 평일은 회사의 것, 주말만 나의 것인 일상의 반복. 나는 주말 2일을 위해 평일 5일을 희생하며 살고 있었다. 인생 30%를 위해 70%를 저당 잡힌 것이다. 전 국민이 일요일 저녁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웃음을 터뜨리지만, 결코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이다.


32.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가 도입한 '켄쇼'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연봉 5억 원짜리 애널리스트가 일주일이나 걸려할 수 있는 일을 단 몇 분 만에 끝낸다고 한다.


39. 회사에 롤모델이 없어요. 5년, 10년 뒤 내 모습이 바로 옆 자리의 상사일 텐데. 저는 그 상사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유통 2년 차)


41. 일요일 점심부터 밥이 안 넘어가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임원 보고가 있거든요.(건설 15년 차) 진짜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해왔는데 아직 진정한 멘토를 못 만난 것 같아요. 돌아보면 저 또한 꼰대가 아니었나 싶어요.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결국 문제는 돈이 아닐까요?(IT 20년 차)


50. 하지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보다는 '살아지는' 인생을 살고 있다. (중략) 그러다 다시 월요일이 되면 소울리스 모드가 되어 영혼 없는 노동을 반복한다. 퇴근해서는 소주를 부르고, 주말에는 소비를 부르는 삶이 이어진다.


69. 어찌 보면 직장인들이 겪는 가장 큰 현상은 '소모'된다는 느낌일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가치를 느끼고 성장하는 게 아니라 매일 허공으로 휘발되는 온갖 업무를 바라보면서 나 자신도 소모되고 소진되는 상태.


70. 결국 거대 조직에서는 오너를 제외한 모두가 대리자가 된다. 상무는 사장을, 부장은 상무를, 과장은 부장을, 대리는 과장을 대리하는 구조이다. 권한은 없지만 의무는 넘친다. 모두가 각자 누군가를 대리하여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듯 하지만 최종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눈치 보며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업무 성과는 나지 않는다. 개인의 성장 역시 요원하다. 권한 없이 책임만 주어지는 조직에서 개인이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할만한 기회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다.


73. 1년 내내 주말도 없이 밤낮 야근에, 보고서 리뷰에, 위아래로 쪼고 쪼이며 사내 정치 등 회사에 모든 걸 바쳐 20년 이상을 희생해도 겨우 부장이 될까 말까 한 현실을 보며 나는 절대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신입 사원이 늘고 있다.


77. 그러던 어느 날 독일인 상사가 그를 불러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면 우리 회사의 철학에 위배됩니다. 개인의 삶과 일의 균형을 중시하는 다른 직원들한테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정말 그렇게 일이 많다면 추가 인원을 고용하는 게 맞아요."


81. 사원은 대리처럼, 대리는 과장처럼, 과장은 부장처럼 압축적으로 일해야 인정박을 세상에서는 칼퇴하는 사람은 곧 죄인이자, 야근하는 사람은 곧 영웅이 된다.


92. 조직이 클수록, 상사가 무능할수록 우리는 더 큰 공허함을 느낀다. (중략) 공허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93. 첫째, 사업 놀이다. 기업의 홈페이지에는 고객 가치 추구, 미래 혁신 등 그럴싸한 단어로 도배되어 있지만 정작 조직에서 하는 일은 '보고를 위한 보고', '회의를 위한 회의', 'TF 추진을 위한 TF'일 소지가 크다. 조직은 크고 예산은 많고 부서장이 바뀌어 뭐라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무언가 일을 만들어야겠으니 1박 2일 워크숍을 가서 열심히 토의하는 척하며 보고서라도 그럴싸하게 써야 한다. "A가 뭐지?" 하며 던진 사장님의 한마디에 전체 부서가 온갖 버전의 보고서를 준비하느라 몇 주간 밤샘 작업을 한다. 몇 개월 뒤 아무것도 보고되지도, 실행되지도, 변화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모두가 훈수만 두는 사업 놀이가 계속되면 개인의 영혼은 병들어 간다. 이제는 그 누구도 열심히 하려고 않는다.


94. 셋째 허례허식이다. 보고서 하나, 기획안 하다, 회의록 하나를 작성하는 데에도 지나치게 공을 들인다. 빠른 의사 결정과 업무 실행이 아니라 줄 간격, 폰트, 색깔 등을 논의하느라 하루 종일 회의한다. 보고할 때 최대한 덜 혼나는 것만을 생각하는 상사들은 모든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만을 고집한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버전 B, C, D를 양산하고 직원은 하루 종일 받아쓰기 기계로 전락한다.


95. 넷째, 부서 이기주의다. 재무팀은 예산만 줄이면 그만이고 기획팀은 보고서만 잘 쓰면 그만이며 영업팀은 이번 달 숫자만 채우면 그만이다.


100. 이 조직에 안착하고 적응할수록 더욱 안락해지고 그럴수록 새로운 것이 더욱 귀찮고 막막해진다.


102. 현실은 상사 본인 혼자 친목을 도모하고 분위기를 쇄신할 소지가 많다.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여흥을 위해 나머지 모두가 희생되는 구조이다.


106. 그런데 그 조직에 또라이가 없다면 그건 당신이 또라이라는 것이다. 군대식 문화가 해결되는 방법은 꼰대가 사라지는 것뿐이다. 조직 문화는 결국 리더의 손에 달려 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훌륭한 리더로부터 좋은 문화가 나오고 꼰대로부터 나쁜 문화가 나온다.


132. 나는 더 이상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를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형용사보다는 동사로 살고 싶어 졌다. 나는 성공하기보다는 성장하고 싶어 졌다. 무엇보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 했다’는 소로의 말처럼 살고 싶어 졌다.


140. 회의록처럼 사소해 보이는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니 다른 업무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실력이 붙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143. 기득권층의 희생과 결단이 없으면 꼰대 문화는 끊이지 않는다. 신입 시절에는 야근은 부당하고 상사의 지시는 이해가 안 되며 모두가 꼰대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 팀장이 되고 보니 그런 상사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이번에는 요즘 신입 사원들이 다들 뺀질거리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으며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 새삼 그때 부장님의 마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또 하나의 꼰대로 변해 있음을 느낀다.


184. 나에게 아내는 ‘네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게 더 싫다’며 나의 선택을 격려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226. 둘째는 독서다. 머릿속에서 출발한 생각이 눈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생각의 숙성과 더불어 다양한 외부의 자극이 필요할 때다. 그러기 위한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독서다.


249. 남들이 하는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철저하게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자. 내가 추구하는 것, 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인정하고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자연스럽게 실행할 수 있다.


257. 마흔이 되어 깨달은 것은 앞선 세대가 지위 경쟁을 통해 누렸던 것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선배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따르기보다는 새로운 삶의 경로를 모색하는 것, 그리고 행복의 가치를 사회적 성공이나 부를 축적하는 방식 외에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는 삶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268. 기업에서는 퇴사의 시대에 걸맞는 조직 문화로 쇄신해야 한다. 더 이상은 과거 꼰대식 문화에 젖어 개인에게 회사의 시간을 주입해서는 안된다. 회사와 조직이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행복한 일터로 만들어야 한다.


274. 어쩌면 우리는 남이 정해놓은 시간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5년만 더, 과장만 달고, 전세금만 갚고, 이것만 하고, 이다음에, 조금만 더 있다가. 늘 관성의 법칙을 핑계 삼아 인생을 미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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