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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n 02. 2021

파이어족이 온다

Playing with FIRE

 구글에서 FIRE를 검색하면 갖가지 불꽃 이미지와 BTS의 '불타오르네' 또는 블랙핑크의 '불장난(playing with fire)' 뮤직비디오가 먼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찾아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201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단기간 내에 은퇴자금을 만들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일종의 운동(Movement)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Fiancial Independance Retirement Early.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


 전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경제성장이 더뎌진 시기, 초년생부터 학자금 대출, 모기지 등 갖가지 부채를 앉고 사회에 발을 내디딘 밀레니얼 세대 중 일부가 '이건 아닌 것 같다'면서 수십수백 년간 공고화된 시장경제에 개별적으로 도전하는 움직임이죠. 단순히 돈을 빨리 모으거나 불리는 투자기법, 자산관리 방법 등과 같은 재테크와는 결이 좀 다릅니다. 필요한 만큼의 소득을 적극적인 활동 없이 수동적으로(passively)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주체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조기 은퇴(RE)를 먼저 두지 않고 경제적 자유(FI)를 먼저 둔 것도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 않을까요.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노동력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본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전에 읽었던 '부의 추월차선(The Millionaire Fastline)에서도 나왔던 개념인데, 자본에 의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면, 내가 하기 원치 않은 일은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내가 진정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겠죠. 보통의 급여생활자의 경우 보통 일주일이라는 인생의 5일을 일, 또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 및 휴식하는데 할애하고, 실제 '나'로써 살아가는 것은 하루 이틀, 인생의 20퍼센트도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다면 사업이든, 공부든, 봉사활동이든, 가족과의 유대관계든, 여행이든, 취미든, 자아실현이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데 인생을 전력할 수 있겠죠. 그래서 FIRE는 재테크라기보다는 일종의 운동이자, 철학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FIRE는 단순하게 부를 축적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일단 내가 은퇴 이후, 즉 원치 않는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서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금액을 상정하고, 이 금액을 지속 가능하게 수동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산의 총량을 목표로 설정한 다음, 이를 최단기간 내에 극단적인 절약과 저축을 통해 축적하는 과정을 통합한 개념입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차단하고, 삶과 행복에 필수적인 것들에만 집중하는 것이죠.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가 삶을 꾸려나가는데 필요한 금액이 사실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다시금 은퇴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선순환도 포함되어 있죠.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소비주체의 꾸준한 소비가 매우 중요합니다. 각종 회사들이 물건을 많이 만들고,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남고, 이를 통해 주가가 오르고, 이를 바탕으로 고용을 확대하고, 계속적으로 경제의 총규모가 소위 '성장'하는 것이죠. 집에 청바지가 수두룩히 쌓여있지만, 1mm 정도 디자인이 차이나는 새로운 청바지를 - 불필요 하지만 - 또 구매해야, 청바지 회사가 돈을 벌겠죠.


 FIRE는 굳이 그 청바지를 살 수 있는 돈을 더 버는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차단하는데 더 중점을 둡니다. 수십만 원짜리 와인보다는 그냥 하우스 와인이나, 우리나라로 보면 소주 한잔, 맥주 한 캔이 낫다는 거죠. 사실 이 운동이 주류로 떠오른다면 시장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에 대한 뉴스 기사들을 보다 보면 내수활성화, 국가별 인구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는 까닭은 바로 '사주는 사람의 수'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아무도 더 이상 청바지를 사지 않는다면, 청바지 회사가 도산할 것이고, 주가가 떨어지고, 실업률도 늘어나겠죠.


 하지만 다행히도, 이 움직임이 쉽지 않습니다. 한번 불어난 씀씀이를 줄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학자금 대출을 비롯해서 다양한 빚더미에서 삶의 본론을 시작하는 요즘의 젊은 세대의 시선에서는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관계적인 면에서도 쉽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에서 눈에 띄지 않게 들어가는 소비도 많습니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남들처럼 쓰기도 해야 하고, 경조사도 있고, 셀 수 없이 돈 들어갈 곳은 많습니다.


 이 책은 이런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쭉쭉 벌고 펑펑 쓰던 샌디에고 부촌에 월세로 거주하던, BMW 리스 차량과 연회비 수백만 원짜리 보트클럽을 포기할 수 없었던 신혼부부가 '자기 자신들의 궁극적인 삶'을 찾아가면서 FIRE 개념을 알아가고, 이를 적용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사실 잘 적용(또는 적응)을 했는지 결과는 이 책에서 나와있지 않습니다. 처음 개념을 접하고, 공부하고, - 가장 어려운 단계인 - 선택을 하고, 작은 시도들을 계속해 나가고, 좌절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맞벌이 기준으로 억대 연봉을 벌면서, 동네 비슷한 친구들과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수십만 원짜리 일식집, 수십만 원짜리 와인 한 병 주문에 벌벌 떠는 모습에서 스스로에 대한 변화를 느끼고, 일부 자괴감, 상실감까지 느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 가족은 '삶의 본질'에 집중해서 이를 이겨 나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의 목표는 '가족과의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갓 태어난 아이와 억지로 떨어져서 일을 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또 그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 월 수백만 원짜리 보육시설에 비용을 지불하는 아이러니를 끊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좋은 차'가 아닌 '가족과 함께 탈 수 있는 차'였는데, 원치 않는 사회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BMW', '고가의 와인', '보트클럽' 등을 소위 우리말 '시발 비용'으로 치르고 있었던 것이죠. 그로 인해 실질적으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계속 '몇 년 더 있다가'로 미루어지고 있었던 것이고요.


 얼마 전에 읽었던 '부의 인문학' 저자 '브라운스톤'님도 경제적 자유를 조기에 얻어서 새벽부터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느지막한 아침 자녀를 직접 학교에 데려다줄 수 있고, 자녀의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면서 커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시간을 와이프와 함께 보내다 보니,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 같은 기분으로 관계도 더욱 좋아졌다고 했죠. 반대로 갑자기 은퇴해서 집으로 돌아간 다른 지인들은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하고요.


 이 책에서 집을 구매하려다가 한번 멈췄던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계획보다 많은 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순간에, 해당 금액을 더 모으기 위해 그만큼 몇 년의 기간이 미루어지는 것을 계산해 보면서, 과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 '집'인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자유와 행복을 찾는 '시간'인지 가치판단을 하고, 그 집의 계약을 철회하는 부분에서 FIRE가 돈보다는 자유와 특히 시간의 개념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책은 'FIRE가 무엇이다, 어떻게 해라'는 등의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사실 이렇게 책으로 나올만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내가 한번 이렇게 마음을 먹고 이렇게 해보고 있습니다' - 심지어 '해봤더니 이렇습니다'도 아닌 - 는 마치 'FIRE 도전 일기장' 같은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FIRE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은 대부분 콘텐츠 사업을 통해 부가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독립한 이후 이런 활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우리나라에 FIRE를 다룬 책이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큰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번역서로 바다를 건너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으로서, 청년으로서 막연하게 이 개념을 접근하는 것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빨리 돈을 모아서 회사를 탈출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업을 '남의 일'처럼 한다면, 그곳에서의 개인의 성장과 발전도 동기가 저해될 뿐만 아니라, 실제 성과도 자연스럽게 미미해지고, 그러면 결국 '빨리 돈을 모을 수' 없겠죠. 일단 있는 자리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노력을 기울여야, 적어도 그곳에서라도 스스로 정해놓은 성공을 달성해야 경제적 독립이든 조기 은퇴든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이 FIRE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한 눈을 팔기보다는, 불필요한 소비를 차단하고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목표를 설정하는 부분에 초점을 두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치 않는 상황을 무작정 도망치려는 욕구보다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음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는 용기가 FIRE 이후 삶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10. 아내 테일러와 나는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점점 더 일을 많이 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소중한 인간관계를 희생시켰다.


43. 콜로라도에 사는 마흔 살 남성이 월요일에 등산을 가고 집 앞 베란다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안 지금, 회사 생활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전부를 참아야 한다는 현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47. 그리고 아마도 오션 클린업 프로젝트나 효율적인 이타주의 운동처럼 내가 옳다고 믿는 단체를 위해 시간을 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도 노인 복지관이나 미혼모를 돕는 비영리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랑 딸이 더 자주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을 생각해 봤다. 알람 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겨울은 카리브해에서 보내고 여름엔 타호 호숫가에서 지내는 거다.


81. 파이어를 실천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돈을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


117. 큰 도시에 사는 가장 큰 장점은 직장과 가깝다는 점이지만 일단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나면 그런 장점은 필요가 없다.


133. 하지만 매번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결과적으로 나는 곧 행복해졌다.


138. 지금 나는 우리가 코로나도를 그런 낙원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있다. 사실 행복해지려면 작은 것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슈퍼마켓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 어디든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서로를 돌봐주는 상냥한 이웃들 사이에서 사는 것처럼 말이다.


141. 회사에서 일주일 휴가를 받아 마지막까지 쥐어 짜내며 재미를 찾아 보내는 대신 이제 이런 생활이 내 새로운 일상이 될 것임을 알았다.


145."65세까지 일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 얼마나 인생을 바꿔놓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되찾고 밀레니얼 세대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151. "학문과 성공을 추구하는 여정과 이런저런 현실에 머무르는 삶이 공허하다고 생각하면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물 끓이는 방법조차 몰랐어요. 그러니 사는 방법도 몰랐죠. 삶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로서 정상에 올라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벌겠다는 매우 편협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 될 준비를 했었던 거죠."


152.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한 번쯤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여 보라는 것이 저의 조언입니다."


155. 온라인에서 파이어 공동체를 발견한 후 우리의 생활방식은 급속도로 달라졌다. 지출 비용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저축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세제 혜택이 좋은 상품에 돈을 적립했다. 또한, 가지고 있던 트럭 두 대를 팔아서 과세 투자상품에 넣고 도요타 캠리 한 대만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자동차 출퇴근 대신 매일 걷는 즐거움을 얻었다.


157. 우리의 의식이 변화한 것이 가장 긍정적이다. 직업, 자동차, 주택 같은 성공을 보여주는 겉치레에 불과한 상징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갑자기 시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면서 시간을 쓰는 방법에 더 예민해졌다. 의미 없는 물건을 사거나 순간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대신 산책을 하고 책을 읽으며 반려동물과 유대감을 쌓고 친구와 가족들과 교유하면서 간단하지만 돈이 적게 드는 즐거운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167. 오랫동안 나는 '제대로 된 방법'으로 투자하는 방법을 배울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최선의 선택은 투자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178. "근검절약, 끈기, 배움에 대한 갈망입니다."


179. 나는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긍정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242.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날짜를 미루자." 내가 제안했다. "몇 년만 더 일하면 되겠지." 아내는 망설였다. 우리가 일하는 모든 시간 동안 더 나이가 든다.


259. 특히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 명품 옷을 입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편안한 집을 사는 데 예산을 더 쓸지라도 옷과 화장품에 쓸 돈은 아끼고 있다.


269. 그 어떤 집이나 차, 가전제품도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 가치 있는 '완벽한 소유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273.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매우 야심차에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고 그냥 일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음악 앨범을 제작하거나 외국어를 배우거나 자녀를 정규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직접 가르치는 등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는 충분한 여유 시간이 생깁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은 매우 혁신적이고 다양한 일을 합니다. 나는 매달 청구서를 갚을 걱정이 없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을 때 더 크고 대담한 일을 할 수 있는 진짜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덧. 위에서 잠시 언급한 '부의 추월차선', '부의 인문학'에 대해 과거에 적었던 글의 페이스북 페이지 링크와, 이 책의 원서 및 번역서 검색 링크, 그리고 저자가 FIRE를 도전하면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링크를 공유합니다.


https://www.facebook.com/readli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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