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집, 때론 여유있게 때론 바쁘게

어떨때는 바쁘게허겁지겁, 어떨때는 여유있게, 때로는좀 지루하게

by jim

오늘은 그늘집에 대해 잠깐 생각해볼까 합니다. 처음 골프를 시작했던 캘리포니아 골프장에는 그늘집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전반 9홀을 돌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와서 후반 9홀을 돌기 전에 잠시 요기를 하면서 한숨 돌렸다가 나갔었고, 당시에는 클럽하우스가 우리나라에서 이야기하는 '그늘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험의 폭이 좁다 보니 누군가로부터 '국내에 돌아가서 운동을 하면 중간에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클럽하우스에서 감자튀김에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뙤약볕에 나가 있다가 파전에 막걸리라니 그것 참 아름다운 조합이겠구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골프장이 바쁜 날이면 티타임도 나름 예약이 얼추 되어 있기 때문에 시작할 때는 시간을 맞춰 나가야 했지만, 전반을 마치고 후반을 돌기 전에는 적당히 후반 첫 티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클럽하우스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분위기를 보고 나가곤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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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을 해서 친구, 형님분들과 운동을 나갈 기회가 닿아서 처음으로 국내 골프장 잔디를 밟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 그 골프장에는 4번 홀, 13번 홀이 끝나면 중간에 작은 식당이 있더군요. 4번 홀 티샷 전에 캐디님께서 주문을 받아서 미리 전화로 연락을 해주시고, 해당 홀을 마친 다음 자연스럽게 그 식당에 들려서 말로만 듣건 '골프장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30도를 훌쩍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경험이 가장 많으신 분께서 '원래는 막사(막걸리+사이다)나 맥사(맥주+사이다)를 시원하게 한잔 마시면서, 탄산으로 갈증을 날리고, 적당한 당분으로 텐션을 올리는 게 정석이야. 오늘은 많이 더우니까 포막사(포도봉봉+막걸리+사이다) 한 잔하자'고 하시면서 널찍한 대접에 갖가지 재료(?)를 섞어서 국자로 막걸리잔에 담아주셨습니다. '이래서 농촌에서도 새참으로 막걸리를 한잔씩 드시나 보다'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오키나와에 예전에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가 업무차 전근을 오게 되어 얼굴을 보러 가보기로 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국가에 오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여서 - 사실 LA와 뉴욕보다 훨씬 가깝기도 하고 - 그냥 쉽게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한번 보자고 했던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지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살아왔었는데, 땅덩이가 큰 나라에서 온 친구라 그러는지 생각하는 게 다르더군요. 물론 있는 짬 없는 짬 내어서 간신히 휴가 일정 허락받고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친구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처음으로 골프장에 데려가 주었던 친구였었는데, 서너 살 된 큰아들과 두어 살 된 작은아들이 태어나면서 저희와 헤어진 이후로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오랜만에 영어로 수다 떨기에 머리에 쥐가 막 나던 참이어서 골프장이나 같이 가보자고 하고 나왔습니다. 미국인들이 예약해서 갈 수 있는 미군 골프장을 예약해 주어서 따듯한 남쪽 섬나라에서 운동을 해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그런 것인지, 그곳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골프장에는 클럽하우스 외에 전후반 코스를 이동하는 중간에 스낵바(Snack Bar)라는 곳이 있더군요. 간단한 햄버거, 샌드위치, 감자튀김이나 음료를 파는 곳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별도의 의자는 없이 서서 먹는 테이블만 몇 개 있어서, 말 그대로 간단히 요기만 하고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 외에 코스 중간중간에 하얀색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음료 트럭(Beverage Truck)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의무적으로 어딘가에 조별 순서에 맞춰 들리는 그늘집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늘집은 어떻게 자리 잡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름은 왜 그늘집일까요? 괜한 궁금증이 생겨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뾰족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바쁘게 꽉 차서 돌아가는 골프장 진행을 위해서 중간중간 팀별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 같고, 골퍼들도 운동만 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친목이나 접대를 위해 나오기도 하니 그런 공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골프장 내에서 파는 모든 것들이 외부 가격의 2~3배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골프장 매출을 위해서도 굳이 그늘집을 운영하지 않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단 조금 불편한 점은, 앉아있고 싶은 만큼 앉아있을 수 없고, 앉아있기 싫어도 앉아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침식사를 충분히 하고 바람도 선선히 부는 적당한 시간에 티업을 했을 때, 4번 홀을 마치고 바로 그늘집에 들어가서 굳이 무엇을 더 먹기보다는 바로 운동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고, 지치고 힘들고 춥고 더울 때면 좀 더 쉬었다가 가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미국에서 전반 마치고 클럽하우스를 안 들리고 앞 홀이 비었으면 바로 나가거나, 아니면 천천히 햄버거 하나 다 먹고 쉬었다가 느긋하게 나가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그늘집의 메뉴 센스는 차마 포기하기 어려울 때가 있죠. 바쁘게 돌아가면서 무한 경쟁을 펼치는 우리 사회상을 반영한 탓인지 우리나라 먹거리는 참 다양합니다. 미국 맥도널드, 버거킹 메뉴는 십수 년째 - 어쩌면 그 이전부터 - 거의 바뀐 것이 없는데,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은 같은 브랜드인데도 불구하고 몇 달을 멀다 하고 신메뉴가 등장하곤 합니다. 우리나라 그늘집도 지역별, 시즌별 주옥같은 메뉴들을 준비하는데, 이것들을 챙겨서 시식해보는 재미도 솔솔 합니다. 제주도에 가면 각종 감귤 관련 메뉴들, 제철 굴튀김 같은 시즌 메뉴, 여름철에는 시원한 팥빙수, 쌀쌀한 날씨에는 뜨끈한 어묵탕까지, 막걸리에 파전 말고도 재미있는 먹거리가 많이 있죠. 겨울철 이른 티에는 전반전을 막 시작한 그늘집에서 따뜻하게 데운 정종 한 모금으로 몸을 데우는 것도 나름 매력이 있고요. 문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가는 가격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늘집을 자주 애용하시는 편이신가요? 주로 즐기시는 메뉴나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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