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 문학적 고백(1946년)
단상이란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혹은 생각을 끊음을 말한다.
1946년 4월 <트리뷴> 지에 게재된 글이다.
오웰의 자연관이 단적으로 잘 드러나는 짤막한 봄의 찬가로서 괘 인기를 누려온 글이다.
이번 문학적 고백 파트인 < 두꺼비 단상 >과 < 어느 서평자의 고백 >은 즐겁게 읽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아네모네보다 조금 늦게, 두꺼비는 봄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 지난가을부터 들어가 누워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적당한 물웅덩이 쪽으로 최대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언가가 두꺼비에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이 무렵 두꺼비는 오래 굶주린 뒤라 대단히 영적인 모습인 것이, 흡사 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른 엄격한 가톨릭 신자 같다. 동작은 늘어진 듯하면서도 목표가 뚜렷해 보이며, 몸이 오그라들어 눈은 유난히 커 보인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때엔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두꺼비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건 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나 접할 수 있으며 공짜라는 점이다. 아무리 지저분한 길거리라 해도 봄은 이런저런 신호로 자신을 알리며 찾아온다. 신호란 공장 굴뚝들 사이의 하늘이 더 파래진 것일 수도 있고, 폭격 맞은 자리의 딱총나무에 연둣빛 새순이 돋아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런던 한복판에도 대자연이 비공식적으로 계속 존재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중략)
봄에 관해서라면 영국은행 주변의 좁고 음침한 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봄은 어디나 스며들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떠한 필터라도 통과할 수 있는 신형 독가스처럼 말이다. 봄을 흔히들 '기적'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 닳고 닳은 비유는 지난 5~6년 동안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겨울을 몇 해 동안 보내면서 우리는 봄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사슬에 묶여 우리 모두 신음하고 있는데, 아니면 아무튼 신음하고 있어야 하는데, 찌르레기 지저귀는 소리 때문에, 10월의 잎 노랗게 물든 느릅나무 때문에, 혹은 돈도 안 들고 좌파 신문 편집자들이 계급관이라 부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 다른 어떤 자연현상 때문에 더 살만할 때가 제법 있다고 말한다면, 그게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명백한 사실이다.
오웰의 문학적 에세이 편을 읽다 보면 잠시 '전쟁'을 겪었다는 사실을 잠시 내려놓을 때가 있다.
「두꺼비 단상」에서도 첫 부분을 읽고 '봄'이라는 것을 두꺼비로 표현한 것이 그저 신기했다.
보통 '봄'을 표현할 때는 꽃이나 따스해진 날씨로 많이 표현하는데 두꺼비라고 이야기하니 그저 낯설면서도 오웰의 독특한 생각에 재미있었다.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지금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봄'의 상태가 어떤지 말해준다.
전쟁이 끝난 후 일어나는 사회적 무거운 분위기와 일상이 느껴진다.
'자연'에 대해 호의적으로 언급했을 때 이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라는 안타까움이 다가왔다.
그래도 뭐 오웰은 말한다. 우리가 봄을 향유하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봄은 여전히 봄인 것이다.
1946년 5월 <트리뷴>지에 게재한 글이다.
오웰은 길지 않은 생애(47년) 동안 아홉 권의 소설 및 로포를 쓴 것 말고도 엄청난 양의 에세이와 칼럼과 서평을 썼다.(엄밀히 말하자면 칼럼과 서평도 에세이라 할 것이다.) 특히 서평은 작가 오웰의 생업인 동시에 작가로서의 소양을 쌓는 데 큰 자양분이 되었으며, 괴롭긴 해도 본인 스스로 꽤 즐겨 썼다고 하는 장르다. 1930년(27세) <아델피>지에 서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수많은 서평을 썼고, 1940년 한 해에만 백 권 이상을 평했으며, <<동물농장>> 발간 후 생활이 안정된 뒤에도 서평 일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추우면서도 공기는 탁한 침실 겸 거실, 담배꽁초와 반쯤 비운 찻잔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좀먹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쓰러질 듯한 탁자 앞에 앉아 먼지 쌓인 종이 더미 속에서 타자기 놓을 자리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다고 종이들을 버릴 수는 없다. 쓰레기통이 벌써 넘쳐날뿐더러, 답장 못 한 편지들과 아직 못 낸 공과금 고지서들 사이에 현금으로 바꾸지 못한 게 거의 확실한 2기니 짜리 수표가 끼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소록에다 주소를 옮겨 적어야 하는 편지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주소록을 잃어버렸고, 그걸 찾을 생각을 하면 극심한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어느 서평자의 고백」의 첫 문구다.
여기 부분만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지 에세이를 읽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탁월한 묘사로 표현한 필력 때문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면서 이 사람이 오웰 자신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관찰하듯이 적는 것인지 갸우뚱했다. 어쩜 이렇게 첫 문구만 적었는데도 이렇게 빨려 들어갈까. 소설인 듯 아닌 듯하는 그의 글에 쿵 했다.
그런데 책을 무차별적으로 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유난히 달갑지 않고 짜증스럽고 피곤한 노릇이다. 그것은 쓰레기를 칭찬하는 일일뿐 아니라 그냥 두면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책에 대한 반응을 계속해서 '날조'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중략)
그 나머지 일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기다. 그는 자신의 불멸의 영혼을 하수구로, 그것도 한 번에 반 파인트씩 흘려보내는 셈이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어보라는 권유와 안내를 원하며, 어떤 식의 평가를 원한다. 그러나 가치의 문제가 언급되지 마자 평가의 기준은 무너져버리고 만다.
서평을 자주 쓰다 보면 오웰이 말한 부분에 공감이 저절로 된다.
서평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좋은 점만 적어야 할 때는 곤혹스럽다.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보니 좋은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호평해야 하는 부담감이 올 때 정말 내가 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 고민될 때가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책을 직접 사지 않고 먼저 읽을 수 있다는 기쁨에 시작했는데 그 권수가 늘어나고 무엇보다 정해진 날짜에 맞춰 세 군데 이상 업로드할 경우, 정말 그 부담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오웰이 그때 느꼈던 기분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음에 놀라웠다.
그래도 서평자는 영화 평론가보다는 낫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중요한 건 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나 접할 수 있으며 공짜라는 점이다.
봄은 여전히 봄인 것이다.
오웰이 말한 '봄'에 대한 생각을 해 볼 때, 수많은 봄 그림책이 생각났다.
그중에서 다음 책을 선택한 이유는 봄이 주는 즐거움과 봄은 여전히 봄이라는 출발선에서 수학 공식처럼 풀어 이야기한 재미있는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두꺼비 단상>을 봄에 비유하듯, 수학 방정식으로 봄을 비유한 독특한 그림책을 만나보자.
로라 퍼디 살라스 (지은이), 미카 아처 (그림), 김난령 (옮긴이) 나무의말2022-06-13
숫자가 아닌 수학 방정식과 시가 만나 계절을 표현한다면 어떤 수식으로 나타낼까?
<< 봄의 방정식 >> 그림책은 시+수학+과학으로 봄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표현한다.
독자의 상상으로 그림책을 더해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계절의 변화를 과학 현상으로 '방정식 시'로 만나는 독특한 그림책이다.
과학+수학+시=<<봄의 방정식>
많은 사람들이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봄'을 선택한다. 왜일까?
봄은 시작의 계절이고 추운 겨울을 보낸 뒤 만나는 생명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말한 두꺼비가 겨울잠을 잔 뒤 깨어난 것처럼 모든 자연과 생물의 시작은 봄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봄에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자연 현산을 수학 기호 더하기, 빼기, 곱하기 등을 활용한 '방정식 시'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낸다.
계속해서 서평을 쓰다 보니 보이게 되는 어두운 면, 그래도 영화 평론가보다는 낫다고 표현한 오웰 에세이를 읽으며 만약 오웰이 '울프레드'처럼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현실과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궁금해서 선택한 그림책이다. 또한 서평으로 생계를 유지한 오웰처럼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다 도저히 안 되어 선택한 다른 일을 한 작가지만 결국에는 글쓰기를 놓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해주는 그림책이다.
닉 블랜드 (지은이), 김여진 (옮긴이) 길벗어린이 2023-04-05
울프레드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 못해 호텔의 엘리베이터 지기로 일하게 된다. 낮에는 규칙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일이 끝나면 옥상에 올라가 하루 종일 본 것을 이야기 써 비행기로 접어 날린다. 어느 날 종이비행기가 돼지 사장에게 가게 되자 화가 난 돼지 사장은 규칙을 어겼다며 울프레드를 호텔에서 내쫓는데 갈 곳 없는 울프레드는 어떻게 될까?
<< 호텔맨 울프레드 >>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이룬 늑대 작가와 소통을 거부하는 돼지 사장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삶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태도,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마치 생계로 서평을 써야만 했던 오웰처럼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동물농장>>이라는 위대한 문학작품을 지금도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 호텔맨 울프레드 >> 그림책 작가 닉 블랜드는 현대 우화 형식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다양한 주제들을 날카롭게 짚어 준다. 고급 호텔을 배경으로 독재자처럼 소통을 막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돼지 사장과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가난한 늑대 작가 이야기는 현 우리 사회와 별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