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 나는 왜 쓰는가 > - 특별한 경험 (1946.11.)

by 그림책미인 앨리

<How the Poor Die> 1946년 11월 <나우>지에 게재된 글이다.

식민지 경찰 생활을 접고 밑바닥 생활을 체험하며 습작에 몰두하던 오웰은 1928년 봄부커 1929년 말까지 파리에서 생활한다. 많지는 않지만 짧은 글들을 파리와 런던의 매체에 싣기도 하던 그는 1929년 2월에 폐렴에 걸려 몇 주 동안 입원을 하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경험을 살려 쓴 글이 이 작품이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41216_139%2Fminahan_1418725971276Ut5CA_JPEG%2F50.jpg&type=a340 - 파리의 센 강변 -


1. 제목이 주는 강렬함


아니, 죽음에도 계급이 있는 거야!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공평하다고 듣고 자랐으며 또한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난한 자들이 어떻게 죽는가라니… 다시 곱씹으며 생각해 보니 '죽음'은 누구에게나 해당되기에 공평하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행사는 사뭇 다름을 잠시 잊었다. 죽음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두 번의 직접적인 장례를 치르면서 경제적인 면이 큰 부분을 차지함을 뒤늦게 알았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는 세상 물정 잘 모르고 엄마가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직접 상을 치르다 보니 경제적인 면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때 알았다. 흔히 장례식장에서 보던 하얀 꽃 장식에도 계급이 있음을. 꽃을 얼마나 놓는 냐에 따라 가격대 또한 달랐다.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간직하기 전부터 경제적인 부분은 알게 모르게 존재했다.

오웰이 본 가난한 자들의 죽음은 어떤 것일까?

내전이 있었고 세계대전 시절도 겪었으니 그가 본 가난한 자들은 분명 피지배층 사람일 것이다.

제목을 읽는 순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죽은 사람과 소리 소문 없이 죽은 사람이 떠올랐다.


2. 첫 세문장(p331)


- 1929, 나는 파리 15구에 있는 'X 병원'에서 몇 주를 보낸 적이 있다.

병원 창구 직원들은 접수처에서 내게 통상적인 고문 코스를 거치게 했다.

한 20분 내내 질문에 답하게 만들고 나서야 나를 받아주었던 것이다.


고문 코스라는 단어에 무릎을 딱 쳤다. 대형병원에 가면 접수하는 데에만 시간이 꽤 걸린다.

맞다. 이건 고문 코스다. 아파서 치료하고자 간 곳은 고문 코스 중 하나였다.


3. 마지막 세문장(p345~346)


- 우리는 그 시를 함께 읽고 들으며 몸서리쳤고, 그 뒤로 나는 그 시를 잊고 살았다.

시 제목을 들었다 해도 아무 기억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둑하고 웅성웅성한 실내를 얼핏 보자마자, 거기에 관련된 생각들이 줄줄이 엮여 나오기 시작했고, 그날 밤에는 그 시의 내용과 분위기가, 그리고 여러 구절들이 완벽하게 기억나는 것이었다.


오웰은 이 글에 대한 경험이 한참 지나고 나서 썼다.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한다 말인가.

아무리 그때와 비슷한 모습을 보고 생각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나오다니. 그는 메타인지가 발달된 것일까?

난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어찌할꼬..... 가끔 아이들이 어릴 적 경험에 대해 물어보면 생각나지 않는 부분이 의외로 많아 내 기억력이 의심스럽다. 나도 오웰처럼 문득 뭔가를 보고 생생하게 완벽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4. 르포 문학의 특징과 의미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작가인가 vs 기자인가 / 취재인가 vs 경험인가 / 기록인가 vs 문학인가


기자라면 육하원칙에 의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작가이고, 취재 또한 언제 어디서 일어난 사건인지 명확한 날짜가 필요하니 경험이며, 기록이라 하기에는 문학성이 강조되고 일반적이 소설보다는 사실성이 은연중 강조되니 르포 문학은 작가가 경험한 사실적인 문학성이 강조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5. 음, 웰다잉에 대한 나의 생각


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누가 내 손금을 보고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다는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짧고 굵게라는 생각을 철없던 시절에는 딱 40세까지만 살겠다고 다짐했건만 내 명줄이 정말 길어서인지 40세가 넘어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건강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없어 그런 것 같다. 건강하게 죽는다는 것은 고통받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잠결에 가는 것이 제일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웰다잉은 고통 없이 잠결에 죽는 것이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빠의 마지막 순간까지 더 살고 싶다고 말한 기억은 트라우마처럼 지워지지 않았고 요양병원에 맥없이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호스로 의지하며 오래 병원생활한 시아버지 생각에 몸서리쳤다.

내 건강으로 인해, 죽음으로 인해 가족에게 짐이 되는 죽음이 무엇보다 싫다.

한때는 웰다잉 붐이 일어나 관련 수업이나 자격증까지 남무 한 것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죽음을 장사로 생각하는 부분이 정말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림책으로 '죽음'에 대한 내용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우리 교육에는 '죽음'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금기처럼 쉬쉬 여기는데, 왜 그리 장례식에서는 온갖 추태를 다 보는 것일까. 웰다잉도 중요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배울 필요가 있다.


6. 인상적인 장면 / 문장


- '자연사'란 정의상 더디고 냄새나고 고통스러운 무엇이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연사를 하더라도 공공시설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거의 다 타버린 초처럼 깜빡깜빡하다 꺼져버린 그 가련한 노인은 임종하는 사람 하나 없을 정도로 하찮았다. 그는 숫자 하나에 불과했으며, 의대생들의 해부 '교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 아무나 다 보는 데서 죽어가는 비참함이란! X 병원은 병상들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가림막도 없었다. 가령 한동안 나와 발을 맞대다시피 하고 지내던, 이불만 닿아도 아파서 비명을 지르던 그 작은 사람처럼 죽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감히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오줌 나온다!'였을 것이라고 말하겠다. 적어도 그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다 죽어가는 사람도 마지막 하루 남짓은 정신이 제법 멀쩡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p339~339)


- 되도록이면 자기 집 침대에서 죽는 게 좋으며, 나다니다 갑자기 죽으면 더 좋다. 병원이 아무리 친절하고 유능하다 해도, 병원에서의 죽음은 어떤 경우든 비참하고 불쌍한 꼴을 남길 것이다. 어떤 것들은 거론하기엔 구차할 정도로 소소할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기억이 될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같이 누군가가 죽어가는, 급박하고 바글바글하고 비인간적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더욱 그렇다.

병원에 대한 두려움은 극빈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남아 있을 터이며,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최근에 와서야 사라졌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표시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발견되는 어두운 일면이다. (p345)


7.  작가가 이 글을 쓴 목적, 의도


- 파리 밑바닥 생활하다 폐렴에 걸려 입원한 경험으로 쓴 이 글을 쓴 오웰의 목적과 의도는 무엇일까?

가난한 자들은 여기서 피지배층, 식민지 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존엄성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죽어가는 과정조차 지배층들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고발한다. 병을 치료하고 고쳐주는 의미의 '병원'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 숫자로 불리며 고통스럽게 치료받고 사람다운 치료가 아닌 의대생들의 마루타처럼 이용되고 있음을 보고한다.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느끼며 특별한 경험, 외국에서의 경험에 대한 모든 것들이 이루는 삼각형 어딘가에 서 있다. 오웬이 말하던 정치적으로, 그리고 작가적 울분으로 글로 표현한다.





남다른 그림책 큐레이션


'죽음'에 관한 그림책은 생각보다 꽤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부터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행동하는지, 또한 앞으로 죽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들이다. 그중에서 선택한 그림책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림책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장례식장에 대한 생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그림책을 큐레이션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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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알라딘 서점 -
서영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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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알라딘 서점 -


인생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 여행 가는 날 >> 그림책은 할아버지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상상으로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두렵고 무서운 것으로만 생각한 독자에게 자연이 섭리로서 이해하여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그림책이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각, 할아버지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할아버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님을 반기고, 부지런히 여행 준비를 시작한다. 먼 길을 가야 하니 달걀도 넉넉히 삶고, 깨끗이 씻고, 수염도 말끔히 면도한다. 그리고 아끼던 양복을 꺼내 입고, 장롱 밑에 깊숙이 넣어둔 동전들도 모아 여비도 준비한다.
낯선 손님을 따라 여행 가는 것이지만 그곳에 가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 떠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가볍다. 할아버지 여행을 안내하는 낯선 손님은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올리게 되는 저승자사이다. 하지만 무서운 캐릭터가 아닌 귀여운 캐릭터 이미지가 '죽음'에 대한 이별 여행을 안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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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알라딘 서점 -


맷 제임스 (지은이), 김선희 (옮긴이) 책빛2020-09-30
원제 : The Funeral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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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알라딘 서점 -

우리나라 장례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장례식이다.

캐나다 장례 문화를 소개하며 어린이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복한 장례식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주로 교회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은 마음은 슬프지만 고인의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마무리해 주는 의미가 크다. 나라마다 관습은 다르지만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소중함을 진진하게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파란 새벽을 깨우는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고, 노마의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노마는 슬픔보다 학교 안 가서 좋고, 사촌 동생을 만나는 게 그저 설렐 뿐이다. 장례식이 시작되고, 어린 노마의 시선은 낯선 장례식 풍경을 찬찬히 따라간다. 노마는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어린아이에게 장례식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이 책은 아이 눈에 비친 행복한 장례식을 그렸다. 실제 작가는 그림책을 만드는 동안 아버지와 삼촌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어린 자녀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살펴보았고, 죽음에 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아이의 감정을 그림책에 섬세하게 담을 수 있었다. 죽음과는 대조적으로 생명력이 넘쳐나는 초록빛 풀빛과 장례식장 옆에서 뛰노는 아이들 모습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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