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달 The Moon under Water

<나는 왜 쓰는가> - 문학적 고백 / 펍 / 1946년 2월

by 그림책미인 앨리

1946년 2월 <이브닝 스탠더드>지에 게재된 글이다.

이 에세이의 영향으로 영국에는 "물속의 달" 이란 상호를 쓰는 펍이 많다.

현재 700여 개의 펍 체인을 거느린 기업 '웨더스푼 Whetherspoon'이 오웰의 이 글에 착안하여 사업을 시작했고(1호점이 "물속의 달"이었다) 체인 업소 중 다수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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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oon under Water -

글 제목이 특별하다. 그림책으로 꼼꼼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겨서인지 큰따옴표가 들어간 제목에서 의문이 들었다. 마치 소설 제목처럼 느껴지며 다른 에세이 글과는 다른 뭔가가 숨어있지 않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다른 글은 직설적으로 제목을 표현했다면 "물속의 달"은 은유를 사용한 느낌이 들었다.

'펍'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매트 헤이그가 쓴 소설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인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다. 주인공이 살아보고 싶었던 인생 중 하나가 바로 펍 운영이었던 기억이 나 그때 읽었던 펍의 묘사가 떠오르면서 오웰이 쓰는 펍은 어떤 풍경일지 궁금해진다.


1. 첫 세문장(p249)

-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펍(서양식 선술집) "물속의 달"은 버스 정류장에서 겨우 2분 거리이지만 샛골목에 있어서, 술주정뱅이들이나 무뢰한들이 토요일 밤이라 해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집 손님들은 꽤 많긴 해도, 대부분이 매일 저녁 같은 자리에 앉는, 맥주 못지않게 대화를 즐기려고 오는 단골들이다.

어떤 펍을 특별히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맥주 얘기부터 하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내 경우엔 "물속의 달"이 제일 마음에 드는 건 흔히들 말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2.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문장(p250_253)

- 상적"물속의 달"은 언제나 조용해서 대화를 나누기가 좋다.

여자 바텐더들은 손님 대부분의 이름을 알고,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인 괌 심을 보인다. 그들은 모두 중년이며 모든 손님을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자기'라 부른다. 인((상적


- "물속의 달"에선 마실 것을 담는 용기에 신경을 많이 쓰며, 그래서 예컨대 맥주 한 파인트를 손잡이 없는 유리잔에 따라오는 실수는 결코 범하지 않는다. 유리나 백랍으로 된 조끼 외에, 그들은 지금의 런던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느낌 좋은 분홍빛 도자기 머그잔도 쓴다. 도자기 머그잔은 30년 전쯤 사라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명한 잔을 좋아했기 때문인데, 내가 보기에 맥주는 도자기 잔에 따른 게 더 맛있다.

"물속의 달"이 대단한 건 뜰이 있다는 점이다. 살롱에서 밖으로 이어진 좁다란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꽤 큰 뜰이 나타나고, 거기 플라타너스들 아래 작은 녹색 테이블들과 철제 의자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뜰 한쪽 끝에는 아이들 그네와 미끄럼틀도 있다.

여름날 저녁이면 여기서 가족 파티가 열린다. 그럴 땐 누구라도 플라타너스 밑에 앉아,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이 신나서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맥주나 생사과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아기들이 타고 온 유모차는 문 가까이에 세워두면 된다.

"물속의 달"은 장점이 많지만, 내 생각에 제일 훌륭한 건 바로 이 뜰이다.

아빠만 밖에 나가고 엄마는 집에 남아 아기를 봐야 하는 대신 온 가족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아이들은 뜰에만 입장이 허용되지만, 펍에 슬며시 들어가서 부모가 마실 술을 가져오는 수도 있다. 그건 아마 불법이겠지만, 그런 법이야 어겨도 될 만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펍에 못 들어가게 하는 (그래서 어느 정도 여성들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야말로, 마땅히 온 가족이 모이는 장소가 되어야 할 펍을 슬 퍼마시는 곳으로만 만들어버리는 청교도적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 "물속의 달"은(아무튼 런던 지역에서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펍이다.(시골 펍의 경우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다르다.) 그런데 이제는, 명민하고 냉정한 독자라면 이미 간파했을 무언가를 밝힐 때가 되었다."물속의 달" 같은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큰따옴표를 한 이유가 드러났다.

오웰은 왜 "물속의 달"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문학적으로 다가간 글이지만 그 속에도 오웰이 주장하고 싶은 날카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아이와 함께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는 여자의 위치(여성 바텐더), 그리고 온 가족이 모이는 장소가 없었던 시대임을 독자로 짐작할 수 있다.

뜰이 있는 펍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으니 어쩌면 아내 생각과 더불어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을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 오웰에게도 따뜻한 면이 있다.


3. 마지막 두 문장(p253)

- 흑 생맥주와 장작불을 제대로 때는 벽난로, 저렴한 요깃거리, 뜰, 인자한 여자 바텐더가 있고 라디오는 없는 펍을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정말 좋겠다. 그런 데라면 이름이 '빨간 사자'나 '기찻길 문장'처럼 무미건조한 곳이어도 좋을 것이다.


"물속의 달" 펍에서 오웰을 만난다면 난 어떤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상상 속에서 오웰과 조용히 이야기해 본다. 주제 없이 시시콜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낼 것 같다.

오웰은 도자기 맥주 컵에 맥주를 난 도자기 맥주 컵에 연한 아메리카로 잔을 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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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그림책 큐레이션
문장이고 재미있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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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알라딘 서점 -


일라이자 휠러 (지은이), 원지인 (옮긴이) 보물창고 2021-07-15
원제 : Home in the Woods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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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알라딘 서점 -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책은 많다.

그중에서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오웰이 원하는 "물속의 달" 펍 이미지를 떠올려 보며 어쩌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해서 선택한 그림책이다.


<<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에서는 아빠, 남편의 잃은 가족 이야기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양아들을 입양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그리워 한 오웰이 생각났다.

이 책에서는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집을 잃게 된 '마블'과 일곱 남매 그리고 엄마는 숲 속 깊은 곳에서 타르 종이에 뒤덮인 낡고 작은 집을 발견한다. 차갑고 텅 빈 낯선 집에서 이들은 정원을 일구고 함께 일하며, 엄마가 번 돈으로 필요한 생필품을 사며 가족 생계를 유지한다.

소박하지만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 숲 속의 작은 집에서 특별한 무언가로 가득해진다.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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