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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May 20. 2024

배신의 뒤통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 선한 영향력 가면

2024년 1월에 국내 대형 출판사인 쌤앤파커스의 인문학서 '벌거벗은 정신력'의 표지가 지난해 4월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의 표지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중소 출판사 어크로스가 출간한 '도둑맞은 집중력'의 주황색 표지엔 맨 위에 큰 글씨로 책 제목, 그 아래엔 원제가 쓰여 있다. 맨 아래엔 검은색 띠지를 두르고 책에 대한 홍보문구를 넣었다. 서체, 부제 위치, 띠지 스타일 일 등 디자인 대부분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두 책의 저자가 같은 데다 책 표지 디자인마저 유사하다 보니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처럼 보였다.(출처: 동아일보 2024년 1월 11일 국내대형출판사, 중소업체 책 표지 표절 논란) 대기업이 중소기업 아이템을 따라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 말은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달콤한 물이다. 하지만 과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일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할 때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참고해서 재창조한다. 수업시간에도 '보기'나 '예시'를 보여줌으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다.

모방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재창조가 아닌 그대로 따라 하는 점은 모작과 다르지 않다. 창조는 아이디어 사업이다. 비슷한 부류에서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안다. 그래서 예술인들은 그들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이라는 보호를 받는다. 


어렵게 고민하고 내 정열을 다 쏟아부은 콘텐츠를 누군가가 가로챘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1인 브랜드를 만들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누가 도와주며 좋지만 진심으로 조언과 도움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순수한 마음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놓으면 달콤한 속삭임으로 안심을 지켜놓은 뒤 자신이 꿀꺽 삼킨다. 초보자는 모른다. 그저 하라는 대로 의심을 거의 하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믿는다. '선한 영향력'을 내세우며 윈윈하자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림책이라는 세상은 내가 생각한 만큼 그리 순수하지 않았다.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악의 없이 행동하고 도움 주고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내 착각이었다.

1인 브랜드를 만들고 숨어있는 고객들에게 브랜딩을 알리기 위해 윈윈 한다는 제안에 놓칠까 봐 덥석 잡는다. 

그 제안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적은 값이라도 뿌리치지 않는다. 잘 알려진 사람과 손 잡으면 뭐라도 하나 얻을 거라 생각에 흥분된다. 마치 유명인과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아요'수와 댓글이 쉴 새 없이 올라가는 것처럼.


내 콘텐츠가 다른 그림책 콘텐츠와 다른 점은 그림책, 북큐레이션이 접목된다는 점이다.

그림책북큐레이션을 배우고 난 뒤 모든 분야를 그림책으로 연결하면서 1인 브랜드 콘텐츠가 생각났고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비독자에서 애독자가 될 만큼 책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무엇보다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기뻤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적용시켰고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과 열정은 아깝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로 독서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이 왔다.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상태였고 나만의 남다른 독서모임을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했다. 자기 계발서를 크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자기 계발서를 읽어보자는 목표가 생겼다. 온라인 모임이었고 1년 동안 유지하는 계약조건으로 실행되었다. 갑과 을을 따지자면 난 을에 해당됐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강점인 책 추천은 할 수 없었다. 내가 담당하는 부분은 책을 읽고 한 달에 한 번 온라인으로 모여 이야기 나누며 회원들이 완독 하도록 유도했다. SNS 홍보 담당은 내가 해야 했기에 카드뉴스를 만들고 갑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은 하지 않았다. 수많은 독서모임 중에서 뭔가 다르게 접근하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 그림책큐레이션을 연결하면서 시작했다. 인원 모으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기에 걱정했는데 갑의 영향력으로 사람은 모아졌다. 신청서폼을 만들고 오픈채팅방을 개설한 뒤 한 달 동안 완독하도록 응원하며 관리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 관리는 갑이 했다. 복잡한 관리를 관여하기 싫은 마음도 있어서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설렘으로 시작한 독서모임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무리 응원하고 격려를 해도 반응이 없었고 공짜가 아닌 돈을 내고 책 읽기 하는데도 완독 하는 참여자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모임하는 날에는 인원이 점점 줄어들었다. 자료를 준비해 놓고 아무도 오지 않아 혼자 줌에 멍 때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6개월째가 되면서 스트레스가 극도로 왔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거면 하지 말라고 했을까. 흥이 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고 책도 완독 하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 기분이었다. 방법을 바꿨다. 참석할 수 있는 설문조사 후 독서모임 진행 여부를 따랐는데 독서모임이 안 되는 걸로 나와 완독 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어쩌면 처음부터 일정을 딱 정하고 하지 않아 안 모인 점도 있었지만 참여자 상황을 들어주다 보니 흐지부지 된 점도 있었다. 질질 끌었던 1년 계약 기간이 다가오자 홀가분했다. 갑에게 이제는 못하겠다고 알렸고 갑은 아쉬워했다. 마지막 날 시간 맞춰 인사라도 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 또한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뻔한 인사로 마무리하기는 싫었다.


그리고 올해 초.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갑이 운영하는 모임에서 비밀리에 작년에 나와했던 독서모임을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독서모임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했던 콘텐츠를 모방해서 마치 갑이 처음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진 점이었다. '설마'가 '이건 뭐지'에서 '이럴 수가!'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선한 영향력을 내세웠던 갑이 보여준 리더십은 윈윈이 아닌 자신만의 콘텐츠에 새로운 것을 하나 더 생성하기 위해 나를 이용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치는가! 자기 계발서 책도 작년에 나와 함께 읽었던 책이었다. 참여자 한 명씩 책에 맞는 그림책 한 권씩 선정해 오는 것도 비슷했다. 다만 그 일을 갑이 하지 않고 참여자에게 맡겼다.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그림책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이렇게 얇실하게 그것도 자신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 콘텐츠를 뺏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일체 온라인에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후문에 더 어이가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눈물도 나지 않았다. 어디 가서 고함이라고 지르고 싶었지만 지르지 못했다. 속은 내가 바보라는 생각뿐이었다. 선한 영향력 가면을 쓴 갑의 덫에 걸렸다. 배신의 뒤통수를 연타로 맞았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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