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허락한 먹방

< 다이어트 8>

by 그림책미인 앨리

우울할 때 기분을 풀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잠을 자거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거나 내 마음대로 춤을 추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이밖에도 여행 가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멍 때리기도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선택 종류도 많으며 먹는 장소도 다양하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선택하면 된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에게는 악마의 유혹이지만 스트레스 풀기에는 이만큼 제격인 것도 없다.


365일 늘 입맛이 도는 나에게 특별히 마음껏 먹으라고 허락된 시간이 있었다.

하늘도 허락한 먹방 시간이 존재했다.

힘들지만 열 달 동안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먹을 양도 무시, 시간도 무시, 그저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이 기막힌 기회는 임신이었다.


친정엄마는 삼 남매 모두 가졌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 출산할 때까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하는데 난 목인지 아닌지 입덧이 전혀 없었다. 주변에서는 없어도 있는 척해야 남편이 잘해준다고 누누이 말한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충고를 했지만 입덧을 어찌 하는 척을 한단 말인가. 남을 잘 속이지도 못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더더욱 못하기에 시도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후회막급이다.


임신으로 내 몸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왔다. 3개월까지는 별로 표도 나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았지만 5개월부터는 식욕이 더 왕성해졌다. 임산부이기에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한테 해로운 음식, 예를 들어 피부가 빨개지고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는 매운 음식은 가급적이면 먹지 않아야 했고 무엇보다 커피와 식혜를 마실 수 없었다. 인스턴트식품 또한 태아한테 좋지 않다고 해서 가능하면 피했다. 말이 하늘도 허락한 먹방이지 까탈스럽게 음식을 골라 먹어야 했다.

'처음'이라는 이유로 아이한테 피해 가는 음식은 조심하였다.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당기는 음식이 있었다.


내 경우에는 잡채, 멜론, 아이스크림, 햄버거가 유달리 당겼다. 더 이상한 것은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는 먹고 싶은 브랜드가 정해져 있었다. 베스킨***31과 버**햄버거였다. 아이스크림은 집 근처에 있어 남편이 퇴근하거나 늦게 집에 오는 날에는 미안한 마음에 언제나 패밀리 사이즈로 사와 야식을 선사했다. 지금도 좋아하는 치즈맛 위주로 골라와 난 천국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늦게 먹어도 그만 먹으라는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고 남김없이 먹을 수 있어 먹방의 행복감을 느꼈다.


burger-4369973__340.jpg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버**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었다. 불행히도 버** 햄버거 가게가 많이 없던 시절이라 집 근처에는 없었고 집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시내로 가야만 매장이 있었다. 사람 많은 곳을 가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먹고 싶다고 말하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내가 임신을 했으니 가긴 가야 하는데 복잡한 시내라 가기는 싫고 간다고 해도 매장에서 기다리는 것이 싫었던 남편은 할 수 없이 간다는 표정으로 차 시동을 걸었다. 먹고 싶은 것을 불편하게 눈치 보며 먹어야 되는지 생각도 들었지만 먹고 싶다는 욕구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매장도 멀고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없을 때라 복잡한 시내 골목으로 차를 이용해 가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평일 낮임에도 이 날따라 차들이 많아 밀리기 시작했고 말은 안 하지만 짜증지수가 올라가 굳어지는 남편 얼굴이 보였다. 괜히 차 창문을 내려 밖을 보기도 하고 살짝 자는 척도 해보았다.

'아니, 아내가 먹고 싶다는 햄버거를 사러 자기 혼자 갔다 와도 되겠구먼 꼭 나를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은 무슨 심 보지? 이왕 가는 거 좀 편안하게 해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며 서러웠다.


겨우 매장 앞에 도착했고 남편이 주차할 동안 난 차에서 조심스레 내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좀 특이한 냄새가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메뉴판을 본 순간 자연스레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동자는 커지며 머릿속에서는 무엇을 먹을지 뇌 가동이 시작되었다. 여기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햄버거에 비해 고기 육즙이 찐했고 직접 화로에 구운 것처럼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냄새, 그리고 씹는 순간 느껴지는 촉감은 특별했다.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는 남편 전화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해지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마침 주문한 햄버거가 나왔고 부랴부랴 차을 차고 집으로 갔다.


좁은 차 안에서는 햄버거의 특유한 맛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내 코는 참지 못하고 벌렁거렸다. 당장 먹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믿지도 않는 부처님, 하나님 등 내가 알고 있는 신이라는 신은 다 부르며 참았다. 숨을 깊게 마시면서 눈으로 먹방은 시작되었고 한 입 베어 먹으면 육즙이 나올 식감과 기름에 막 튀긴 통통한 감자튀김 냄새에 침이 떨어지려 할 때 집에 도착하였다. 빨리 먹자라는 생각에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띠띠띠띡! 띠리릭~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고 후다닥 신발을 벗은 후 햄버거 먹을 준비를 하였다.

몸은 무거운데 어디서 이런 스피드가 나오는지 나 조차도 궁금할 정도였다. 최고의 만찬처럼 예쁘게 세팅하고 햄버거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다행히 빵 온기는 진행 중이었고 침을 흘리게 하는 냄새의 유혹은 나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하였다. 햄버거 봉지를 조금 뜯어 입을 크게 벌린 후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바로 이맛이지!


부드러운 빵 위에는 두툼하며 육즙이 풍부한 고기 패티가 있고 그 위에 쭉 늘어나는 노란 치즈, 그 위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투명한 붉은색 토마토 한 조각, 다시 그 위에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양파와 그 위를 점령한 사각사각 소리 나는 양상추. 마지막으로 이들을 다 품고 있는 빵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바삭바삭 소리 나는 통통한 감자튀김과 부담 없는 우유까지 환상의 만찬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남편은 재미있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매콤한 냄새가 나는 맛있는 라면을 옆에서 먹고 있었다. 언제 라면을 끓였는지 모를 정도로 난 햄버거에 온통 빠져 있었다.


하늘도 허락해준 먹방이 쉽지만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하루였다.

아이를 위해 가릴 것도 많고 조심해야 할 음식도 많지만 열 달 동안 내가 먹은 것이 아이가 먹는 것이라고 변명하며 부지런해 즐겁게 먹었다. 이러다가 배가 터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출산이 다가오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임산부에게 주는 최후의 만찬이란 생각이 들었다.


365일 입맛이 매일 살아있는 나에게, 임신기간은 작은 축복이었다.


다운로드 (2).jpg


이전 07화비밀스러운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