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과 감추지 못하는 표정의 그녀
어쩜 저리도 얼굴 안색 안 바뀌고 말을 할꼬.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혀를 내둘렀다.
언제가부터 그는 마음과 다른 얼굴과 목소리로 상대방의 비위를 맞췄다.
뭐 시장에서 장 볼 때 하나 더 덤으로 얻기 위해 말하는 아줌마와 다르지는 않았다.
그런 비위를 전혀 맞추지 못하는 그녀는 그저 그런 그가 신기하기만 했다.
"조금만 살살 긁어주면 덤이 온다니깐."
그래서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녀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는 하얀 거짓말을 자주 했다.
특히 부모에게 하는 하얀 거짓말은 걱정 때문에 하는 거라고 아이들에게 변명한다.
집에 있으면서도 움직이기 싫을 때는 회사 갔다고 말하라고 시켰고, 아프지 않은데 일하기 싫을 땐 아픈 연기를 했다. 어릴 적 꿈이 배우라서 그런지 간혹 헷갈릴 때가 있다.
그는 그저 쉬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가장이 되고 난 후부터는 자심의 마음을 속여야만 했다. 특히 회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걸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 하나만 참거나 속 없는 이야기를 해서 덕을 본다면 가족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가끔 그는 생각한다. '난 돈만 벌어오는 기계인가.'
그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지만 그는 일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이 많았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같이 있으려고 애써보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공부로 시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과거의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았다. 올바르지 않은 행위를 보면 따져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피해 다녔다.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지만 애써 끄려고 노력했다.
해봐야 변하는 건 없고 돌아오는 건 불이익이기에 안 보려 했다. 대신에 가족을 위해 하얀 거짓말이 점점 늘어났다.
그녀는 하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났기 때문에 감정이 금방 탄로 났다.
낯간지러운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싫은데 좋은 표정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하얀 거짓말을 강요할 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매번 우리는 할머니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게 많나요?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나요?"라고 아이들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은 하얀 거짓말로 진실이 드러나려고 할 때 현장에서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부모님 방문일 때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숨기에 바빴다. 또한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 머리를 바쁘게 굴려야만 했다.
투명하게 살고 싶은 그의 마음과는 달리 반투명처럼 지내야 하는 그와 때론 투명한 것보다 반투명이 필요하는 그녀는 오늘도 하얀 거짓말과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바쁘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