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Nov 04. 2024

운전하는 그와 운전 못하는 그녀

능숙 운전자와 장롱 운전자

운전대를 잡았다.

능숙한 포즈로 운전석을 체크하고 백밀러를 점검한 후 차에 시동을 걸었다.

현금 사백 만원을 주고 산 중고차는 주인이 이끄는 대로 유연하게 좁은 주차장 길을 빠져나왔다.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그는 그녀가 어딜 가자고 하면 늘 집 근처만 뱅뱅 돌았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로 여유롭게 운전하는 그를 그녀는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이왕이면 외곽지역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대형 마트  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이 입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명품매장에 오픈런을 한다는데, 그녀는 그와 함께 마트 오픈런을 하게 됐다.

'젠장! 어딜 가자고 하면 무조건 오픈 시간에 맞춰 움직이다리...... 주말인지 평일인지.'

입 밖으로 진심을 쏟아내면 평화가 깨질까 봐 그녀는 오늘도 속으로 쓴맛을 삼키며 마트로 향했다.

아침부터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는 걸까.

오픈 시간 10분이 지나자 대형마트 주차장은 만차로 숨이 막혀왔다.

필요한 물건 외에 유혹을 참지 못하고 고른 식품들은 예상밖 지출로 눈썹이 올라갔지만, 아이들에게 맛난 생각에 다시 갈매기 모양으로 변했다. 

거미줄 같은 주차장을 벗어나 잠시나마 집에서 벗어난 바깥공기를 마셨다.


그가 운전하는 20년 동안 무사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 카메라에 신호 위반으로 벌금이 날아오긴 했지만 사고 한 번 나지 않음에 그저 고마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운전을 잘한다. 넣기 힘든 주차도 한 번에 쓱 넣는다.

차 운전예절도 바르고 깔끔하게 잘 지킨다.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넣거나 누가 양보 운전을 하면 꼭 고맙다는 깜빡이로 인사한다. 그는 새 차를 사고 싶지만 형편상 중고차를 구입한다. 그래도 깔끔하게 사용한 덕분에 꽤 오래 탄다. 본전을 뽑는다. 다만 멀리 아주 멀리 가는 거리는 지양한다.


그녀가 운전을 못하다 보니 때론 갑갑할 때가 있다. 가끔은 다른 아내들처럼 운전하면 좋겠는데, 그녀는 운전 미숙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남편인지 머슴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는 말하는 그녀를 차가 있는데, 그가 할 수 있기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그를 존중해 주는 그녀가 고맙기에 그녀가 어딜 가자고 그냥 흘러 이야기해도 기억했다가 함께 간다. 그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는 곳을 가는 경우에는 갈 때는 그가 운전하더라도 올 때는 그녀가 운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말한다.

"운전 언제 배울 거야? 이제는 좀 할 때도 되지 않았어."라고 흘려본다.


능숙 능란하게 운전하는 그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운전을 하긴 해야 하는데. 요즘 같아서는 혼자 어디라도 가고 싶으니 운전하고 싶다.'

그녀는 운전 면허증이 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바로 운전할 수 없어 따기만 하고 운전대는 잡지 못했다. 일 년이 2년이 되고 5년이 되고 십 년이 되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동생 지인에게 연수를 받았다. 연수받고 바로 운전할 생각이었지만 빗나갔다. 그녀가 운전대를 잡자 차는 자꾸만 중앙선으로 침범했다. 놀란 가슴에 동생은 뒷좌석에서 엑스자로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다시는 못 타겠다면 혀를 내둘렀다.

동생 지인의 재빠른 처리가 없었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그 뒤로 그녀는 운전대를 더 잡지 못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가 모르게 운전학원에서 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해준 운전 강사는 잘한다면 칭찬해서 용기를 얻었다. 서프라이즈로 보여주고 싶었지만 연수가 끝난 게 다였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차로 운전하면 15분 정도 걸리는 대형마트까지 운전할 수 있도록 그가 그녀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조수석에 앉은 그는 그녀가 어떻게 운전하는지 살펴보며 확인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조용하던 그는 시종일관 입을 쉬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냥 아빠가 운전하면 안 돼요?" 하며 울먹였다. 운전대를 잡은 그녀는 불안이 점점 엄습해 오면서 머리가 하얗게 됐다. 옆에서 종알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어떻게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양손을 운전대에 의지하면서 엑셀, 브레이크를 중얼거리며 엉금엉금 달려갔다.

15분이라는 시간보다 약 1시간이 걸린 시간에 그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됐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엄마, 운전하지 마세요. 빨리 죽기 싫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곤 그녀 눈을 피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열이 식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운전미숙으로 인한 불화는 그녀에게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않겠노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칫! 그럴 수도 있지. 두고 봐라. 자율주행 차가 나오면 다 안 태워 줄 거다.'

세월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고, 자율주행차가 시판되었다.

새 차를 살 형편이 아닌 그녀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젠장! 자율주행차도 날 거부하는 거야!'라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그녀는 능숙 능란하게 운전하는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해 본다.

이전 13화 반투명 그와 투명한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