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지 않는 그와 독서를 즐기는 그녀
"책 좀 읽어라!"
참다 참다 폭발한 그가 작은 아이에게 한 소리 한다.
"공부하라는 소리 안 하잖아. 그 시간에 책 좀 읽어라고. 폰 대신 책을 읽으면 안 되니? 도대체가 네가 <런닝맨>에 나오는 깡깡이와 다른 게 뭐꼬?"
그와 그녀 집에서는 '공부'하라는 소릴 하지 않는다.
대신 ' 책 읽어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한다.
왜?
독서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서하라고 한 그는 책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지식배경은 네이버 지식과 다르지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 책을 읽은 효과라 했다.
지금처럼 폰이 없던 시절, 유일하게 놀 수 있는 건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일과 독서가 전부였다.
그 시절 책은 귀했다. 전집이 유행했던 시절이었고 집집마다 백과사전이나 명탐정 홈즈 시리즈가 있는 집은 부자로 인식되었다. 그의 엄마는 그에게 책 읽기를 강조했다. 반항하지 못했던 시절, 그는 하염없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 읽는 동안에는 엄마의 강압적인 잔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책에는 그가 모르는 신기한 일들이 펼쳐지는 또 하나의 놀이터였다. 부유했지만 아낀다는 이유로 책을 친적집에서 빌려 읽거나 얻어와서 읽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책 내용을 모조리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때 반복적으로 보았던 내용이 지금도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했다. 또한 독서 덕분에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알고 있다. 독서의 중요성을.
그래서 아이들도 또한 그가 경험한 독서의 쾌락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식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자기만큼 독서하지 않는 아이 모습에 머리 뚜껑이 몇 번이나 열렸는지 모른다.
애독자였던 그는 현재, 비독자가 되었다.
어릴 적 너무 많이 읽어 책이라고 하면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세월에 강자가 없다고 말처럼 나이가 듦에 따라 눈도 잘 보이고 피로를 독서로 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 자체가 하기 싫었다. 차라리 술을 마시거나 자는 게 그의 피로를 푸는 비타민이었다.
날마다 독서하는 그녀가 그저 신기하게 다가왔다.
오늘도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 읽기 시작한다.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독서에 몰입한다.
책장을 덮으면 내용이 100%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새로운 걸 아는 재미가 그녀에게는 낙이자 위로였다.
도서관에 가면 '오늘은 안 빌려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가방 안에는 빌려가는 책으로 가득 찼다.
본격적으로 독서하기 시작한 그녀는 독서모임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던 그녀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책 읽기는 그녀를 간헐적 독자에서 애독자로 바꾸어 버렸다.
책에 흥미를 느낀 그녀는 한 달에 3권 정도 읽다가 이제는 5권 이상을 읽었다. 책 읽기 재미에 푹 빠졌다.
아이들보다 그녀가 더 많이 독서했다. 누군가 부모가 책을 꾸준하게 읽으면 자녀가 자연스럽게 독서하게 된다고 했지만 백발백중 처방은 아니었다.
한 권을 다 읽어야 다음 한 권으로 넘어갔었다. 지금은 동시에 여러 권을 읽을 수 있는 스킬이 생겼다.
그녀는 기억을 잘하지 못해 적으면서 읽기 시작했다. 괜히 쓰면 1초라도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쓰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녀 책상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서관 가서 책을 빌려 읽을 수도 있지만, 원하는 책이 없을 때는 답답해서 사기도 하고 도서관이 멀다 보니 차라리 구매해서 그녀가 원할 때 읽고 줄 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녀도 안다. 책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하지만 책을 사려는 욕심은 버릴 수가 없었다.
다만 그런 그녀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 때문에, 한 번씩 책 때문에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다 보니 그녀는 책을 덜 사려고 노력 중이다.
읽은 책은 다시 팔기도 하고 지인에게 주기도 하지만, 희한하게 책을 팔거나 주고 나면 꼭 그 책이 필요해지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책을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 자꾸만 빈 곳에 책이 쌓여만 간다.
그녀에게 책은 친구이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였다.
책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했고, 위로를 받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을 두 번 읽는 즐거움도 느꼈다. 그녀가 느낀 희로애락을 다른 사람과 함께 느끼길 원했다.
독서모임을 만들고 독서클럽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때론 모집이 안 되더라도 그녀는 혼자 독서하는 즐거움을 놓지 않았다.
"이거 또 책이야?"
씩씩거리며 스팀이 올라가는 그의 목소리에 '쿵'하고 그녀 마음속에 무거운 돌이 떨어졌다.
심장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고,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굴리기에 바빴다.
책이 든 택배를 치운다는 걸 미루다 그의 퇴근시간과 맞물려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당신, 지금 집 좀 보라고. 이 좁은 집에 내 공간이 어디 있냐고? 책만 치워도 집이 훤하겠다."
고음으로 올라가는 목의 핏줄이 그녀를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
'아~ 어떻게 해야 한다 말인가.' 그녀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책 한 권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그저 비참할 뿐이었다. 홧김에 책을 버릴까 싶어 그녀는 더 이상 대구하지 않았다.
그저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울컥했지만 누르고 또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