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는 아줌마!

미친녀자 아니에여!

by 은선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른아홉이 되어서 우산 없이 집을 나선 것도 드물었지만,
비에 이렇게 홀딱 젖은 건 정말 몇십 년 만이다.

얼굴에 몇 방울 붙는 정도였던 빗방울들이
점점 불어나더니,
때를 지어 나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신경조차 쓰이지 않던 고얀 것들이
이제는 내 몸 구석구석을 점령한다.

상식적으로는 여자니까 가슴부터 젖어야 할 텐데,
배부터 물들어버린 현실에 괜히 헛웃음이 난다.
빗방울은 내 팔뚝의 솜털들을 야무지게 쥐어잡고는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초여름 날씨에 내 체온을 훔쳐가려는 도둑놈 심보랄까.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것들이 나를 심술 나게 하려 할수록
나는 더 즐거워진다.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려
눈을 찡그려 올려다본다.
내가 본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만,
가로등에 반사된 빗방울들이
꽃가루처럼 흩날린다.
마치 나를 위해 뿌려지는 축복처럼.

‘착각하지 말라’며
빗방울은 내 눈동자에도 떨어진다.
주르륵—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오히려 좋다.

집으로 가야 한다.
영화 한 장면처럼 씽잉 인 더 레인~이라도 흥얼거리며
춤추고 싶지만,
나는 그저 아줌마일 뿐이다.

춤추고 싶은 이유는 그저,
어릴 적
비 맞으며 자유를 느꼈던 그 기억이
문득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공상을 하며 걷는 집까지의 길은
생각보다 짧다.
발걸음을 재촉할수록
뒤꿈치에 붙어 있던 물방울들이
툭툭— 종아리를 때린다.

… 늬들도 아쉬운가 보구나.
나만큼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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