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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Oct 21. 2024

중년에 맞춘 결혼반지

 

며칠 전 남편과 결혼반지를 맞췄다. 함께한 지 15년이 넘어가는데 결혼반지라니. 우린 결혼식이라는 계기가 없어선지 그 시절 결혼반지를 따로 맞추지 않았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예정일에 맞춰 아이 탄생석을 하나씩 넣은 링반지를 단돈 20만 원씩에 맞췄었고 그 반지를 결혼반지처럼 쭉 착용하고 지내왔다. 그런데 반지가 너무 쌌던 걸까. 분명 14K였던 것 같은데 최근에 반지를 낀 손가락과 맞닿은 피부에 자꾸 염증이 올라왔다. 난 피부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금이 아닌 도금이나 은을 착용하게 되면 그 모양 그대로 피부가 회색빛깔로 변하면서 알레르기가 올라온다. 남편은 뭐 이런 몸뚱이가 있냐며. 연애시절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던지 최고급 은을 사용한다는 티파니에서 뱀이 감싸는 듯한 모양의 반지를 내게 선물을 해준 적이 있었다. 결론은 그 아름답던 뱀반지는 내 손가락에 회색빛깔의 뱀자국만 남기게 되었고 환불이 될까 찾아갔던 티파니에선 내 손가락을 보자마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사과를 마구 하시며 아무래도 고객님께는 이 반지를 팔 수가 없을 것 같다며 깔끔하게 환불을 해주셨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결혼반지 역할을 수행해 주었던 우리의 링반지는 이제야 솔직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것인지 갑자기 내 손가락에 물집과 가려움을 마구 선물하며 나를 벗어나보겠다며 버둥거렸다. 남편은 내가 반지를 바꾸고 싶어서 일부러 피부에 물집을 일으키며 벅벅 긁어댄 게 아니냐며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고 나는 오히려 이 자식이 이 반지 분명 14K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냥 1.4K가 아니었을까 하며 남편을 더 깊은 의심의 눈으로 노려봤다. 그리고 우린 쿨하게 합의했다. 이 반지는 목숨이 다한 것 같으니 그만 보내드리고 새로운 반지를 맞춰보자고. 유후- 신이 났다. 마치 리마인드 웨딩을 올리는 기분이랄까. 마침 금값이 최고치를 달하고 있다는 지금, 하필 꼭 지금 반지를 바꾸기로 한 우린 팔짱을 끼고 동네 금가게들을 돌아다녔다.     


40대 중반, 50대 초반의 남녀 커플이 반짝이는 눈빛을 한 채 “결혼반지 보러 왔어요”라며 금가게를 돌아다니자 사장님들은 우릴 분명 재혼커플로 보는 듯했지만 그저 신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여러 디자인의 반지를 껴봤다. 평소엔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 손에 끼어진 결혼반지 디자인들에 눈이 갔고 음- 저 사람은 까르띠에 디자인이군. 음- 저 사람은 분명 티파니 디자인일 것이야. 하며 그럼 나도 명품 쪽을 한번 눈을.. 돌릴 뻔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둘 다 마음에 쏙 드는 예쁘고 독특한 디자인의 반지를 발견해 주문을 넣게 되었다.     


기분이 뭔가 참 묘했다. 15년 전에도 하지 않았던 그런 몽골몽골 한 설렘 같은 게 마구 올라왔달까. 예비 신랑신부들이 예식을 준비하고 예물을 준비하고 드레스를 고를 때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스스로 선택해서 하지 않고 지나갔던 경험을 지금이라도 조금 느껴보니 새삼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눈빛에 깃들어 있던 설렘이라는 감정이 조금은 더 많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이해와 함께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식에 대한 선택을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출간한 첫 책 [그렇게 남들 기준에 맞추며 살지 않아도 돼] 글 중에 아이가 만약 나에게 “엄마는 왜 결혼식을 하지 않았어?”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엄마는 엄마만의 결혼식을 했어. 엄마는 그때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어.”라고 대답하리라 써놨는데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내 감정에서 끝나는 대답이 아닌 “우리 딸도 딸이 원하는 결혼식을 하도록 해. 그게 화려한 결혼식이든 둘만의 결혼식이든 그 어떤 선택도 너만의 선택이고 너만의 꿈의 날이 될 거야. 어떤 선택이든 미련과 후회가 남으면 안 돼. 그럴 수 있다면 그게 너의 최선의 선택일 거야.”


오늘 기다리던 반지가 나왔다. 반짝거리며 빛이 나는 반지를 남편과 서로 나눠꼈다. 무언가 조금은 아쉬웠던 감정이 이 반지를 고르고 맞추고 기다리면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새로운 결혼반지 덕에 남편과 새로운 리마인드 웨딩을 올린 것 같다. 30대 때 처음 나눠꼈던 링반지는 누구나 그렇듯 둘만의 사랑의 약속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중년이 되어 다시 맞춘 우리의 결혼반지는 서로의 삶에 대한 충실함과 행복에 대한 약속이다. 내가 해왔던 선택들은 시간이라는 흐름에 맞춰 가족과 함께 삶을 쌓아가면서 조금씩 변하고 성장한다. 한 가지 방향만을 고집하는 게 아닌 상황에 따라 유하게 흘러가며 부족한 건 채우고 놓친 게 있다면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최선의 결과를 향해 다듬어 나가고 싶다.

중년에 다시 맞춘 결혼반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새로운 빛이 우리의 삶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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