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_ 원하지 않는 스트로크는 단호하게 거절하라
성장통과 고통은 다른 거야-
네 번째 스트로크 경제 법칙은 '원하지 않는 스트로크가 오더라도 거절하지 말라'이다. 이번 편에서는 이 법칙을 타파해 보도록 한다.
이 네 번째 법칙은 관리자에게 민원인 또는 직원으로부터 날아오는 비난과 불만 사항들을 여과 없이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필요한 건의사항과 의견은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도를 넘어서는 비난과 억측은 관리자를 병들게 한다. 성장통과 고통은 다른 것이지만, 관리자 자리에 있어보니 성장통과 고통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대부분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어린이집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매섭게 날아왔고, 책임감 있는 관리자이고 싶었던 나는 그러한 부정적인 스트로크들로 인해 아프고 힘들었지만 성장을 위해 그것들을 거절할 수 없었다.
'순응'하는 기술 버리기
따뜻한 칭찬은 받지도 못하고 방어하면서, 차가운 비난과 과도한 부담은 왜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못난 내 탓이요' 하면서 넙죽넙죽 받는 걸까? 긍정적인 스트로크가 올 때 방어 없이 받아보시라는 이야기를 지난 화에서 했다. 그러면 부정적인 스트로크가 올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거절해야 한다.
관리자는 자신이 책임지는 기관이나 사업장에 대해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종종 사고나 실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사고나 실수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로서 사고나 실수에 대해 통감하면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다. 안전사고나 감염병 관리 등은 관리자가 100% 통제를 약속하기가 어려운 영역이다. 직원들의 근무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도 관리자로서 답답한 부분이 있다. 근로기준법에 근거해 위반사항 없이 운영한다 하더라도 직원들은 일이 힘들다고 말한다. 손해 보는 것을 경계하는 요즘 시대의 직원들을 앉혀놓고 회의도 해야 하고 교육도 해야 하는 마음이 무척 무겁다.
마음속으로는 '나 때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관리자인가 보다. 하지만 '나 때는~'이라는 말로는 현재에 벌어지는 어떠한 일도 해결할 수가 없다. 그들이 야속하기보다는 시대가 변한 것이다. 나는 그런 시대에 근로자로 살아보지 못하고 관리자가 된 탓에 이러한 억울함을 겪는 것일 뿐이다. 직원들을 탓하지 않고 시대를 탓하다 보니 내 마음가짐이 바뀌면 된다는 해안이 나온다. 나 때는 순응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권리를 잘 챙기고 손해보지 않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이다. 관리자인 내가 억울하지 않으려면 민원인이나 직원들에게 순응하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아끼고 잘 지켜내야 한다. '순응'하던 습관을 갖다 버리는 것! 그것이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거절하기 위해 우선해야 하는 과제이다.
종종 가까운 원장님들께 전화가 온다. 학부모 또는 교직원의 과도한 요구에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고 관리자라는 자리가 싫어진다는 내용들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관리자인 건 아닌가 하는 불안까지도 안고 계신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좋은 관리자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순응하는 어린아이 마음이 만들어 낸 죄책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불평과 불만을 다 들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니 종국에는 그런 요구를 한 상대방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닐까? 애초에 모든 비난과 불만을 접수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면,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어려운 것을 잘 선별하여 받아낼 기준이 명확하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선을 넘는 요구와 선을 넘는 불만에는 '순응'보다는 친절하게 '거절'하는 기술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문제는 그 적절한 선을 보는 안목이 나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거절'을 위한 안목 기르기
긍정적인 스트로크와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구분해 내는 능력이 왜 나에게는 부족했을까?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판별해 내기 위해서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어렵다. 속 다르고 겉 다른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실수를 했을 때 "잘~ 한다."라는 말을 쉽게 들었을 것이다. "잘~ 한다."라고 말하던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떠올려보자. 표정도 목소리도 능글맞게 여유 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우리의 마음은 쨍~하니 아팠다. "잘~ 한다."는 부정적인 스트로크였던 것이다. 그러니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마음으로 구분해야 한다. 스트로크가 왔을 때 마음에게 물어보자. 가장 먼저 느껴진 감정은 무엇이냐고-
그런데 마음이 하는 말도 다 믿을 수가 없다. 마음 중에는 느낀 바를 사실대로 말해주는 진정한 감정도 있지만,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거짓말을 하는 감정도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외로움으로 대체해 버린다거나, 두려움을 배신감과 수치심으로 대체해 버린다거나, 슬픔을 죄책감으로, 기쁨을 열등감으로 대체해 버리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기쁨과 분노, 슬픔, 두려움이라는 진정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 눈치 보는 어린이 같은 마음이 만들어낸 대체된 감정들은 우리 마음에 어떠한 감정이 처음 느껴졌는지를 잊게 하고 숨겨버린다.
나의 경우는 화가 나야 하는 순간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부당하다고 소리쳐야 하지만 나만 홀로 외딴섬에 떠내려와 주저앉아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다. 화를 내는 것보다 얌전히 눈물이 나 흘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왔지도 모른다. 관리자가 되어서도 도저히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는데 많은 요구나 불만이 쏟아지면 구석에 앉아 울었다. 왜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방어하지 못했을까?
"속상하죠? 차 한잔 하며 이야기해요."라며 화가 난 상대방의 감정을 수용해 주고 좀 기다렸어야 했지만, 내 마음은 콩닥콩닥 방망이질 치며 한시라도 빨리 상대방을 화나게 한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의 수고와 자존심을 상납했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난 다음 밀려오는 감정은 나에게는 '외로움'이었다. '이 세상에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도와줄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 혼자서 씩씩하게 해결해 내야 해.'
부정적인 스트로크가 나를 생채기 낸다는 것을 몰라서 넙죽넙죽 받았을까?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받는 것은 언제나 아프고 속상했지만 그것이 나를 키워줄 것이라고 믿었다. 성장통이라 믿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고통 없이 피는 꽃은 없다는 말들을 모두 믿었었다. 그래서 나에게 쏟아지는 스트로크가 부정적인 스트로크인지 긍정적인 스트로크인지 구분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 이제는 좀 걸러서 받아보자. 긍정적인 스트로크는 넙죽 받고,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거절하자. '당신이 나를 얼마나 하찮게 보아서 그런 말을 쉽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키우자. 귀로는 듣고 친절하게 대응하되, 마음으로는 듣지 말자!
부정적 스트로크 거절하는 법
앞서 2화에서 소개한 것처럼 스트로크에는 긍정적 스트로크만 있으면 좋겠지만 부정적인 스트로크도 함께 존재한다.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B급이라고 점잖게 이야기했었다. 부정적인 스트로크에 대해 조금 더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인정받고 자극을 추구하고 안전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며 인간을 스트로크 기아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피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어떻게 하면 친절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 내가 찾은 전략은 겉으로는 받고 속으로는 거절하는 것이다. 남이 주는 비난을 그대로 받아버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과 밖에 없다. 하지만 민원인들이 바라는 것이 사과가 아니라 해결이다. 비난을 마음으로 깊이 받지 말고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신호' 정도로 인식해 보자. 나 자신을 잘 챙기고 상대방의 곁에 따뜻하게 머물러준다면, 서로가 노력하여 해결할 수 있는 멋진 대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 문제는 발생했고, 우리는 서로 노력하여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입어 화가 나고 속이 상하는 상대의 마음도 옳은 것이고, 모든 것이 내 탓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억울한 나의 마음도 옳은 것이다. 상대의 감정에 휘둘려서 서둘러 '내 탓이오' 하지 말자. 겉으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수용해 주며 속으로는 현명한 방법을 물색하면 된다.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동시에 해내는 훈련을 하면 된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실수를 하는 것보다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감정에 휩싸였을 때에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을 붙들고 있는 편이 효과적이다.
화가 난 민원인 및 직원을 대하는 전략!
1. 친절하게 원하는 '스트로크'를 준다.
(스트로크를 주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눈을 찔끔 감고 그냥 하자.)
2. '부정적인 감정이 사그라들면' 어떠한 지원 또는 회복을 원하는지 물어본다.
(수용 가능한 안이 나온다면 바로 접수! 수용 가능한 안이 없다면 마음이 덜 풀렸다. 다시 1번으로!)
3.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준다.
(드디어 억울함을 해소하는 순간!)
어이없는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 똑같이 버럭! 하고 맞받아치면 쉽게 끝날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풀어야 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항상 친절함을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서 어쩔 수가 없다. 친절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기관의 발전을 위해', '다른 서비스 대상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등의 이타적인 명분을 들어 관리자를 주눅 들게 한다. 결과적으로는 기관이 발전하고 다른 이용 대상자들에게도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이점이 있겠지만 그것은 결과이지 이유는 아니다. 그들이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입은 피해와 상처로 인해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비난은 타인의 마음이 상처 입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해결하자. 내 안의 비난의 목소리까지 동원하여 나 자신을 상처 입힐 필요는 없다. 상처 입은 나의 마음은 문제를 해결해 낼 힘이 없다.
상대가 주는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상대방이 스트로크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나 자신을 깎아내리려 하지 말고 그냥 그들이 원하는 스트로크를 주는 것으로 해결하자. 원하는 만큼 받고 나면 부정적인 감정은 회수해 갈 것이다. 그런 다음 명확하게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부정적인 스트로크가 날아오면 '갑질' 정도로 받아들이자. 갑질은 거절하되 건의는 충실하게 받자.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오롯이 세우고 반듯하게 서있을 수 있어야 한다. '갑질'에 감정이 휘둘리지 말고, 내가 알아야 할 것과 반영해야 할 것만 명석하게 받아들이자.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장기하와 얼굴들 '그건 니 생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