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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Sep 02. 2023

늦깎이 글쓰기 인생

뒤늦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

나는 혼자가 되었어요. 익숙한 곳을 떠나 외부 세계에서 나 자신, 나의 필요에만 집중하려 노력했죠. 걷기도 하고 책도 읽었어요. 수영도 하며 일기도 썼어요. 잠잠한 시간을 가지며 숨을 들이마셨어요.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어요.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갔던 부위가 낫기 시작하는 것 아니겠어요? 더 이상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지 않았어요. 다시 진정한 나를 찾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죠.

- <좋은 달걀> 조리 존 & 피트 오스왈드, 하퍼콜린스 -     


I was alone. Out there, on the road, under the stars, I really tried to focus on myself and what I needed. I took walks. I read books. I floated in the river. I wrote in my journal. I found several moments to be quiet. I breathe in. I breathe out. For once, I found time for me, and guess what, little by little that cracks in my shells started to heal. My head no longer felt scrambled. I started to feel like myself again.

- <The good egg> Jorry John & Pete Oswald, HarperCollins -     



2021년 1월, 글쓰기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떨어진 자존감이 지하에서 헤맬 때였다. 살기 위해 썼다. 어설픈 나의 모습에 대한 자괴감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싶었다. 허기졌던 나에게 숨을 불어넣고 새롭게 나의 삶을 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치열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 글이 되어 가면서 깨어진 자존감이 서서히 회복되었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통과하며 자존감이 땅 위에 발을 디딜 무렵 책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몸 사릴 수 있는 사십 대에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설렘을 안았다. 다행이다. 늦었지만, 크게 늦지 않았다.


우리의 인생 시계는 , '빨리'가 아니라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고 있다. 부정확한 나의 마음만 바쁠 뿐, 변칙 없이 묵묵히 째깍째깍 열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빠르진 않아도 너무 늦지도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때는 아직 적당하다. 눈물 젖은 시간을 짜내고 언젠가 축축함 없이 잘 건조된 무지개가 떠오를 수 있다.



글 쓰는 이유, 모두가 다르다. 그럼 나는? 문득 자문해 본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에 누구보다 서툰 나에게서 마법처럼 홀린 듯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영육의 협응 체제가 작동하다니, 벌써 수줍게 내어 놓은 여러 권의 책들이 조용히 책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니, 도저히 말이 안 된다.


개인적인 관계의 망을 훌쩍 넘어서서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읽힐 내 글을 저작하는 과정이 한계에 갇힌 나를 뛰어넘는 짜릿함을 주기 때문일까? 끊임없이 나라는 사람을 뒤집고 흔들어 저 깊이 박혀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끌어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 던져주는 쾌감 때문일까?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미문(美文)으로 만들어가는 막일 작업. 지난한 퇴고의 과정이 번데기가 나비로 아름답게 탈태하듯 매끈한 책 출간이라는 보상으로 상쇄되고도 남기 때문일까?


나도 정말 모를 일이다. 단, 첫 출간부터 지금까지 내 품에서 꿀렁거리는 느낌하나가 있다면 '가능성'에 대한 설렘, 그 한 가지다. 가능성은 나에 대한 희망이다. 도착에 대한 부담이 아닌, 과정에 대한 벅참이다.


글은 나를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나의 민낯을 처절하게 드러낼 수도 있다. 글 하나로 인해 나를 지정할 수 있다. 펼쳐진 나의 글 속에서 내가 의도한 것과 전혀 상관없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필요한 무언가를 알아서 취해간다. 그것이 나눔이기도, 위안이기도,  지침이기도 하다. 글쓴이에게 선택의 권한이 없는 오롯이 독자들이 가져가는 몫이다.


모든 것이 다양하고 모든 것이 무한하며, 아무것도 테두리 안에 정해짐이 없다. 그저 다이내믹하게 여러 모양의 가능성이 여기저기 튀어 다닌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예측할 수 없는 무형의 가능성이 언젠가 유형으로도 맞닿을 수 있는 세계, 그래서 나는 글을 쓰나 보다. 글 쓰는 게 좋다. 계속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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