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국 Aug 02. 2024

역사의 시작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여기서 말하는 역사란, 내가 영화에 속절없이 빠지게 된 시초이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영화의 기억이 여간 강렬한 게 아니었다. 영화를 보러 가던 길, 표를 발권하고 영화를 기다리던 공간, 영화를 다 보고 나누던 이야기가 모두 기억난다. 내게 영향을 준 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지만 이 영화는 언제까지고 내 삶에 여러모로 크고 작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릴 때부터 주말이면 아빠와 함께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게 일상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시험기간 직전에 같이 영화를 보러 가서 '리프레쉬(그런 걸 칭하는 아빠와 나의 표현이었다)'를 하고는 했다. 그때는 아빠와 놀러 가는 것도, 시험기간 전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두 흔한 일인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후로는 아빠와 함께 보내는 그 시간들이 내 뇌리에 더 깊이 박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빳빳한 종이였던 영화 티켓이 영수증 종이로 바뀌고, 직원이 창구에서 직접 건네주던 발권소도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아빠와 영화를 보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여유롭게 영화를 보러 갈 수 없었고, 아빠는 영화관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졌다. 그래서일까. 한창 아빠와 함께 극장을 다니던 시기에 가장 인상깊게 본 이 영화가 내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아무튼, 그 영화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이다.


앤드류 가필드 주연으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이 처음 나왔을 때는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헷갈려서 혼돈이 왔었다. 같은 캐릭터로 다른 영화를 만드니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이미 있는데, 왜 다른 배우로 새 영화를 찍은 거지? 그 영화의 예고편이 한창이던 어느 날 아빠와 백화점 지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그래도 돼?'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몰라.'라고 대답했던 것 같지만, 정확하진 않다. 아마도 그 앞에 이미 많은 질문을 해서 아빠가 귀찮아하셨던 것 같기도.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가 개봉했을 때는 더 어린 나이이기도 했고, 그걸 보고 그 나이에 무언가를 느끼기엔 어려운 영화였다. 하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이 개봉했을 때는 중학생이었고, 그래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상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또한 그랬다.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고통이 나에게도 너무 아팠다. 주인공이 잃어야만 하는 게 너무 많다고 느꼈다. 단 두 편이었지만, 피터 파커가 잃어 버린 존재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 고통이 무척이나 무거워서 내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적어도 4개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아래부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에게는 숙명이 있다. 삼촌을 잃어야만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참으로 잔인하고 아픈 숙명이다. 본인의 잘못으로 삼촌을 죽음으로 내몰고, 숙모를 보며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피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가 시민들을 지켜야만 하는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다. 가면 안에는 어리고 연약한 고등학생이 있는데, 시민들에게 그는 그저 영웅으로만 비칠 뿐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삼촌의 대사이고, 피터가 평생을 새기고 살아가는 말이다. 하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의 피터 파커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책임이 따랐다. 어릴 적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을 잃었고, 삼촌에 이어 아버지의 친구 코너스 박사, 여자친구 그웬의 아버지, 어릴 적 친구 해리,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그웬까지 잃고 만다. 그의 곁에는 메이 숙모밖에 남지 않았고, 모든 걸 잃어 버린 채로 시리즈는 끝이 났다. 다시금 뉴욕시를 지키는 스파이더맨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보여 줬지만 그의 마음은 폐허가 됐을 터였다. 아들과 다름없는 조카를 옆에서 늘 지켜 봐온 메이 숙모 또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너무나 많은 걸 잃고 주저앉은 모습을 보면 당신은 더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메이 숙모가 없었다면 피터가 다시 스파이더맨으로 돌아가지 못했겠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OCN에서 굉장히 자주 방영했기 때문에 매년 한 번씩은 꼭 다시 봤던 걸로 기억한다. 스스로 DVD를 대여해 시청하기에는 많은 다짐이 필요한 영화여서,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나오면 멈춰 보곤 했었다. 『어린 왕자』는 읽는 나이에 따라 유독 감상이 많이 달라지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내게는 그런 작품이 <라라랜드> 인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또한 꽤 많은 변화를 거쳐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린 결말이 아니기에 감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자주 바뀌었다. 어렸을 적 아빠와 함께 극장에서 봤을 때는 그저 스파이더맨의 현란한 웹슈팅 엔딩에 감탄했었고, OCN에서 봤을 때는 피터가 메이 숙모에게 하는 행동들을 보며 가슴 졸여했다. 그런데 20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는 피터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되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유가 모두 나 때문이라니.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과 후회, 몇천 번이고 돌아가고 싶었을 과거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텐데. 다시 스파이더맨으로 돌아가는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다시금 코가 시큰해졌다. 


그래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의 피터 파커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나는 늘 궁금했다. 잘 살아가고 있을까. 더 이상 자책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을까. 영웅 같은 거 그만둬도 도시는 괜찮을 텐데,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있길 바랐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닿지 않는 안부를 물으며 10년쯤 흘렀을까, 그렇게 궁금해하던 피터 파커의 현재를 볼 수 있었다. 톰 홀랜드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에서 말이다. 아마 과거의 나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차기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역대 스파이더맨들이 출연한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극장에 앉아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도 믿지 않았다. 당시 루머라는 말이 많았고 유출된 장면도 합성이라는 의견이 다수였기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스크린에 그가 나오는 순간, 가장 처음으로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여전히 그 슈트를 입은 채로 다른 세계로 걸어나오는 그를 보며 아직까지 그 세계의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했다. 잘 버텼고, 잘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로 인해 나의 어린 시절 기억도 지켜지는 기분이었다. 왜 3편은 안 나오는 건지, 아빠도 3편 보고 싶지 않냐며 매년 칭얼댔는데. 다음 스파이더맨 시리즈 제작 소식이 들려오면서 3편이 나올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사라지고 피터 파커의 나이를 내가 훌쩍 넘어 버리고서야 다시 만난 내 영웅은 나의 기다림에 보답하듯 더 성숙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시절을 책임진 영화, 그런 게 있다. <탑건> 이 30년 만에 속편을 만들어내면서 아빠 연령대의 어른들이 환호하고 추억에 젖어 감동했던 것처럼 나에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이 그랬다. 너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 같아. 이렇게까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속으로만 건네던 말들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 개봉하고 난 후에 피터 파커에게 전달된 것만 같았다. 영화라는 게 참 신기하다. 가상의 인물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을 수 있다니. 그 인물이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도 잘 살아가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다니. 나는 아직까지도 영화 속 인물이 그 자체로 살아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깨지지 않는 한 나는 아무래도 영화라는 예술을 끝까지 사랑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