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
이전 8회 연재에서 <프리 가이> 의 특징과 함께 상업영화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다. 너무도 거창하게 들리지만, 다들 한 번씩은 '상업영화라면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는가' 에 대한 생각을 해 봤을 테니 그 정도의 무게로만 읽어 주길 바란다. 이번에는 최근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 을 가지고 그 이유에 대해 한층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숀 레비 감독의 영화다. 이 정도면 숀 레비 감독이 빚어내는 영화에 흠뻑 빠져 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가 계속해서 끝내주는 상업영화를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써내려가 보겠다.
먼저, <데드풀과 울버린> 에게 올해의 타이틀 시퀀스 대상을 안겨 주고 싶다. 유혈이 낭자한 액션 신 아래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뼈와 무기에 새겨져 나오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이름이라니. 영화가 시작할 때면 늘 스크린 하단에 뜨는 배우와 주요 제작진의 이름을 유심히 들여다 보던 나였기에 이런 방식의 그래픽 연출에 쾌감이 일었다. 제작자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관객에게 각인시키기에 좋은 방법이었고, 그 이름들이 이 영화의 자부심으로 느껴졌다. "자, 이제 이렇고 이런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너네가 보게 될 거고, 지금 이 장면처럼 온통 대단한 걸로 가득 찬 영화니까 기대해도 좋아." 꼭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랄까. 앞으로 진행될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돋보였다.
데드풀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제4의 벽, 허를 찌르는 블랙 코미디, 잔인하지만 웃긴 이상한 장면들. 아마 데드풀 시리즈를 하나라도 본 사람들은 쉽게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마블에 소속된 만큼 영화에서 어떤 대사를 선보일지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역시 데드풀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20세기 폭스와 마블, 스탠 리까지 신랄한 말들로 가지고 노는 걸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영화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데드풀 시리즈는 몰입의 끈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데드풀 외 다른 캐릭터가 제4의 벽을 깨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하기도 하고, 스토리의 목적성이 늘 뚜렷하기 때문이다.
*아래 글에는 <데드풀과 울버린>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칭은 웨이드 대신 데드풀, 로건 대신 울버린으로 통일합니다.)
<데드풀과 울버린> 또한 데드풀이 자신의 우주가 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세계의 울버린을 데려온다는 선명한 목적성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때 관객들의 궁금증은 '우주의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로 집중되고 그 사이에 진행되는 데드풀과 울버린의 지독한 액션 신과 엑스맨의 등장이 영화의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흥미롭게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에서도 봤지만 아무리 히어로라고 해도 모든 우주에서 그 인물이 추앙받는 것은 아니다. 울버린도 마찬가지다. 데드풀의 우주에서는 울버린이 모두의 영웅이었고 우주가 소멸되는 이유가 곧 주인공인 울버린의 죽음이었지만, 다른 우주에서 만나는 울버린 중 그런 인물은 없었다. 심지어 겨우 데려온 울버린이 '워스트 울버린'이라니. 그는 동료들을 죽음에 빠뜨리고 그의 우주를 실망시킨, 이제 삶에 술밖에 남지 않은 울버린이었다.
그렇게 데드풀과 울버린은 TVA에서 본인들의 우주로부터 쫓겨난 뒤 보이드라는 일명 쓰레기 우주로 보내진다. 그곳에는 자신의 우주에서 쫓겨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카산드라라는, 찰스 자비에의 쌍둥이 남매가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카산드라의 부하로 존재하거나 그에 맞서 싸우다 죽거나 둘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엉망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쓰레기 우주라는 별칭처럼 마치 쓰레기 소각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세계였다. 찰스 자비에의 쌍둥이 남매라니. 엑스맨 시리즈에 열광하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눈이 반짝이고 엉덩이를 들썩거릴 만한 부분이다. 심지어 태어나자마자 보이드로 보내졌으니 찰스는 그 존재를 모를 것이고,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나저나 그 무시무시한 존재 앞에서도 블랙 코미디를 포기할 수 없는 데드풀에 조마조마했던 건 나뿐이었을까?
중반부에 이르러 데드풀과 울버린은 정이라도 쌓인 건지 서로를 꽤 살살 다뤄가며 보이드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함께한다. 이 시점에서 로라의 등장은 또 다시 관객의 느슨해진 이목을 집중시킨다. 엑스맨 시리즈를 깊게는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입을 다물 수 없었던 로라의 모습에 이 영화가 얼마나 관객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싶어하는지를 알게 했다. 이 영화의 제작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많은 팬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울버린이 환생한다면 로라도 나와야만 한다고. 다프네 킨 배우가 그대로 로라 배역에 참여해 팬들의 바람을 이룬 것은 그야말로 이 영화가 준비한 최고의 필살기였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래서, 상업영화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이렇게 질문해 보자. 상업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관객이 원하는 걸 보여 줘야 한다. 돈 많은 사람들이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상업영화도 다 투자 받아서 만드는 건데 어떻게 그런 걸 다 넣냐, 고 묻는다면 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되,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되, 이 영화를 기다렸을 관객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는 순간 이 영화는 팔리기 시작한다. 관객의 입소문으로, 팬들의 대가 없는 홍보로 말이다. 당연하게도 기본적인 퀄리티가 받쳐 줘야 성립될 수 있는 전제이다. 숀 레비와 라이언 레이놀즈의 합작은 영화적으로도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마블 최초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 개봉하면서도 결말은 그 어떤 영화보다 해피 엔딩이었다. 사실 마블의 요즘 분위기를 염두해 해피 엔딩을 기대하진 않았는데, 끝까지 데드풀 시리즈답게 유머러스한 완벽 해피 엔딩을 선사하다니. 이 또한 좋은 선택이었다.
너무 칭찬만 했나 싶지만 에세이인 만큼 사심을 담아 보았다. 물론 모든 지점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아쉬운 부분도 존재했으며 데드풀 시리즈로서의 지겨운 요소도 있었다. 그래도. 늘 나를 실망시키던 상업영화들과 마주하다가 이렇게 그저 웃기만 하다 끝나는 작품은 오랜만이어서 신이 났다고 치자. 숀 레비표 데드풀은 내게 관객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시에 재생되는 과거 엑스맨 영화 제작 당시 비하인드 영상까지 완벽하게 팬을 위한 마무리였으니 말이다.
상업영화의 흥행은 영화 시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흥행을 위해서 상업영화의 목적에 대해 늘 생각하길, 존재 이유에 대해 늘 복기하길 바란다. 맹목적으로 흥행만 바라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영화를 관람하러 극장에 올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지, 어떤 요소가 그들의 시간적 비용과 물질적 비용을 아깝지 않게 만들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가다 보면 더 이상 진부한 스토리가 아닌, 뻔한 전개가 아닌 새로운 소재와 신선한 이야기로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를 관객들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