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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현 Jun 23. 2021

#3 : 수채화

48살 아빠와 7살 딸, 캠핑으로 나누는 다른 듯 같은 꿈 이야기 3

[#3 : 수채화]


  '추억'.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을 일컫는 명사. 그렇다면 '기억'과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추억'이 주는 느낌은 '기억'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사전적 의미는 별반 차이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추억과 기억의 차이는 이렇다. 두서없이 외부 요인에 의해 나에게 수동적으로 켜켜이 덧칠되는 무엇이 '기억'이라면 '추억'은 내가 자의적으로 고르고 구분해 카테고리별로 분류해 둔 무엇. 


  우리가 미래를 보고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브레이크가 있기에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주는 긍정의 힘은 인간 본연의 선함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 가는 캠핑이야 말로 내 기준에서 '추억 만들기'의 결정판이다. 바꾸어 말하면 캠핑 자체가 주는 '추억'보다는 무엇을 하든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 후 캠핑에 다소 자신감이 붙었다. 


  캠핑장에서는 다른 캠퍼들의 장비와 우리 장비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장이 펼쳐진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고가의 장비 하나 없이 대여 장비로 시작한 나로서는 특정 브랜드로 풀 장착한 캠퍼들에게 주눅 들기 일쑤다. 하지만 '추억 만들기'를 위한 여러 아이디어만큼은 여느 캠퍼들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이유 없는 자신감은 이런저런 소소한 시도로 이어졌다. 그 첫 시도가 '이젤'이다. 

  지난해(2020년) 가을 캠핑부터 나는 '이젤' 하나를 챙겨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만의 무엇, 소위 '갬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 가족만의 갬성은 앞으로 계속 쌓여갈 추억들의 길을 찾는 책갈피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캠핑장을 가득 메운 각양각색의 텐트와 그늘막들은 각자의 개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캠핑 브랜드마다 갖은 독특한 이미지와 색채는 그대로 또 통일성을 부여한다. 결국 캠핑장에서 움막을 짓지 않는 한 완벽한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가 생각한 캠핑 장비로서의 이젤은 '써니 하우스', '별이 빛나는 밤에' 등등 우리만의 간판을 세워 우리의 캠핑 사이트를 개성 있게 과시할 수 있는 에지 있는 장비였다. 스케치북도 챙겼고 수채화 도구도 트렁크 한 켠을 차지했다. 크레파스와 색연필은 당연히 따라붙었다. 

써니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몇 명의 여자 사람을 그렸다.

  무엇을 그릴지 정하지 않았다. 하얀 스케치북을 대자연의 BGM(배경음악) 속에서 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써니도 마찬가지였는지, 서둘러 그림을 그리자고 보챈다. 

  "아빠! 어~~ 나 먼저 그릴께."

  "한 번씩 그리기다. 펜 떨어지면 한 번의 기회는 끝이야." 

  그림 그리기는 의도치 않게 게임이 됐고, 룰도 만들어졌다. 써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여자 사람을 그리는 써니는 역시 여자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얼굴과 긴 머리. 한 동안 팔 없는 여자 사람을 그리던 써니였지만 오늘은 팔도 그려 넣는다. 

  색칠은 수채화 물감을 사용했다. 집에서는 옷에 튈까 봐, 마루가 엉망 될까 봐, 정리하기 귀찮아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캠핑장에서 만큼은 자신만의 아뜰리에를 가진 화가 인양 물감을 가득 머금은 붓을 바닥에 탁탁 털어가며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가을날 따뜻한 햇살 아래서 써니와 나는 얼굴을 맞대고 여자 사람 몇 명과 은행남, 밤나무, 소나무를 그렸다. 


  우리의 캠핑은 작은 자동차(승용차)에 캠핑장비를 모두 싣고 4명이 함께 이동해야 했다. 캠핑 중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장비다. 추위도, 더위도, 해충도, 습기가 올라오는 딱딱한 바닥도 모두 캠핑의 위협 요인이다. 필수 장비만으로도 우리 차는 가득찼다. 최근엔 각종 아이디어로 무장한 장비들이 시중에 많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하게 가성비를 따져본다 해도 뻔한 월급에 장비를 새로 장착하는 것은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여유와 힐링, 놀이까지 챙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추억 만들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가벼운 무게와 운전석 옆에 끼워서도 가져갈 수 있는 접이식 이젤은 써니와 나에게 '그림 같은 그림'을 추억하게 해 주었다. 한 획씩 번갈아 그리고 왼손은 써니가 오른손은 내가 색칠했다. 하얀 스케치북은 알록달록 색이 입혀졌다. 그저 그런 우리의 캠핑 장비는 수채화와 함께 추억의 색동옷을 입었고 세계 최고가의 어떤 장비도 부럽지 않은 우리만의 갤러리가 됐다. 


  돌아오는 길 운전석에 앉아 써니에게 물었다. 

  "써니, 이번 캠핑에서 어떤 게 가장 좋았어? 1번 떡볶이 만들기, 2번 보물찾기, 3번 수채화 그리기"

  "아이쿠~ 당연히 수채화 그리 기지~~"  


  써니는 즉답했고, 내 눈시울은 나도 모르게 뜨거워졌다. 뒤에서 내 등을 바라보는 아내와 써니는 눈치채지 못한 채 한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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