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살 아빠와 7살 딸, 캠핑으로 나누는 다른 듯 같은 꿈 이야기 4
[#4 : 중고 텐트, 집이 되다]
아차! 당장 내일모레 떠나야 하는데 장비 대여를 잊었다. '4인 패키지' 대여 장비를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 결제를 하지 않았다. 텐트며 의자, 테이블 등 대여 상품은 여러 개의 대형 박스에 담겨 배송되는데, 통상 2~3일이 소요된다. 지금 당장 결제해도 출발 당일 아침까지 맞추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이번 캠핑은 지인 가족과 함께 하기로 약속한 터라 연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 두 가족 조인트 캠핑은 처음이라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이벤트 생각에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장비 대여를 잊은 것이다. 내 스스로를 자책해 보지만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장비 대여 업체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사정해 보았지만 하루 만에 4인 캠핑 장비 전부를 보내줄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다.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장바구니에 담겨 놓은 대여 장비를 직접 받아오기로 마음을 먹고 장비 대여 업체에 전화를 걸어 배송비를 환불받았다. 목요일 오후 연가를 내고 써니와 나는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장비 대여 업체를 향해 출발했다.
"아빠~ 어디 가는 거야?"
"어~ 우리 텐트 빌리러. 아빠가 배송받는 것을 잊었지 모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갔지만 써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빠~ 우리 텐트 없어? 우리 캠핑 지난번에도 갔었잖아. 텐트 가지고"
순간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대여 장비는 아파트 현관 앞에 배송되고 난 그것을 받으면 우리 차에 싣기 때문에 대여 과정을 써니가 알리 없었다.
어차피 4시간 연가 내놓은 거 엄마 없이 써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겠다는 요량으로 써니가 좋아하는 시크릿쥬쥬 음악까지 틀고 한껏 아빠의 멋스러움을 뽐내고 있던 차였다. 빌려서 다녔다는 말을 하기에는 아빠의 체면이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 우리 캠핑 갈 때 가져가는 텐트는 빌려서 쓰는 거야"
"왜??"
"아직 써니가 어려서 겨울에는 못 가고 여름에만 가야 해서 자주 쓰지 않지. 그리고 텐트 엄청 비싸~"
나는 한 동안 대화를 이끌어 가지 못했다. 써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듣는지 말없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장비 대여는 직접 수령과 반납으로 잘 해결됐고, 또래들과 함께 어울린 첫 캠핑에서 써니는 여러 장면의 추억을 추가했으리라.
이후 난 한 동안 고민에 빠졌다. 내 장비를 갖고 싶다는 욕구와 지름신은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장비 하나 없이 빌려서 캠핑을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써니가 친구들에게 뭐라 이야기를 할지, 캠핑을 다니는 친구들은 또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혹여 써니가 우리도 멋진 텐트가 있다고 거짓 자랑을 하지는 않을지....
나는 텐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텐트를 대여해서 사용할 때도 구매하는 것과 고민의 기준은 별반 차이가 없기에 그간 대여했던 텐트와 비슷한 크기 모양을 중심으로 모델을 좁혀갔다. 하지만 역시 가격이 문제다. 너무 합리적인 가격에 놀라 반가운 마음에 결제하려는 찰나 자세히 보니 뒤에 '0'이 하나 더 붙은 경우가 비일비재. 자연스럽게 나는 '중고나라'로 향했다. 그 곳을 하염없이 헤매고 다녔다.
"여보, 오늘 퇴근하고 밤에 나랑 화성에 가야 해"
"또 왜?"
"텐트가 드디어 나타났어. 사용감 있지만 깨끗하데. 쿨 거래하면 2만 원 깎아준데"
"꼭 사야겠어? 얼마래?"
"36만 원"
거의 석 달 가까이 나의 중고나라 여행은 이어졌고, 결국 지금 사용하는 텐트를 만나게 됐다. 할부 구매를 할 수 없는 중고 거래 특성상 현금이 필요했다. 텐트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매월 10만 원씩 비자금을 모아 30여만 원의 현금이 준비된 상태였다. 밤 10시경 화성시 어딘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내 배드민턴장에서 나는 쿨 거래를 했고 2만 원 깎아준 판매자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뿌듯한 마음으로 텐트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우리 가족은 우리의 텐트로 캠핑을 갔고 장모님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자~ 이제 텐트 걷자"
"으앙~~~ 아빠 우리 집 왜 부숴? 부수지 마~~ 으앙~~"
"써니, 이번 캠핑은 이제 끝났어. 이제 정리하고 집에 가야지"
"싫어, 우리 집 부수지 마~~ 나 안 갈래~~"
"우리 다음 달에 또 올 거니까 오늘은 정리하자. 다음 우리 집 지을 때는 더 예쁘게 장식하자~ "
캠핑장에 펼쳐진 우리 텐트를 써니는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반짝이는 전구도 달았다. 써니도 우리 텐트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중고 텐트는 이렇게 우리 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