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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현 Jun 30. 2021

#5 : 아빠는 부재중, 엄마는 슈퍼맨

48살 아빠와 7살 딸,  캠핑으로 나누는 다른 듯 같은 꿈 이야기 5

[#5 : 아빠는 부재중, 엄마는 슈퍼맨]


  "네! 네! 이미 조치해 뒀는데요~~ 아~ 네! 네!"

  "네! 네! 사실은 제가 오늘 일정이~~"

  "넵! 잠시 후 뵙겠습니다."


  나무와 텐트 사이에 걸어둔 빨랫줄이 반짝거린다. 햇살이 눈부신 여름날 일요일 아침이다.


  캠핑장에는 어제 도착했다. 몇 달 전부터 오늘을 별렀다. 하지만 난 휴대전화를 들고 20여 분간 전전긍긍했다.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도 그랬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장모님, 아내, 써니를 남겨두고 나는 오후 회의 참석차 홀로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이번 캠핑은 장소 선택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그동안 가족 간 오붓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선호했었다. 이번에는 각종 놀이시설을 갖춘 유원지형 캠핑장을 택했다. 어른들의 힐링보다는 써니와의 놀이에 방점을 찍었다. 큰 계곡과 야외수영장, 트램펄린, 아이들 영화관, 모래 놀이터, 사계절 썰매 등을 갖췄다. 거리도 기존 가던 곳(가평군 설악면) 보다 먼 가평군 북면(강원도 철원 인접지)이다.


  준비하면서 아내에게 큰 소리도 쳤다.

  "이번 캠핑은 정말 써니와 신~ 나게 놀 거야."

  "어디 잘해봐~ 응원할게. 당신 덕에 좀 쉬자."

  "당연하지! 이번 캠핑장은 특별해. 당신은 할 일이 없을걸. 음~ 하하하."


  써니에게도 일찌감치 자랑을 늘어놓았다.

  "써니! 이번 캠핑은 아빠랑 신나게 놀자"

  "좋아~ 근데 아빠, 몇 밤만 자면 캠핑가?"

  "30 밤 만 자면 우리 출발이야"

  "30 밤은 금방 가?"

  "그러엄~ 아주 금방 가지"

  "알았어. 달력에 동그라미 쳐놔"


  그간 달력의 동그라미는 생일을 의미했었다. 그만큼 써니에게도 나의 으름장은 남달랐던 것. 나도 한 달 후 일정이지만 한껏 부풀었다. 캠핑 자체에 대한 설렘도 컸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이번 계획을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에게 펼쳐주고 싶었다.   


  일정에도 변화를 주었다. '금토일'이 아닌 '토일월'로.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다. 통상 금요일 오후 반일 연가를 내고 14시 출발한다. 짐을 한 가득 싣고 주말 여행객들 사이에서 막히는 길을 뚫고 이동하다 보면 어느덧 늦은 오후다. 마음은 급하다. 해가 지기 전 장비를 펼쳐야 하기에 도착하자마자 초집중 모드로 전환하고 혼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지루한 차 안에서 탈출한 써니는 곧장 아빠에게 장난을 걸어오지만 받아줄 여유가 없다. '캠핑 첫날'의 설렘은 '땀 흘리는 아빠'로 치환되기 일쑤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준비한 캠핑이 바로 오늘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 서울로 향해야 했다.


................



  운전을 하면서도, 회의 중 발언을 하면서도 마음은 캠핑장 소나무 아래 있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회의는 5시경 끝났고 나는 황급하게 다시 가족들이 있는 가평군 북면을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저녁 7시 반 경 나는 캠핑장 부근에 도착했다. 사방은 이미 어두웠다. 일요일 오후라 주변 거의 모든 캠퍼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저쪽 한 구석에 우리 텐트만 흔들리는 노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모든 캠퍼들이 일시에 모이고 빠지는 '금토일' 캠핑은 적어도 외롭진 않다. 하지만 일요일 정오를 기준으로 모두 가버리고 홀로 산속을 지켜야 하는 '토일월' 캠핑은 쓸쓸하고 무섭기까지 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판단 미스로 인한 자책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주변 캠퍼들이 모두 떠난 어두운 캠핑장 한 곳에 우리 텐트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불안감에 심장은 쿵쾅거렸다. 목소리는 일부러 톤을 높였다.    

  "써니~ 아빠야~"

  "응~ 아빠~ 와서 밥 먹으래."

  "아빠 왔는데 아빠한테 안 올 거야?"

  "응~ 나~ 엄마랑 이 아이들 보살펴줘야 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써니의 밝은 목소리에 안도감을 갖고 대화를 이어갔다. 써니는 내게 뜻밖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빠, 이거 모~게~"

  "잉? 물고기네?"

  "응응 엄마가 잡아줬어."

  "진짜? 엄마가?"

  "응응~ 엄마 물고기 엄청 잘 잡아."  


  장모님은 김치찌개를 한 대접 퍼 주셨고, 아내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뭐? 오늘 신~나게 놀아준다고? 나보고 좀 쉬라고? 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물고기까지 잡아야 해?"

  "미안~~~ "

  "됐고, 빨리 밥이나 먹어. 엄마도 엄청 기다렸어."

  "김서방~ 수고 많았네. 너는 일하고 온 사람한테 그게 뭐냐~"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 배고프다. 김치찌개네요~ 제가 복숭아 사 왔어요 어머니~"


  준비와 기다림의 행복은 결국 최악의 캠핑으로 기록됐다. 나는 가족을 산속 개울가 어딘가 천막에 남겨두고 서울로 가버린 비정한 아빠가 됐다. 아빠의 부재 속에 '엄마는 슈퍼맨'이 돼 계곡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고기를 잡았다.


  나의 일상은 일에 집중돼 있었다. 40대 월급쟁이 삶이란 게 대다수가 그럴 것이라고 자위하며 우리 가족 모두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었다.

  일 중심의 일상은 몇십 년이라는 기간을 이어가는 무시무시한 관성을 가졌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평생을 그 관성의 힘에 지배받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 관성은 가족의 삶에 프레임을 만들고 그 틀 안에 가둬버리기 십상이다. 아빠의 빈자리가 당연시되는 관성들.


  캠핑은 이런 '아빠는 부재중' 관성을 용납치 않는다. 바람만 불어도 일어나 로프를 당긴다. 딸깍딸깍 버너 점화 소리가 서너 번 넘게 이어지면 아빠는 일어나 휴대용 가스버너를 점검한다. 힘쓰고 위험한 일들은 아빠를 호출하고 또 아빠의 촉각은 위험 상황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다.


  캠핑은 일을 위해서라면 가족에게 양보를 권해도 된다는 나의 명분론에 균열을 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캠핑은 아찔하다. 당시의 미안함은 고스란히 가슴에 각인돼 있다.


  '아빠는 부재중, 엄마는 슈퍼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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