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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현 Jul 24. 2021

#8 : 해먹 그리고 대화

48살 아빠와 7살 딸, 캠핑으로 나누는 다른 듯 같은 꿈 이야기 8

[#8 : 해먹 그리고 대화]


  대화의 시작은 이랬다.

  "아빠, 루카는 나무가 됐을까?"

  "아마도 나무가 됐을 거 같은데."

  "근데 죽으면 나무가 되는 거야?"

  "우리가 루카 죽고 나서 주차장 화단 나무 아래 묻어줬잖아~ 그럼 땅 속 벌레들이 루카를 조금씩 조금씩 떼어먹고 똥을 누면 루카는 흙이 되는 거거든."

  "그럼 흙이 나무가 되는 거야?"

  "음~~ 음~~ 흙 속에 영양분을 나무가 먹고 자라는 거지."

  "아~~"


  저녁 식사 후 써니와 나는 한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이날의 대화는 이상하리 만큼 길었고 오래 남는다.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 긴 대화.

마치 비닐봉투에 물을 담아 들어 올린 듯 써니와 나는 해먹 가운데로 몰렸다. 양 옆을 압박하는 해먹은 어릴적 좁은 다락방의 아늑함 이상이다.

  약 3미터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두 나무. 그 사이에 걸린 해먹에 써니와 나는 나란히 누웠다. 마치 비닐봉투에 물을 담아 들어 올린 듯 써니와 나는 가운데로 몰렸다. 해먹이 양 옆을 압박해 왔다. 어찌 보면 나무 아래 노지에서 풍찬노숙을 하는 격. 하지만 해먹의 압박은 어릴 적 좁디좁은 다락방에서 느꼈던 아늑함 그 이상이다.

 

  해먹에 누워 바라본 하늘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회색으로 바뀐 무성한 나뭇가지와 잎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묘하게 중첩됐다.


  루카는 몇 달 전부터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던 수컷 수풍뎅이다. 함께 입양한 암컷의 이름은 루시. 이름은 써니가 지어주었다. 세 식구가 몸 부대끼며 생활하기 빠듯한 좁은 아파트에 새로 들인 투명 사육통은 가슴속에나마 자연의 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는 큰 창과 같았다.


  두발을 위로 치켜들고 머리와 가슴을 일으킨 루카의 모습에선 나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엄지손톱만 한 젤리통에 머리를 쳐박고 열심히도 먹는 루시의 모습은 시커멓고 번들거리는 등짝을 지닌 곤충이라고 하기엔 무척 귀여웠다. 그렇게 점점 루카와 루시는 우리 집 제3의 구성원이 됐다.

  써니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베란다로 달려갔다. 스스로 먹이를 챙기는 보람도 느끼는 것 같았다. 루카와 루시는 써니와 아내의 보살핌 속에 알도 낳았다.


  하지만 자연이 아닌 아파트 베란다에서 사육되는 작은 생명체들이 그렇듯 시간이 갈수록 장수풍뎅이 부부는 점점 활력을 잃어갔다. 결국 루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번 캠핑을 오기 며칠 전. 여섯 개의 다리를 모두 하늘로 향한 채 더 이상 바로 서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써니는 이른 아침 루카와 루시를 살폈다. 하지만 이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늘을 향한 배를 힘차게 버둥거리며 뒤집고 바로 서서 두발을 치켜든 카리스마 넘치는 루카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선...


..............................................................    


  써니와 나란히 누운 해먹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흔들린다. 흔들리는 해먹이 자신의 몸을 떠받친 나무도 함께 흔든다. 마침 바람도 불어와 힘을 보탠다. 솨아~솨아~ 소리는 대화와 섞이고 죽음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는 짙어가는 밤하늘처럼 깊어만 갔다.  

  "아빠는 몇 살이야?"

  "아빠?"

  "응."

  "음~~ 아빠는~~ "

  "응, 아빠 몇 살이야?"

  "아빠는 여덟 살이지."

  "에이~ 무슨 아빠가 초등학생이냐?"

  "아빠는 여덟 살 맞어. 너 태어났을 때 아빠 있었어 없었어?"

  "있었어."

  "너 태어나자마자 몇 살이야?"

  "한 살. 어~ 나 그거도 알아~ 미국 사람들은~ 어~ 태어나면 영 살부터야."

  "그래~ 그니까 너 태어날 때 아빠 있었잖아. 그니까 아빠는 그때 두 살이고, 넌 태어날 때 한 살이니까 지금 아빠는 여덟 살, 넌 일곱 살이지."

  "그래? 어~ 그럼~ 어~ 아빠는 내가 어른돼도 할아버지 안 돼?

  "그럼~ 너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할아버지 안 되지."

  "그럼 죽지도 않겠네?"

  "참나~~ 당연하지~"

  "아하~~ 그럼 다행이다."

  "아빠~ 근데~ 어~ 공룡들도 전부 나무가 된 거야?"


  써니는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대화는 어느덧 써니가 태어난 2015년을 지나 과거로 과거로 흘러 흘러갔다.


  루카의 죽음으로 함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영원한 부재를 느꼈을 써니. 그 순간 주변에 함께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인지했을 거고 그들과 헤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됐으리라. 아빠와도 그 헤어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내 나이 마흔여덟. 써니와는 마흔한 살 차이. 결국 나와 써니도 인생의 어느 즈음에선 헤어져야 한다. 그 단절의 시점에 나와 써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는 중단되지만 써니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 또한 써니의 써니로 흘러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시간의 축적을 위한 이어짐 속에서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삶과 지속적으로 중첩되기만 한다면. 나와 써니가 중첩된 지금의 시간이 훗날 써니와 써니의 써니가 겹쳐지는. 그렇다면 나의 일방적 중단과 헤어짐이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

 

  내가 무엇인가를 경험했다면 그 경험 어딘가에 나와 함께 경험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써니와 삶이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지금 나는 여덟 살이 됐듯 써니 역시 태어나자마자 나의 경험이 중첩되며 지금 마흔여덟 살의 삶도 공존하게 된다.


  이러한 '중첩된 이어짐'은 내 삶의 평형수가 된다.


............................................................


  어느새 캠핑장에는 어둠이 짙게 내렸다. 밤하늘과 어우러진 나뭇가지와 잎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주변 소음은 잦아들었고 솨아~ 솨아~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써니와 나는 양 옆을 감싸 안은 해먹의 아늑함을 최대한 느끼려 애썼다.


  그렇게 우리는 해먹에 누워 마흔한 살 차이에서 '마흔'을 떼어내고 다른 듯 같은 꿈을 꾸며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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