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다. 다리에 전해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오늘은 유독 더 뻐근하다. 누운 채 무릎을 굽혀본다. '쿵~' 아차. 의자 아래로 뻗은 무릎이 의자를 걷어찼다. 자칫 옆 방 사람이 벽을 두드리는 상황이 온다면 그날은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 자정을 넘겨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미 아침이 밝았을 수도 있다. 창문 없는 방은 칠흑과 같다. 눈을 떠도 감아도 나타나는 흰점과 검은 점이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한다. 고시원의 밤은 이랬다.
1990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고시원(당시 독서실)에 살았다. 아니 친척집에 살았는지 고시원에 살았는지 정확하지 않다. 학교 앞 이모 집과 고시원을 번갈아가며 생활했지만 잠은 고시원에서 잤으니 내 주거지는 고시원이 맞겠지.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어, 영어, 수학 모든 수업시간마다 꺼내 펼쳤던 교실 책상 서랍 속 낡은 노트 한 권과 연필 몇 자루가 전부였던 그 시절.
내재화된 결핍에 노트 한 권만으로도 나는 불편하지 않았고 창피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 학기만을 마친 채 군에 입대했다. 재수 삼수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번 전 재산과 친척들이 십시일반 보태준 돈으로 입학금은 그럭저럭 해결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95년 7월 대구의 한 군 부대로 입대한 첫날 나는 홀가분했다. 2년 2개월 긴 세월을 정착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삼시 세끼와 옷, 모두 처지가 같아 보이는 까까머리 동급생들, 여기에 나에게 안정감을 준 결정적 요소는 바로 '관물대'다.
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관물대에 나의 물건을 수납했다. 교관과 조교들은 나의 관물대를 보며 감탄했다. 칼 같이 정리된 나의 관물대는 6주 신병교육기간 중 4주 차 때 전체 신병 중 단 2명에게 주어지는 1박 2일 외출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공간에 대한 나의 애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세 식구는 지금 서울 목동 20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35년 된 좁고 낡은 전셋집. 냉장고 옆에 가로 60센티미터 높이 150센티미터의 5칸짜리 선반 하나를 놓았다. 나의 공간이다. 차곡차곡 나의 물건을 수납했다. 좋아하는 수백 곡의 음악이 있고 수십 권의 책도 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CD와 전자책이면 가능하다. 하루 종일 나와 함께했던 노트북도 충전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상시화된 결핍에 작은 선반 하나면 나는 부족함이 없다.
나야 그렇다 치고, 아내와 써니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휴일 아침 먼저 일어나 소파에 앉은 부스스한 아빠에게 달려오는 써니, 그만 식탁 모서리에 어깨를 세게 부딪히고 울음을 터트릴 때가 종종 있다. 주렁주렁 가방을 들고 기분 좋게 서둘러 가족 외출을 나서던 아내, 그만 의자 다리에 새끼 발가락을 걷어 차이고 급 밀려오는 고통에 숨을 멈추고 고개를 떨구기 일쑤다.
"아빠, 우리집은 왜 작아?"
"아~ 우리 할머니 집에서 살 때는 식구가 4명이니까 넓은 집에 살았지만 여기는 우리 세 식구만 사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
"주말에는 항상 할머니 집에 가잖아. 근데 써니, 유치원 재미있어?"
"응, 어~ 친구들하고 노는 거 재미있어."
"그치, 거봐. 여기 우리 집은 좁지만 써니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이 동네에 많이 살지, 그리고 또 유치원도 있으니 좋은 거지."
"응. 근데 아빠, 우리 저날~ 어~ 동그라미 그려놓은 저날~ 앨리네랑 같이 갈 거지?"
"응, 이번에는 캠핑장에 두 곳 예약해 두었지."
"신난다. 가서 신나게 놀아야지."
"그래~ 아빠가 집 예쁘게 꾸며줄게. 우리 집은 좁으니까 캠핑장에서 막 뛰고 모래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자. 보물 찾기도 하고."
7살이 되고 써니의 교유관계는 눈에 띄게 넓어졌다.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자기 주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친구를 초대하고 서로 물건을 주고받는다. 환영의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그려 벽에 붙이기도.
좁은 집에 와 준 써니의 친구들이 나는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좁은 집은 분명 핸디캡이다. 퇴근길 아이들이 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빨리 가서 보고 싶다가도 나 한 사람 차지하는 공간을 무시할 수 없기에 발길을 늦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 버린 후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주는 평온함을 당연시 여기던 나. 그 나만의 평온함이 써니와 아내를 좁은 집에 가두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까지 든다.
해질 무렵 시골 마을 초입에서 맡아지는 달큼한 나무 장작 타는 냄새가 캠핑장 우리 집에서도 피어난다. 그 냄새로 사람이 있음을 느끼고 또 다른 세계가 구성된다.
아직은 모든 생활 반경을 좁은 집 중심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써니와 아내를 위해 나는 오늘도 너른 마당을 꾸민다. 팽팽하게 잘 펼쳐진 텐트는 우리 집이 된다. 해질 무렵 시골 마을 초입에서 맡아지는 달큼한 나무 장작 타는 냄새가 캠핑장 우리 집에서도 피어난다. 그 냄새로 사람이 있음을 느끼고 모닥불의 온기와 사람의 체온이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한다.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세계는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모두의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자연이라는 선물.
좁은 집을 당장 넓힐 수 없다면 자연을 품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누구도 대 자연을 집안에 두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써니, 잘 봐~ 달력 한 장 더 넘긴다."
"왜~왜~ 엄마~ 아빠가 달력 넘긴데~"
"써니, 엄마한테 일러도 소용없어. 오늘은 1일이야. 이렇게 넘기면 이제 8월이 되는 거지."
"그래?"
"응, 그리고 여기 숫자 아래 작은 글씨로 뭐라고 써 있어?"
"입주? 입주?"
"다시 읽어봐, '입추'라고 돼 있지? 가을이 시작된다는 뜻이야."
"에이~ 지금이 무슨 가을이냐~ 가을은 9월이지. 내 생일이잖아."
"써니, 우리가 느끼는 가을은 9월이지만 깊은 바다, 숲 속, 강물 속, 구름 위 이런 곳에서는 가을이 피어나기 시작하지. 우리는 그걸 확인해야 해. 이 날짜에 동그라미들이 뭔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