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현 Jul 05. 2021

#7 : 시간을 달려서

48살 아빠와 7살 딸, 캠핑으로 나누는 다른 듯 같은 꿈 이야기 7

[#7 : 시간을 달려서]


  현실을 만질 수만 있다면... 문득 평범한 일상을 느낄 때면 그냥 경험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감각기관을 총동원해 오롯이 내 것으로 수용하고 싶다는 바람.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일상 속 나를 발견할 때면 더욱 그렇다. 남들처럼 그저 그렇게 맞이하는 평범함이 나에겐 드문 일이었고, 특별했다. 경험과도 같은.


  일부러 가야 할 고향은 없었다. 그럼에도 명절 연휴 나와 아내는 차를 몰고 길에 나서곤 했다. 교통방송에 귀도 기울였다. T맵에 표시된 도착 시간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목적지에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수많은 사람들 속 어느 지점 즈음 들어가 인위적으로 일상을 기획했다. 결혼 후 10여 년 간 써니와 함께 하는 가족 구성을 이루기 전까지 그렇게 보내곤 했다.

 

  써니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본다. 나는 현실을 만지지 못했고 경험으로 남겨진 '그날'.

  "아버님~ 아버님! 사진 찍으셔도 되는데요! 사진 찍으셔요."

  "아~ 네~ 그래도 되나요?"

  "아버님~ 아기 안아주셔야죠!"

  "아~ 네~ 어떻게 해야 하죠? 이렇게 하면 되나요?"


  '그날' 더 감격스러워하지 못한 내가 바보 같고 아내를 더 보듬어 주지 못해 후회스럽다. '그날'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현실이 된다. 지금 떠올려보면 이보다 더 드마마틱할 수가 없다. 풋~ 왜 이제야 현실감이 돋는지.

 

  시간은 엑스(x)축 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나의 감정은 역방향이다. 현실을 만지려 발버둥치지만 결국 '그날'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울고 웃는 부조화의 간극. 나는 그 간극을 좁히고 싶었다. 적어도 써니와 함께 할 때 만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쉼 없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움직이고 써니에게 반응하는 것. '찰나'를 만지려 애썼다.


  오늘 캠핑도 바빴다. 고기도 구웠고, 모닥불도 피웠다. 계곡에서 수영도 했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무모한 행동도 했다. 모든 순간순간 그 순간에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빠짐없이 했다. 써니는 즐거웠고 주변 또래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나는 써니와 아이들 사이에 섞여 '숨바꼭질'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애들아, 이리로 와봐~ 우리 숨바꼭질할까?"

  "네에~~~ "

  "술래를 정해야 하니까 가위바위보 하자."

  "안 내면 진다~ 가위 바위 보~"

  "안 내면 진다~ 가위 바위 보~"

써니는 우스꽝스럽게 엉덩이를 쭉 내밀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외쳤다. 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을 달렸다.

  술래는 써니.

  술래가 된 써니로 나는 자연스럽게 심판이 됐다. 아이들은 한껏 웃음을 머금고 각자 숨을 곳을 찾아 소란스럽게 흩어졌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아~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아~니~"

  

  써니는 우스꽝스럽게 엉덩이를 쭉 내밀고 나무에 얼굴을 처박고선 숨바꼭질 구령을 외쳤다. 아이들은 마치 동네에서 함께 자란 오랜 친구처럼 구령까지 맞추며 숨바꼭질 놀이에 몰두했다.


  나는 그 광경 속으로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고 말았다.  


  순간 시간을 달렸다. 1985년 8월 12일 이전으로 내달렸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내 엄마의 상시적 부재가 현실이 되던 '그날' 이전으로.

  아이들의 구령은 아득한 백색소음이 됐고, 까르르 웃음소리들 속에서 내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의도치 않게 저 멀리 밀쳐냈던 유년 시절 '그날' 이전으로 돌아갔다. 써니의 우스꽝스러운 엉덩이는 내 엉덩이가 됐고 나도 술래가 됐다. 감은 눈을 뜨면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겨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도 느껴졌다.

  

  12살이던 '그날' 나는 현실을 만지지 못했다. 아니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었을 것이다. 받아들임의 여부와 상관없이 엑스(x)축 순 방향으로 흘려보내야 했다. 하지만 시간과는 반대로 향하는 나의 감정은 '그날' 함께 했던 엄마와의 저녁 식사 장면을 선명하게 끌어 올렸고, '후회'와 '그리움'으로 버무려져 있다.

  '그날' 이후 나에게 가끔 발생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흘려보내기 싫어 날숨은 참은 채 들숨에만 집착했다.


  일상에 집착하며 아무것도 흘려보내지 못하고 들숨만을 가득 머금은 내게 오늘 써니의 '우스꽝스러운 엉덩이'는 코 끝을 간지럽히는 깃털이었다. 순간 큰 웃음을 터트렸고 가슴속 고인 숨을 많이도 쏟아냈다. 나는 오후 내내 시간을 달려서 7살로 돌아가 써니와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을 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다. 거친 들숨과 날숨이 시원했다.


  일요일 정오. 캠핑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저곳을 들러 주변 관광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경. 짐을 내려놓고 빨랫감을 정리하다 보면 시간은 일요일 저녁이 된다. 항상 그랬다.

  "엄마! 나 캐리(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봐도 돼?"

  "몇 개 볼 거야~ 많이 보면 안 된다."

  "어~ 3개만 볼게."

  "알았어."

  "싫어 써니, 아빠 복면가왕 볼거야."

  "여보, 지금 써니한테 싫다고 한 거야? 웬일이래?"

  "나 복명가왕 좋아하는 거 몰라? 오늘 결승전이라 가왕 나오거든."

  "아빠~ 복면가왕 좋아해?"

  "어~ 아빠 복면가왕 엄청 좋아해."

  "그래? 또 뭐 좋아해?"


  대화는 이어졌다.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써니의 것도 아닌 아내의 것도 아닌 아빠가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이전 06화 #6 : 조심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