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치 Jun 14. 2024

결혼 꼭 해야 할까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는데

어렸을 때부터 결혼울렁증이 있었다.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 중 결혼해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한 커플도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지는 전혀 겉으로는 알 수 없어 보였다. 또한 속사정을 듣게 된다거나 해도 이 사람을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는 확신보다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고, 또 시간이 흘러 결혼했으며 당연히 자녀도 낳고 힘들 때도 있지만 계속 견뎌내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줄 때가 강했다. 


함께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결혼이어야 할 것만 같은데 함께하고 싶지 않아도 결혼을 해버렸기 때문에 끝내 같이 살아야 한다니. 법적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다는 것, 않다는 것은 모순 아닌가. 이 때는 이혼이라던 지 돌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이었다. 관계에 얽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성세대를 접하다 보다 보니 우리 세대엔 결혼에 대해 냉소적이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엄마와 아빠가 저렇게 억지로 살려면 차라리 이혼해서 각자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그 세대에 결정하기는 쉬운 문제는 아니었겠지 짐작이나 해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삶은 살기 싫었다. 사랑을 하면 함께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물론 결혼 뒤 부부가 되어 미성년 자녀라는 공동의 책임이 있으면 그 중대한 임무가 없는 커플보다 헤어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함께 사는 것도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는 없지 않은가. 서로 함께 있어 불행한 부모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곧 잘 불행 해질 테니.


그렇다고 해서 나 스스로는 비혼주의자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혼을 꼭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자주 했지만 항상 외로웠고, 항상 사랑에 쉽게 빠졌으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함께 하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러나 그 형식이 결혼이라는 형태여야만 함께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한 여자친구와 남자친구의 관계로 여생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한국 어르신들은 그러다가 헤어지면 어떻게 하냐, 여자가 동거하면 흠집이 생기는 거다 또는 결혼을 하고 같이 살아야 맞다, 아니면 같이 살고 있으니 이미 결혼을 한 거냐라는 말들을 많이 하셨는데 아마 '동거'라는 개념은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나와 남자친구가 동거를 7년 동안 하는 동안 엄마의 소원은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신고라도 하고 또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이라도 찍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 당신이 어디 가서 당당하게 딸이 남자친구랑 같이 산다는 말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자신이 결혼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또 사진을 찍고 싶은 소망도 없는데 단지 엄마가 원하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그 소원 굳이 들어주고 싶진 않았다. 내가 엄마, 아빠가 이혼을 바란다고 이혼하는 것도 아니면서 남에게 결혼하라고 하는 소리는 왜 이렇게 쉬운지. 


또 네덜란드에 사는 특정한 환경에서는 더욱이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동거라는 것을 시청에 등록하면 공동의 재산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세금을 함께 내고 또 한쪽이 사고로 갑자기 죽으면 장기기증과 같은 서로의 몸에 대한 결정권도 생기도 한다. 그 뒤에 상대방의 연금으로 남은 다른 한 사람을 법적으로 돌봐줄 수 있는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인식면에서도 동거 커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결혼을 결심하고 올해 결혼신고를 했다. 


법적인 부분보다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함께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라는 결정을 알리는 감정적인 부분이 조금 더 컸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나의 안전한 기지, 닻이 되어준 이 사람과,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거실에 앉아 각자 할 일만 해도 재미있는 이 관계를 사람들에게서 공식적으로 인정, 자랑 및 축하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말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선택을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자신과 확신도 들었기도 했다. '나 이 사람이랑 사랑이 끝날 때까지 한번 잘 놀아볼게.'라고 공표를 하는 기회니까. 결혼을 한다고 해놓고 구태여 '사랑이 끝날 때까지'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오히려 이 사랑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또는 한 사람이 사고로든, 병으로든, 건강하게 잘 살다가 죽든 언젠가 사랑은 끝나니까.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주 만약에라도 이 사랑이 식는다면 용기 있게 헤어짐을 할 거라고. 


너무 청개구리식인가? 하지만 죽음이 없으면 삶의 의미는 없다. 사랑의 끝을 생각할 때 오히려 지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남아 있는 것이 의미가 있다.


결혼신고나 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 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가장 하기 싫었던 방식이 웨딩홀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었다. 웨딩홀에는 결혼할 신랑, 신부가 앞 뒤로 타임을 꽉 채워서 기다리고 있다거나 결혼식이라는 1-2시간을 위해 알지도 못하는 많은 지인들을 초대하는 것도 내향인으로서는 절대 싫었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한 의미 없는 인사 다니는 것도 싫었다. 무려 울렁증을 극복하고 하는 나의 결혼식인데 의미가 크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곳에 돈을 쓰게 되니까. 그 몇 시간을 위해 몇 개월 고생하고 수천만 원을 쓴다는 건 구두쇠로서 더욱 싫었다. 다행인지 식에 대한 환상이나 결혼식날 공주처럼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다.  웨딩드레스라는 옷의 아이디어부터 편하지 않았다. 물론 웨딩드레스의 디자인, 레이스, 스타일이야 아름다운 옷의 디자인을 감상하는 데는 끝도 없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결혼, 드레스 그리고 신부의 이미지는 순백의 웨딩드레스, 순결, 베일,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버진로드로 입장,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아 신랑에게 넘겨준다라는 것. 굉장히 어색했다. 지금은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는 해도 그게 아직은 메이저니까. 나는 처녀도, 부자도 아니며 누군가의 소유물도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결혼반지, 웨딩드레스와 결혼식을 안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순백의 드레스는 예부터 순결이나 또는 부를 상징하기도 하고 특히 큰 관심을 가졌던 베일은 여성의 얼굴을 미스테리안에 숨기거나 여성을 납치할 때 쓰이던 그물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이아몬드 역시 잔인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 역사 위에 사랑을 짓고 싶지 않았다. 


나와 파트너의 친구들은 술 마시며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바 하나를 빌렸고 'best friends only'라는 콘셉트로 저녁부터 시작해 자정이 될 때까지 재미있게 놀았다. 예전에 친했던 사람, 여기저기 아는 사람, 학교 동기들, 초대할 사람이야 하려면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밖에서 몇 번 만나지 않은 사이는 초대하고 싶지 않았고 또 지나가거나 멀어지는 인연을 굳이 끌여다가 나의 사랑을 축하하러 와줘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친한 친구들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너무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나의 결혼을 알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 이벤트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더욱 소중하고 개인적으로 간직하길 바랐다. 분명 소셜미디어 올리면 좋던 나쁘던 입방아에 오를 테니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십거리로 만들 기회조차 주고 싶지 않았달까. 


바가 생긴 이후로 가장 소규모파티라는 말을 바텐더에게 들었다. 워낙 소규모 파티라 우리는 각자 초대한 게스트당 적어도 30분씩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와줘서 고맙다 던 지, 새로 생긴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를 소개받기도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다면 결혼하는 호스트로서 정신도 없었을 것 같고 진심으로 대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 꽤 만족스러운 소규모 파티였다. 게스트 수가 적어서 서로 말도 걸고 누구의 친구라며 이야기하며 맥주도 마시고 재미있었다고. 그동안 잘 저축해 놓은 돈을 사용했는데 이 날 우리 둘 다 만족스러워서 인생에서 가장 잘 쓴 큰돈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하도 일부 하객이 한국 결혼식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듣기도 해서인지 어떻게 보면 한국 기준으로는 여러 잔소리를 가득 들었을지도 모르는 기념식이었다. 신랑, 신부가 친구도 많이 없고, 신부가 드레스는커녕 하얀색 옷도 안 입고 맥주나 마시고, 가족은 왜 초대를 안 했고, 결혼 전 동거를 했니 마니, 입고 있는 드레스는 얼마니, 신부가 살이 쪘니, 신랑이 어쩌니, 직업이 뭐니, 웨딩홀의 위치나 사이즈가 큰 걸 봐서 경제적 능력은 어쩌니 그런 소리를 들었을 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만의 안전지대 안에서 사랑을 공표하는 자리여서 행복했다. 


결혼이 끝나고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서로의 호칭의 정리였다. 친구들이 신혼은 어때? 이제 유부녀 유부남이네- 부부네라고 말하거나 흔히 쓰는 남편과 아내라는 호칭이 붙게 되는 게 결혼 후 달라진 점인 듯한데 결혼 호칭들이 묘하게 불편해서 찾아보니 썩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일단 시댁, 처가라는 말부터 살펴봐도 시'댁', 처'가'. 

왜 남자 집은 댁이고 여자 집은 가다. 남편 입장에서 아내 가족을 부를 때, 아내 입장에서 남편 가족을 부를 때도 계급이 확 달라지는 아주 재미있는 사실.


또 남편의 반대말은 여편이지만 보통 여편이라는 말보다는 -네를 붙여 여편네라고 불리는 것을 보면 계급을 한층 낮춰 비하하는 호칭이고 아내라는 말은 안사람이라는 뜻으로 반대말은 바깥사람이다. 예전에야 말이 되는 호칭이지만 지금은 적용되지 않으니 탈락.


와이프, 허스밴드. 

'내 와이프가 요즘에.. '라는 말은 듣기에 자연스러워도 '내 허스밴드가 요즘에..'라는 식으로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것도 탈락. 생각해 보면 부모님 시대에 결혼 한복사진을 찍을 때 아내는 한복을 입고 찍고 남편은 양복을 입고 찍는 경우도 꽤 많은데 볼 때마다 마음이 이상한 것도 걸렸다. 여자에게는 동양적인 가치를 요구하고 남자는 서양적인 가치를 또는 그 반대를 요구하는 걸까? 또 비슷하게 우리 '신랑이..'라는 말은 자주 써도 우리 '신부가..'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나마 서로를 존중해 주는 호칭 중 여보와 당신이 있는데, 현대에 와서야 남편과 아내 서로에게 여보라고 부르거나 당신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라고 부르고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통이었다. 여보라는 뜻은 보배와 같이 소중한 사람, 당신이라는 뜻은 우리의 몸은 떨어져 있지만 나와 같다는 뜻인데 이 단어에서도 어느 정도 보배를 소유한다는 느낌과 내 몸은 당신 것과 같다는 수동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익숙한 성경 구절이 있는데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보, 당신이란 말에도 소유격/수동적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여보, 당신으로 부르더라도 탈락. 성경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기독교에서 보는 여자는 남자에서 탄생된 부속물에 조금 더 가깝다. 아담의 갈비뼈를 떼어내 이브를 만들어 낸 걸 보면.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창조물의 시작, 신에 가깝다. 뱃속에서 뼈를 만들어내고, 뇌와 눈알, 숨 쉬는 폐를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생명을 빚는 일이니까. 하지만 비단 기독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자는 +1이다. 영어 단어 Man과 WomanMale, female이라는 호칭에서도 여자는 단지 여자인 남자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식으로 따져보다가 네덜란드 단어인 man과 vrouw라는 단어를 살펴봤는데 단어의 자체의 의미는 남자와 여자지만 네덜란드 문화에서는 남편 그리고 아내라고 부르는 호칭이다. 어원을 찾아보면 게르만어에서 탄생했고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다. 생물학적 여자와 남자라는 의미인데 이 호칭 말곤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호칭은 따로 없는 것 같다. 다행히도 네덜란드에 살기 때문에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며 나의 남자, 나의 여자라고 소개할 수 있다. 한국어로는 파트너, 동반자 등의 호칭이 좋은 것 같다. 감사하게 '시댁'에서도 굳이 시엄마, 시아빠, 시누이 등의 호칭으로 고통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호칭에 대한 고민은 당분간 종결.


누군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거나 예민하게 구냐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내가 이렇게 호칭에 민감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나의 부모님의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 불려 오며 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이름은 내 이름도 아니라 친오빠인 아들의 이름인데 엄마는 출산 뒤 평생 그 이름으로, 그 역할로 삶을 살아간다. 심지어 할머니마저 딸인 엄마를 누구 엄마, 또는 엄마를 누구(오빠이름)야- 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해도 나의 정체성을 절대 잃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평생 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이가 생기면 당연히 누군가의 엄마라는 호칭이 생기고 역할과 발란스가 바뀌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내 이름 가진 인간으로서 불리며 살아갈 것이고 또 내 파트너의 파트너, 여자라는 성정체성, 당당한 직업여성으로 살고 싶다. 결혼 뒤에도 주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