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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치 Jun 14. 2024

임신결정을 한 페미니스트

임신과 출산이 무서웠던 지난 10년. 아기가 무서웠다. 이 작고 연약한 존재 때문에 내 인생 모조리 뿌리부터 다 흔들려 버릴 것 같은 불안감. 엄마가 되면 내 정체성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저출산율이 화제가 된 요즘에서야 올해 한번 도전해보자고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몇 있다.


1. 호르몬의 부름

고령 산모가 많은 추세라지만 내 인생은 위험 감수를 피하는 방향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가족을 꾸린다고 했을 때 최대한 육체적,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이상적 상황이다. 또는 몸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강할 때 생기는 것이 회복력을 따지던 그 후 체력을 따지던 여러모에서 지금 당장, 하루라도 빨리 가지는 것이 리스크가 가장 낮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기에는 이미 나이 앞자리가 3이 된 지는 꽤 되었지만 말이다. 나이에 대한 압박감, 육체적인 이유 말고도 심적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여성의 1/3이 유산을 겪는다. 유산될 아이는 그 누구의 탓이 아니라 생물학적 확률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운명이었다 하더라도 실제 겪게 된다고 하면 유리 멘탈 주제에 감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어 최대한 위험 요소를 피하고 싶기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호르몬의 노예인 인간인 나도 나이가 드니까 자궁 호르몬의 부름인지 평생 아기, 어린이들을 귀찮아하거나 단지 시끄럽다 생각하던 내가 드디어 작은 사람이 아기 동물같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2. 연구자의 관점

어느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부터 눈도 보이지 않고 말도 못 하는 생명이 육체적/정신적으로 자라난다는 것이 흥미로워졌다. 물건을 억지로 떨어뜨리면서 중력이라는 개념이 잡히고 팔, 다리의 한계를 시험해 본다는지, 어떤 한 패턴을 계속 반복하면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습득한다든지. 자라는 시간마다 발달 과정과 흥미 주제가 달라진 다는 게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라는지 하는 게 신기했다. 집에 밥 먹으러 놀러 오는 새 한 마리도 귀엽고 집에서 사는 고양이 꼬리 보면서 지금 기분이 어떻고 뭐를 원하고 있구나 맞춰주는 것도 재미있는데 인간을 키워보고 어떨까.



3. 신

생명을 창조해 내는 일은 존재하지 않던 어떤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무에 가까운 어떤 것에서 유라는 덩어리를 창조하는 것은 신에 가까운 경험이고 나(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 창작가라는 직업으로서 사람은 최고의 창작물이 아닌가. 세라믹을 만들 때, 흙을 반죽하고, 빚고 말리고 칠하고 여러 번 굽는다. 그런 조그만 세라믹 피스도 사랑스러워 죽겠는데 이 세라믹 피스에는 생명이 없다. 그런데 내 의지로 만든 것이 살아 움직이고 자라난다면?


내 뜻 없이 태어나 그냥 이래저래 자라왔으므로 한국에서 자라며 지켜봐 온 엄마, 아빠라는 역할과 존재가 썩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되면 행복하겠다란 생각보다는 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자기희생해 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에 엄청난 부담을 느낀 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득이 되는 게 없고 실만 있다면.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별로였던 생각했던 어떤 엄마는, 그 사람은 역할이 엄마라서 별로였던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닌 본인이 별로인 사람였지 않을까. 또 주위를 둘러봐도 나 같은 사람은 어차피 나밖에 없는데 머릿속에 존재하던 부정적이고 전형적인 엄마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넌센스로 느껴지기 시작되었다. 지금 남자친구(당시)와 거의 6년을 만나면서 생긴 단단한 확신 중 하나는 지금까지 믿어오고 경험했던 부정적인 이미지의 가족과 결혼이라는 것에 얽혀있지 않고 나만의 세계를 재창조해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었다.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족.


몸이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리서치해 본 뒤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이고 너무 우울하다면 언제라도 의학의 힘을 빌려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생각하니 맘이 편해졌다. 몸에 대한 집착 또한 편견이고 내가 어떤 몸을 갖고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변함없이 사랑해 줄 게 확실해서 두렵지 않아 짐. 하지만 건강과 만족도를 위해서 출산 뒤 몸 회복이나 체력 관리는 어느 정도 해야겠다.



4.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란 확신

최소 20년 동안 생명을 책임지는 위대한 임무를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나 자신도 사는 이유를 모르겠는 데다가 행복한 20년을 보내지 않았던 터라, 귀중한 한 생명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자신이 없으면 책임을 지지 않겠다 생각했다. 


최근 들어 바뀐 생각은 내가 만약 나쁜 엄마가 될 거라면 이런 질문을 오랫동안 묻지도 않았을 것.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테고 내가 갖고 있는 감정적 예민성을 오히려 작은 생명이 무엇을 원하는지, 행복해하고 슬퍼해하는지 잘 알아차릴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가장 안심이 되는 건 든든한 동반자. 아빠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할 정도로 이 사람이 아빠가 된 모습을 떠올리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이 사람은 최고의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다정다감하고 열려있으면서 재치 있고 창의적인 이 사람이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된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5. 정체성

열심히 살아온 만큼 쌓아온 성취나 커리어가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뺏길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나의 동반자, 사회, 나라에서는 이것들을 지킬 수 있을 거란 확신과 안정감을 느끼므로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제약이 생기는 건 당연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거나 할 수 없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6. 결국엔 부모의 이기적인 이유로

고양이가 처음 집으로 온 날, 우리 둘 사이에 끼여서 새근새근 잠든 보드라운 고양이를 봤다. 우리는 이제 셋이구나. 완전체 같은 느낌. 셋이라서 주는 안정감은 연인에서 드디어 가족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도전을 마주하고 해결하며 함께 성장해 왔다. 지금은 단계상 새로운 챌린지가 필요한 시기인데 생명을 기르는 장기 프로젝트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음. 그리고 이 도전은 오직 나와 파트너를 위한 이기심에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그런 책임감을 질 수 있을까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해 왔다.


최근에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 글 중에 요즘 신혼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크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 세대의 성인들은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싸우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인생 전체 크게 봤을 땐 행복보다는 좌절, 우울, 허탈감, 무기력함이 더 크게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는 다면 행복도 제로, 불행도 제로. 그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아닐까 한다며. 나도 크게 동의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임신과 출산을 함부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결국 인간이라는 동물이 살아가는 최고의 본능은 재생산이라는 가치인 것 같다. 나만의 안전한 둥지가 생기고 모이를 안정적으로 물어다 줄 수 있는 환경이 생기기만 한다면 나만의 가족을 이기적 이게도 꿈꾸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감히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커플의 여러 가지 이유에서의 이기적인 욕심에서 생명을 창조해냄을 인정할 때 도리어 건강한 가족을 만들어 나갈 준비가 된 것 아닐까.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왜 날 낳은 거냐고라고 어느 날 자식이 물어본다면 '어디 이게, 낳아준 걸 고마운 줄도 모르고.'라는 말보단 '엄마와 아빠는 네가 너무 만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려서 만들었어. 그래서 네가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 줬고 너무나 고마워. 거기에 대한 책임을 다 하고 너도 행복하게 살다 가도록 더욱 노력할게.'라고 말해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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