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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씰리 Feb 18. 2024

너의 못생긴 손톱을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을 예뻐하는 방식



아마도 내가 객관적으로 딱히 예쁜 외모가 아니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못생긴 부분들을 사랑의 눈으로 들여다보아줄 때, 예쁘다 대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름을 지어 표현해줄 때 더욱 사랑을 크게 느낀다. 


이를테면 나는 근 30년째 집중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손톱이 짧고 울퉁불퉁하다. 하는 운동이라곤 하루종일 타자치는 손가락운동밖에 없음에도 손가락은 짧고 오동통하다. 근데 연인이 그 콤플렉스 한가득인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다가 '손가락이 몽당연필 같네' 라고 말할 때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깊은 사랑을 느낀다. 내 엄청난 뱃살을 '세월의 미덕'이라고 평하면 부글부글하면서도 깊은 사랑을 느낀다. 순간포착으로 흉폭하게 나와버린 엽사를 사진첩에 고이 저장했다가 나에게 들켰을 때 빡치면서도 깊은 사랑을 느낀다.


니가 어떤 모습이든 내 눈엔 다 예뻐. 라는 말은 조금 밍밍하다. 말에 영혼이 덜 느껴진다. 물론 나의 지극히 사적인 기준이다. 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눈에는 몽땅 예쁘다는 말도 눈에 사랑의 필터가 씌워진 자의 진심어린 발언인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그보다는 '니가 생각하는 너의 못생긴 부분마저 모조리 사랑해' 라는 말에서 더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뿐.


한편으론 어딜 가나 예쁘고 잘생겼다는 말을 듣는 진정한 미녀미남들은 애인에게 외모 예찬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말해주면 좀 다를까? 얼마만큼의 감흥일까? 


미녀미남들의 마음은 모르겠으나 여기까지 적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나의 외모자존감이 참 낮긴 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래도 그 자체로 사랑하려고 늘 노력 중이다.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그러해주듯, 나 역시 그 사람이 스스로 싫어하는 작(다고 스스로 늘 평하는)은 눈을, 군대 시절 발톱이 몇 번 빠졌다 다시 자라서 끝이 제멋대로 삐죽삐죽한 발을, 점점 흰털이 늘어가는 그의 턱수염을 사랑한다. 짧게 보아도 오래 보아도 여전히 똑같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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