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고 구차했던 마음의 여정에 대하여
이는 전적으로 나만의 사견임을 밝힌다.
비혼주의든 결혼주의든 외쳐 부를 수 있는 자격증 따위 필요할 리가 없다.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고, 남에게 그 소견을 밝히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나는 왠지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결혼이라는 제도, 결혼식, 결혼생활 같은 것에 로망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네 살쯤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외할머니의 집에 얹혀살았고, 내 방은 없었으며, 엄마 아버지 남동생 나까지 일렬로 낑겨 자는 안방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아버지가 주정을 부리는 소리, 엄마가 그 주정뱅이 아버지와 싸우다가 한탄하는 소리 등을 들으며 자랐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부부의 모습은 나에게 SF 판타지였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십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마침내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한 뒤 한부모가정의 자녀가 되었다. 고교시절 늦은 밤 동네 평상에서 친구들과 퍼질러 앉아 수다 떨며 각자 '이다음에 결혼하면 나안-' 에 대한 로망을 나누었을 때도, 나는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적령기를 넘기기 전에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기 때문에 내가 막연하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나는 혼주석에 아버질 앉히고 싶지 않은데. 그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결혼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게 다였다.
작가를 꿈꾸었으며, 수업시간엔 교과서 대신 소설책을 읽었다. 문학적 소양은 넘치게 쌓았지만 좋은 대학에 갈 점수는 조금도 쌓지 못했다. 수능경쟁에서 도망쳐 학점은행제 기관에 들어갔다. 졸업도 못했다.
가난하고, 외모도 딱히 특출나지 않으며, 학벌마저 없는 이십대가 되었다.
이십대 중반에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나와 한 살차이였고, 그 역시 첫 연애였다.
서로의 첫 애인이 된 그와 나는 모든 것이 달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당시 나는 막내작가로서 박봉을 받으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까지 들어간' 남자가 내 연인이 된 것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런 남자와, 이런 초라한 내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의 장래희망은 언젠가 회사를 관두고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둘이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발 닿는 대로 여행하다가 셋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고.' 라며 늦은밤 전화로 그가 꿈 같은 청사진을 이야기할 때, 나는 사정없이 설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사회생활에 찌들고 현실에 온전히 발을 붙인 그는 나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나는 비혼주의야. 이런 나 때문에 네가 시간낭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네가 <아직> <예쁠 때> 널 놓아주는 게 맞지 않을까?'
이것은 지금까지도 지금까지의 내 인생 탑쓰리 안에 드는 개소리다.
그전까지 그와 나는 결혼에 대한 얘길 나눈 적도 없었고, 내가 이담에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매달린 적도 없었고, 여자 나이 베스킨라빈스 되기 전에 나 책임질 꺼지? 안 그럼 죽여버릴꺼야앙 하며 징징거린 적도 없었다.
단지 나는 그를 몹시 사랑했을 뿐이었다. 첫 애인이자 첫사랑인 그와 영원히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혹시 그와 결혼이 가능할까? 마음속으로 상상을 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나는 결혼생각 따위 없으니 걱정 말라며.
그는 안심한 얼굴로 나를 다시 사랑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을 더 사귀었다. 이별 통보는 결국 내가 했는데. 데이트의 끝자락에 카페에 마주앉아 오열을 토해내면서 내가 했던 말은 '나는 이제 결혼이 하고 싶어졌어...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 였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는 권태기였을 뿐인데. 너의 곁에 있는 게 지독하게도 외로워져서인 것뿐인데.
첫 연애를 예상보다 너무 길게 한 우리는 헤어지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가 느닷없는 비혼주의 선언을 했을 때에도 사실 우린 첫 번째 권태기를 겪고 있었다.
비혼 or 결혼. 막 30대에 접어든 우리가 명료하게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이별 키워드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예상대로 그는 나와 헤어진 지 1년 만에 결혼했다.
천만다행히도 그때 나는 다음 연애 중이었다. 만약 솔로인 상태로 그의 결혼 소식을 알았다면 슬프고 억울하고 배아파서 소주병나발을 불며 양화대교를 네발로 기어가며 울부짖다 사건반장에 나왔을 것이다.
모자람 없이 평범했던 그는 비혼주의라고 스스로를 속였을 것이다. 나를 결혼상대로 선택했을 때에 생겨날 수 있는 고난들을 헤쳐갈 용기가 없어서. 또한 그만큼 날 사랑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 후로도 30대의 대부분 동안 나는 '비혼주의입니다' 라고 섣불리 선언하지 못했다.
일단 예나 지금이나 나는 평생 결혼하지 않더라도 곁에 연인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어서도 귀엽고 잔잔하게 연애 내지 사랑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러다가 어떤 날엔 불현듯 결혼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의 내가 혹시라도 '제가 지금까지 비혼주의였던 건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였어효' 라고 발그레한 미소로 지껄인다면?! 이라는 막연한 불안! 도 컸지만,
무엇보다,
내가 결혼생각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결혼할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기댈 집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스펙이라도 갖춘 뒤에야 나에게도 결혼 or 비혼의 선택지가 주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상태가 되어야 선택을 하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물론 이 또한 개소리다.
하지만 정말 개소릴까?
결론적으로 나는 30대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마침내 직업적 성취라 할 만한 것을 이루고, 경제적으로 다소간 안정된 지금에서야 내가 원하는 것은 비혼임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에게도 비로소 '전 비혼으로 정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지금의 연인과 서로의 집에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것이 진짜 동거가 된다면? 이라는 시뮬레이션도 돌려볼 수 있었고, 본가를 떠나 독립한 후 혼자만의 고독하고 오롯한 시간도 보내보면서 이 생활이 평생 지속된다면? 이라는 시뮬레이션도 돌려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역시, (다행히도) 나는 결혼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렇게 길게, 지난하게, 구구절절한 과정들을 거치고서야 나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는데, 일찍이 결혼 혹은 비혼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어떤 지름길을 가진 것인지 궁금하다.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말들로 이 고민 일기에 대한 마무리를 좀 더 하고 싶지만, 비혼주의로 정한 이후 현재의 삶에 대해 글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정리는 또 아직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이 정도로 애매하게 마무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