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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l 07. 2024

이런 집에 살도 못하고 죽네

한 조각 슬픔

  예전에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때문인지 길에 누워있거나 담장 위에 웅크리고 있는 냥이 녀석들을 보면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영물(靈物)'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쳐다보는 눈매가 그리 유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날카로운 눈을 보면 내 마음을 읽힐 것 같아 싫습니다. 가급적 적정거리를 유지하면서 녀석들의 영역을 인정해 주면 그뿐입니다. 밸런스게임으로 '고양이 vs 강아지'하면 저는 당연 '강아지'라고 답할 것입니다.  


  새의 눈은 교만해 보입니다. 날개 달린 상류층이라서 그런지 그다지 정감이 가지 않습니다. 냉정해 보이고 차갑습니다. 눈은 마치 인형에 박혀있는 스와로브스키 큐빅같이 감정이 없어 보입니다.


  겹눈과 홑눈으로 구성된 잠자리나 곤충의 눈은 공포감이 듭니다. 어릴 때 잠자리를 손으로 잡아 검지와 중지에 날개를 끼고 의기양양 뿌듯해하는 순간, 그 수백 개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고, 입으로 하얀 거품을 내뿜으면서 내게 공격자세를 취하는 그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잡았던 잠자리를 손사래 치듯 놓아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곤충과 맞다이(?)로 상대해서 져버린 굴욕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소나 염소, 돼지 등 가금류(家禽類)의 눈을 볼 때 그들의 최후를 아는 저로서는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가슴이 저려오는 듯한 정서적 교감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아지.... 강아지의 눈을 보면 왜 그리 마음이 심쿵하고 안쓰럽고, 미안하고 측은하게 여겨질까요? MBTI성격유형으로 T성향(사고형)인 제가 유일하게 감정몰입이 되는 대상이 강아지입니다. 동물병원에 애견을 안고 가면 덜덜덜 떠는 영상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우리 딸이 키우는 모찌(Mozzi)도 가끔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가면 사시나무 떨듯 혼비백산하다가 진료를 마치고 다시 품으로 돌아와 안길 때면 갓난아이 같이 순전하고 사랑스럽고 애틋합니다.


  안데르센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성냥불 하나에 손을 녹이고, 다시 성냥불 하나에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보이고, 또 하나의 성냥불에 그리운 할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동화가 이렇게 슬퍼도 되는지요.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도 가슴 뭉클하게 여운이 도는 새드엔딩 이야기입니다.


  살다 보면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우연한 사고로 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투병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누군가는 사랑하는 자들의 위로로 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오는 작가님들의 글 속에도 눈물 나는 '삶'을 읽고, '인생'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가치'를 듣게 됩니다.




  상업용 건물(상가, 백화점, 관공서, 학교 등)과 마찬가지로 주거용 건물(단독주택, 공동주택, 오피스텔)은 준공(사용승인) 후 입주 전에 준공청소(입주청소)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공사하면서 붙어있는 스티커, 테이프도 떼어내고, 얼룩, 먼지 등도 털어내면서 청소를 합니다. 보통 청소용역으로 아주머니들이 청소도구를 가져와서 구석구석 쓸고 닦고 하게 됩니다. 일하는 분들이 젊은 분들도 있지만 연령이 60세에서 그 후반까지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최근에 꽤 큰 평형의 아파트 입주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이분들도 역시 한눈에 적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전에 창틀이며 주방이며 화장실 등을 청소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 주방 한편에 옹기종기 앉아 커피 한잔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차에 한 아주머니가 한숨 섞인 한마디를 합니다.

어휴~나는 이런 집에 살도 못하고 죽네.....


  다른 아주머니가 "뭘 그런 소릴 다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멍해지는 한마디입니다. 안쓰럽고 안타깝고, 측은하면서 제 마음에도 '무슨 그런 소릴 하세요. 부럽기는 하겠지만 좋은 날도 생기겠죠!'라는 울분의 외침이 들립니다.


  건축을 공부하고, 예술과 멋을 말하며, 기초를 만들고, 뼈대를 세우고 공간을 창조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어떤 의미도 줄 수 없는 사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톤 슈낙(Anton Schnack)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처럼 슬픔이라는 단상이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한 조각 슬픔에 우리네 인생이 가슴 아픈 새드엔딩으로 디졸브 되어 영화처럼 마무리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마철, 회색빛 구름아래로 무겁게 내리누르는 습한 공기의 압박(?)과 공사현장 철근에 맺힌 물방울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비숑 프리제 우리 “모찌”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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