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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ug 10. 2024

처음 것을 기억해 보기

삶이 우울할 때

냉장고의 날짜 지난 우유는 대한민국 모든 아빠들의 '몫'입니다. "엄마! 냉장고에 있는 우유, 날짜가 좀 지난 거 같은데?" "그거 아빠 드리고, 옆에 보면 새로 사 온 우유 있다. 그거 먹어"


 '우리말 어록 사전'(?)에 등재해서 기록물로 관리하도록 추진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유통기한 그까이꺼 며칠 지나도 건강에 전혀 문제없고, 많이 먹어봤는데(ㅠㅠ)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니 안전한 식품일 거라는 비합리적 신념이 때론 안쓰럽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께 '유통기한 지난'우유 한잔 드릴게요. ㅎㅎ (사실 소비기한으로 치면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음식의 맛은 오래 기억이 남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먹고 싶어서 상상만 했던 것을 처음 맛보았을 때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나나와 두유의 첫맛을 잊지 못하고, 병에 든 하얀 우유 하며 '아이 라이크 불코기!'...... 처음 먹어 본 '불고기'의 식감이 그렇습니다. 예전에 동네 어귀에는 소위 '불량식품 가게'가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만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조그만 가게엔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먹거리가 있었고 그곳을 '불량식품 가게'로 통용이 되어 부르곤 했습니다. 나쁜 의미로 불렀던 말은 아니었고, 동네가게를 친근하게 부르는 대명사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도 우유는 대체적으로 좋아합니다. 아침식사를 안 하기 때문에 출근하면서 편의점에서 하나씩 사 먹기도 하고, 퇴근할 때 출출하면 조금 달달한 '커피우유' 하나 집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유 맛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너무 싱겁다고 해야 할까요? 그다지 고소한 맛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우유는 이런 맛이 아닌데?' 하면서 처음 먹었을 때 맛을 추억하면서 조금씩 음미해 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 맛을 찾으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그 맛의 기억이 느껴지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가끔 베이커리샵을 갈 때면 빵과 함께 따뜻한 우유 한잔을 주문합니다. 어릴 때 먹었던 고소한 우유맛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종이마개로 밀봉된 병우유가 요즘은 없습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하얀 우유의 고소함은 추억 그 자체입니다.


  내 MBTI성격유형은 '인티제(INTJ)'입니다. INTJ의 성격유형 풀이를 보면 '어떻게 이렇게 나를 잘 설명해 놓았지?' 하면서 감탄스러울 지경입니다. 나의 삶이 나를 만드는 것인지, 태어난 나의 성향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혼동될 때가 있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인티제'입니다. 인티제는 '조용한 혁명가'라고 하죠. 기존사회질서나 규칙 비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기존 틀을 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성향이 저는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의 경우, 좀 많이 우울해합니다. 우울증까지는 아닌데 종종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떨어지는 낙엽 위를 걷는 이미지로 세미(semi) 우울증이 있습니다. '10년만 더 젊어질 수 있다면, 다시 학생시절로 돌아갔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그 힘든 세월을 또다시 살라고? 난 싫어!' ㅋㅋ 이런 게 우울증이죠?


  맛에 대한 기억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기억이라는 기관이 생성되기도 전, 우주적 관심과 축복을 받으며 존귀함으로 태어난 '나'라는 존재, 하늘의 뭉게구름을 쳐다보며 구름 속을 날고 싶어 했던 순수한 동심, 나는 커서..... 이런 사람이 될 거야 꿈을 가졌던 어린 시절, 뒷동산의 진달래, 아카시아의 꽃향기, 사루비아 꽃 속의 꿀 한 모금, 처음 두 발 자전거 타던 날, 처음 본 여의도 불꽃놀이의 환희, 대학생 되던 날의 버스 속에서 바라본 하늘, 결혼, 육아, 반지하방 신혼생활에서 처음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떨쳐버릴 수 없었던 입가의 미소.


  삶이 우울하고 힘들 때, 살아가는 것이 고통이고 아픔이라고 느낄 때, 잊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첫 기억을 찾아가면, 그래도 인생이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 여겨지지 않을까요?  삶에 대한 아름다운 첫 기억들로 오늘의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싶습니다.


대문사진:남산예장공원 내 '기억 6전시관'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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