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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ug 24. 2024

베일이 벗겨질 때 조심하세요

마음이라는 정서가 기초(基礎)가 되고

  쿵쿵 쾅쾅 촤르르르 촤르르르 다다다다다다 쾅쾅쾅! 인근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말도 아닙니다. 대낮에 전화조차 받을 수 없는 진동과 소음으로 너무 힘이 듭니다. 구청에 전화해서 민원을 제기해 보지만 조용해지는 것도 잠시, 다시  쿵쿵 쾅쾅 촤르르르 촤르르르 다다다다다다 쾅쾅쾅! 시공자 입장에서는 공사를 안 할 수도 없고, 참으로 진퇴양난입니다. 그들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건축이 마무리될 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게 됩니다.


  물론 현장에서도 방음벽을 설치하고, 이른 아침이나 상가의 주요 영업시간대를 피해 가며 진행을 하지만 역부족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소음진동관리법 21조에 의하면 아침과 저녁, 주간, 야간에 따라 50~70dB(데시벨)로 관리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한들 중장비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은 사실 통제불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제가 소음측정기를 들고 인근 놀이터에서 소음측정을 해 보았지만 하늘 위로 지나가는 까치 소리만 해도 70~80dB 정도 나오는 것을 보면 사실 소음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의 소음은 감내해 가며 민원인도 참고, 시공자는 가슴을 졸이며 눈치껏 공사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건축공사 기준으로 신축, 증축 등 연면적 1,000㎡ 이상의 공사는 착공신고와 함께 '비산먼지발생신고'를 하게 됩니다. 그 안에는 공사장의 규모와 위치와  인접지역 예상피해지역을 표시하고, 방진시설이나 기타 비산먼지저감을 위한 대책 등을 기록하고 시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음진동규제법 제25조 제1항에 따라 특정공사 기계·장비를 5일 이상 사용할 때 그로 인한 소음과 진동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서 '특정공사사전신고'를 추가로 제출해야 합니다.




  유명 작품이 일반에게 공개될 때 베일이 벗겨지면서 축하연을 베풀게 됩니다. 가렸던 천을 걷어내는 식으로 기쁨의 절정을 맛보게 합니다. 심리적인 극적효과를 이용하는 것이죠. 건축이라는 것이 참 묘합니다. 일부러 만들어낸 것도 아닌데 마치 작품을 공개하듯 베일을 벗기는 작업이 있습니다. 외부비계를 걷어내는 공종입니다. 외부비계를 철거하는 시기는 건축물의 외부 마감공사가 마무리되었을 때입니다. 외부비계가 철거되면 웅장한 건물의 형태가 한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방음벽과 외부 비계, 그리고  방진막에 덮여 그동안 소음의 원인자로 나를 못살게 했던 골칫덩어리의 베일이 한순간에 벗겨지는 날입니다. 시공자로서는 여간 뿌듯한 날이 아닙니다. 이제 당당히 마무리 공사를 하고, 지역의 흉물이 아닌 작품으로서 떳떳해질 수 있는 것이죠.


  어두웠던 골목도 예전보다 훨씬 환해졌습니다. 주변의 낡은 건물과 대비가 되면서 동네도 보다 그럴싸해 보입니다. 그동안 공사 때문에 인근거주자들이 힘든 면도 있었지만 이제 완성이 되었으니 모두 축하해 주고 기뻐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비계에 둘러졌던 방진막이 걷히고, 시스템비계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철거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갑자기 빗발치기 시작합니다. 1년 넘게 아니 그 이상을 참아오고 배려해 주던 이웃이 이상해졌습니다. 기뻐해주기는커녕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건축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¹ 그동안의 불만을 토로하면서 피해보상과 당신 건물의 원상복구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매번 프로젝트마다 동일한 과정이 연출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일까요?


보상심리(報償 心理 / Compensation) :

사람은 일정한 행동을 취하면 그에 부합되는 대가를 받고 싶어 한다. 행동의 주체를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보상을 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받지 못하면 반대로 복수라는 부정적인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 이를 통틀어 '보상 심리'라고 한다. 【출처 : 나무위키】


  그런 연유로 저는 비계가 해체되는 날 많이 긴장을 합니다. 특별히 주변 민원인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몸을 조금 더 낮추고 경청하면서 그동안의 고통과 아픔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게 됩니다.


   건축기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엮어가는 카운슬러입니다. 작업자의 마음 들여다보지 못하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갑니다. 서로 다른 공종이 부딪혔을 때 조율하지 못하면 한쪽이 무너집니다. 마음이 상하면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건물의 균열이 바닥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정서가 기초(基礎)가 되고, 행동이 구조(構造)가 되는 것이 바로 건축입니다.


주¹ : 글쓴이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일반화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대문사진 : 대리석 작품 '베일에 싸인 성모(The Veiled Virgin) - Giovanni Strazza(1850년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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