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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ug 08. 2024

감춰진 능력

예비장치

  지금은 '에버랜드'에서 없어졌지만 놀이기구 중에서 '독수리요새'라는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롤링 엑스 트레인'은 360도 회전에 규모도 크기 때문에 더 무섭다고 여겨지지만 저의 경우 그다지 매력을 못 느낍니다. 독수리요새는 위쪽에 레일이 있는 행거형식의 롤러코스터 방식으로, 의자에 앉아 숲속 사이를 요동치듯 달리기 때문에 스릴감은 당연 최고입니다. 아쉽게도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서 에버랜드 가 본지 족히 20여 년은 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아이들과 단양에 있는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갔습니다. 오래전부터 한번 타 보고 싶었던 터라 큰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멋있었지만 조금 실망스러웠던 것은 하강하면서 긴장감이 없을뿐더러 생각보다 안전해도 너무 안전합니다. 마치 그냥 그네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익스트림 스포츠는 스릴과 긴장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를 끄는 취미 활동입니다. 당연히 위험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보조적인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 클라이밍 종목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실제 암벽등반에서는 당연히 여러 가지 안전장비를 구비해서 오르게 되겠죠.




  대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경계명시측량(경계복원측량)'을 하게 됩니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대지의 꼭짓점을 땅에 표시를 해 주고, 성과도를 서류로 발급해 줍니다. 요즘은 측량도 GPS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 경험상 오차범위가 ±30mm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대지의 경계선은 건물의 배치 시 인접대지경계선이나 건축한계선으로부터 법적인 이격거리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최초 측량된 지점이 유실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장비(굴삭기, 덤프트럭, 레미콘차량, 펌프카, 크레인 등)의 잦은 통행으로 도로가 침하되고, 경계가 훼손되기 십상이죠. 그래서 보통 현장에서는 측량지점이 훼손되어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보조기점을 만들어 놓고 관리를 하게 됩니다. 점, 방향, 거리만 있으면 위치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임의의 한 점을 정하고 방향(두 개의 점)과 거리(임의의 점에서 측량 지점사이의 거리)만 기록해 두면 언제든지 당초 측량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유입된 지하수로 건물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공법으로 '디워터링(De-Watering)'공법이 있습니다. 지하수가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는 공법으로 물을 집수정으로 유도해서 배수장치를 이용해 물을 빼내는 방법입니다. 보통 지하층이 있는 건물은 최하층부에 집수정을 설치하고 수중모타펌프를 설치해서 만일의 침수에 대비하게 됩니다. 펌프는 2대를 설치합니다. 주펌프와 예비펌프로 주펌프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서 예비펌프를 하나 더 설치하게 됩니다. 일종의 안전장치입니다. 급수를 위한 물탱크나 소화용수를 저장하는 저수조는 상부에 물이 넘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버플로어관(물 넘침 관)을 만들어 놓습니다. 혹시나 기기 고장으로 자동제어가 안될 경우 정해진 수위를 넘어서면 자연배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어느 곳이나 예비장치(안전장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곳이나 심각해질 수 있는 곳은 항상 보조장치를 만들어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확률을 낮추어 놓습니다. 승강기도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이중 삼중으로 설치되어 있고, 프레스나 재단기 등 절단의 위험이 있는 기계에는 스위치를 분산시켜서 동시에 두 곳을 누르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보조장치나 예비장치는 평상시에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역할도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주장치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한 번도 사용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좌표를 정확하게 다시 찾아낼 수 있고, 위기의 순간에 보조장치가 가동되면서 생명을 구하거나 큰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본캐'는 건축기술자입니다. 나의 '부캐'는 이제 너무 부끄럽지만 '브런치작가'입니다. 글쓰기도 서툴고, 습작 수준입니다. 인문학에 정통한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그 내용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수백 편의 작품을 발행하고 수십 권을 출간한 그분들의 필력을 보면 감히 '작가'라 말하기가 송구스럽습니다. 요즘 다른 분들의 글을 많이 읽게 되는데 내심 '대단들 하시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하루에도 몇 편씩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을 보면 과연 '넘사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저의 '부캐'는 한 없이 부끄러운 '브런치 작가'입니다. 저의 '본캐'가 힘을 쓸 수 없을 때 '부캐'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상상해 보렵니다.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¹

주1 : "갈땐 가더라도 담배 한대 정도는 괜찮자나?" 영화 '신세계'의 박성웅 명대사 패러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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