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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ug 04. 2024

또 누가 압니까?

다시 생각해 보는 세런디피티(serendipity)

걸음을 걸어도 일인들 모양으로 경망스럽게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느럭느럭 갈지자걸음으로, 뼈대만 엉성한 호리호리한 체격일망정, 그래도 두 어깨를 턱 젖혀서 가슴을 뻐기고 고개를 휘 번 덕 거리기는 새 레 곁눈질 하나 하는 법 없이 눈을 내리깔아 코끝만 보고 걸어가는 모습, 이 모든 특징이......

  "딸깍발이 이희승!"

  "네! 정답입니다.!"


  지난주 군대 첫 휴가를 다녀오고 내무반에 앉아 텔레비전 시청을 합니다. 일요일 아침 '장학퀴즈'의 국어영역 문제가 나오고, 아나운서가 위 지문을 중간쯤 읽어갑니다. 출연자들의 정답 부저가 울리기도 전에 제가 먼저 '딸깍발이 이희승'이라고 외치고, 이어서 정답이 공개됩니다. 소대장과 선임하사는 물론이고 함께 내무반에서 텔레비전 시청을 하던 부대원들이 깜짝 놀라 저를 쳐다봅니다. 그때부터 제대할 때까지 저는 '공부 잘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으로 대표되었습니다. ㅎㅎ


  이희승(李熙昇, 1896년 6월 9일 ~ 1989년 11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국어학자, 시인, 수필가이다. 자(字)는 성세(聖世), 호(號)는 일석(一石),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출처 : 위키백과

   

  군입대한 지 1년 6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와서 거칠한 '군대 모포'가 아닌 '사제 이불'을 덮고 누웠던 그 포근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 이 포근함~' 꿈같은 달콤함에 취해 봅니다. 1989년 11월 27일(월) 국어학자 이희승씨가 작고하셨다는 뉴스와 함께 그분의 수필 '딸깍발이'가 소개되면서 언어학자로서의 업적들이 휴가기간 동안 연일 소개가 되었습니다. '장학퀴즈'문제를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죠.


  '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가수'혜리''이 이 잉~' 한 마디에 국민 여동생으로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네 인생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 것도 이제는 식상할 정도입니다.


  기초공사가 시작이 되고, 골조공사가 진행되기 전에 제일 중요한 것은 건물의 배치입니다. 본 공사에 앞서해야 할 일은 건축선과 인접대지선으로부터 띄어야 하는 법정 거리, 도로와 건물의 기준 높이, 좌표와 기준점을 확인하고 주변현황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낮에 여러 가지 측정장비를 이용해서 할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어두울 때 레이저 측정장치로 한눈에 전체 현황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보통 일출 30분 전, 일몰 30분 후가 어두워서 좋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늦게 레이저 장비를 세팅하고 이리저리 현장을 살펴봅니다. 그때 "어휴~ 수고가 많으십니다. 늦은 시간까지 이렇게 수고를 하시네요"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건축주가 나타났습니다. 관리자가 늦은 시간에 이리저리 현장을 살펴보고 레이저 측정장비를 이용해서 검측도 하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건축주 입장에서 얼마나 흐뭇했을까요? 후일담으로 듣기에 그분 왈 "이 공사는 믿고 맡겨도 이상 없을 것 같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저는 공사를 마칠 때까지 '신뢰'라는 보증수표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런디피티(serendipity)'가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우연한 기회에 정답을 맞히고, 우연한 기회에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일종의 '준비된 우연'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잘난 척'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아니 오히려 선한 뜻이 곡해되어 공격을 받거나 오해를 받을 만한 여지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선한 뜻''성실한 마음'은 늘 지니고 살아야 할 '인생의 덕목(德目)'이 아닌가 싶습니다.


  브런치작가로 성실하게 하루하루 글쓰기를 이어가면서 가슴에 묻어 둔 따스한 이야기도 나누고, 자기만의 삶과 고뇌를 구슬 엮 듯 써 내려간다면 '또 누가 압니까? 어느 날 아침에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에 수상될지?' 건축엔지니어로 책임감을 갖고 매 프로젝트마다 열정과 성실로 임한다면 '또 누가 압니까? 어느 날 아침에 건물 한 채 그냥 가져가라는 재벌 건축주를 만나게 될지?' 또 누가 압니까? 두바이 '버즈 알 아랍 쥬메이라' 7성급 호텔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하고 있을지......

이 이 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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