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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ug 15. 2024

디우씨의 고민

소리 없는 침입자

  디우씨는 사실 유학파다. 대입 학력고사 준비할 때 한 달여 동안 같이 생활한 적이 있는데 당시 디우씨는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나보다 4살 아래 동생이다. 워낙에 말 수가 적어서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를 때도 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경시대회를 휩쓸었던 영재, 아니 천재였다. 가끔 무료하거나 심심할 때 혼잣말로 "아~ 심심해. 수학문제나 풀어야지!" 손에 집어든 책은 '해법수학'이다. 덜 덜 덜 덜


  근래 다시 본 디우씨는 예전과 사뭇 달라 보인다. 외모도 그렇거니와 말투나 행동이 좀 서구적인 느낌이 난다. 말이 없기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컴프레서 마냥 끊임없이 뭔가가 머릿속에 생산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 천년에 한번 내뱉을지 모르는 이상한 말을 지나가는 말투로 한 적이 있다. "히어로우는 영화적 상상이 아닐 수 있다고 봐......"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를 내 귀로 잡아낸 것은 나 역시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디우씨가 젊은 시절 유학을 다녀온 후로 더 이상해졌거나 차원이 다른 별종의 외계 유전자가 심겼거나 둘 중의 하나다.


  디우씨는 다른 면에서 무척이나 감성적이기도 하다. 가끔 눈물을 흘리고도 하고, 아침에 혼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저녁때면 작은 책을 하나 들고 주위가 어두컴컴할 때까지 돌아다니다 돌아와서는 피곤한 듯 몸을 침대에 던지기 일쑤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국정원 소속의 정부 요원이나 레옹처럼 어떤 지령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닐까 의심도 해 보지만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내 비현실적 상상이다. 소설가나 될까? ㅎㅎ




  내 이름은 '듀'다. 한국에선 보통 '두이'라 부른다. 메릴랜드 대학교 칼리지 파크(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에서  범죄학 및 형사사법학과(Criminology and Criminal Justice Department)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얼마 전까지 과학수사대 특수팀장으로 활동했지만 급작스런 공황장애로 잠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요양을 하고 있다.


  최근 수사팀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 하나를 보내왔다. 얼마나 다급하기에 몸이 아픈 사람에게 이런 전갈을 보내는지 조금 짜증이 난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내부가 털렸다. 범인은 어디로 들어온 걸까? 문은 이중삼중으로 시건장치가 되어있고, 모든 창은 시스템창호로 작은 틈도 실리콘으로 밀봉이 된 상태다. 특히 요즘은 삼중유리에 로이코팅까지 부착된 유리로 열관류율이 1.0W/㎡K 이하(중부지방 공동주택의 경우)로 맞춰져 있다. 지붕은 목조틀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주물 제작하 듯 찍어낸 상태로 구체 침투성 방수, 시트방수, 우레탄방수, 액체방수 할 것 없이 가능한 공법을 총 망라해서 시공되었기 때문에 빈틈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예전 집처럼 굴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물 샐 틈 하나 없는 내부로 어떻게 들어왔을까? 내부의 적인가? 물리적인 공격 가능성이 없다면 심리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디우(Dew)씨는 요즘 무엇에 정신이 나갔는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저녁 산책 후에도 가만있지 못하고 하늘과 땅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리저리 서성인다. 마치 이창호 9단이 마지막 한 수를 찾기 위해 머릿속 빅데이터를 돌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 균형, 곡선, 넘침이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 듯 되뇌는 소리가 들린다. "조건, 조건이다!!"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조금 격앙된 소리다. 디우씨는 급히 문자를 보낸다. '범인은….. 이슬점, 바로 노점(露點)'이다! 같은 온도에서 공기 중에 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이 온도가 내려가게 되면 같은 그 온도에서 품지 못하는 수증기가 응결되어 결로가 생성된다. 분명히 외부에서 들어올 수 없는 철옹성(鐵甕城) 같은 구조라 할지라도 내부의 적은 바로 이슬점에 있다는 이야기다.  



 

    ㅎㅎ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써 보았습니다. 집을 짓고 하자가 많이 생기는 것 중의 하나가 누수와 결로입니다. 누수는 외부로부터 물이 들어옴으로써 생기는 것이라면 결로는 습한 공기가 그 공기의 노점온도보다 낮은 온도의 고체에 닿아 물방울이 맺히게 되는 내부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콜드 브리지(Cold bridge)는 열저항이 낮아진 부위로 많은 열이 나가거나 들어오는 경로가 생겨서 결로가 생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식의 구조적 문제가 그 원인일 수 있겠으나, 실내환경조성 측면에서 따져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적절한 환기와 습도를 조절하고 베란다나 창고, 화장실 등 습기가 많은 곳은 공기가 정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내수증기가 과다하게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고 주택 전체를 고르게 난방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소리 없는 침입자 '결로'는 실내환경의 조건과 균형을 유지함으로 통제하고 관리될 수 있습니다. 노점이 생기는 조건을 없애는 것이 문제해결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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