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대비와 그의 아들들, 며느리 이야기
어릴 적에 엄마는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많이 남이 있지 않으니, 몇 가지만 추려 본다면, 어머니의 위와 같은 말 한마디에 혼자서 상당히 고민했던 일도 많았다.
그럼 나는 막 아니라고 떼를 쓰며 울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냥 내 행동을 보고 웃기만 하셨다. 물론 그런 말을 고지 듣지 않았고, 믿을 바에는 내 진짜 부모님은 돈 많고 권력 많은 누구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덧붙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엄마의 말과 태도는 언제든 부모님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만들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유기불안’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부모님에게 참 순종적인 남자아이로 자란 것 같다. 어쨌든 까딱 잘못하면 진짜 광천 쪽다리로 보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러한 엄마의 말은 당시에 아주 보편적인 유머였다고 한다. 엄마들은 실제 아이들을 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 그 다리가 광천의 쪽다리가 아닌 엄마의 두 다리 아래였을 뿐이다.
한편, 딸만 내리 둘 낳고 구박받던 엄마에게 찾아온 형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는 형의 옷을 물려 입으면서도 별 말을 못 했고, 흔치 않은 잔치집에도 엄마는 꼭 형을 데리고 다닌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런 기억 외에,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고 자랐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무엇보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본질적인 사랑을 충분히 누렸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적인 사랑은 그냥 수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해리 할로라는 심리학자는 '사랑의 본질'에 관한 실험을 했는데, 이 실험의 결과로 사랑은 입맛이 아닌 스킨십에서 나오는 것임을 입증했다.
해리 할로의 가짜 원숭이 실험은 애착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입증했다. 유아기의 원숭이들은 우유를 든 금속 재질의 가짜 어미보다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를 토대로 스킨십과 관련된 모든 과학이 탄생했다. 수많은 장면이 촬영된 그의 섬뜩한 실험은 우리의 인생에서 근접성(Proximity)의 힘이 얼만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p.121
나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어느 날 저녁에, 안방에 있던 화로에 손을 데이는 사고를 당했다. 농촌의 하루는 모두가 바쁜 가운데, 잠시 잠든 아기를, 화로가 있는 안방에 홀로 둔 게 화근이었다. 엄마는 그때를 생각하면 참 끔찍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연히 나에게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다만 그때 입은 화상의 흔적은 아주 선명하게 남았다.
나는 자라면서 손에 있는 화상의 흔적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랐다. 그런데 문득 위의 글을 읽고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상을 입은 순간부터 나는 온 가족의 집중적인 관심과 스킨십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화상이 치료되기까지 근 1년 가까이 엄마는 나를 안고 어르면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많이도 울었을 것이고 엄마도 같이 많이 울었을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한 수많은 애착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긍정 전도사라고 부른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도 일단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을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부정적인 질책의 말로 들릴 때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말이 나쁘게 들리지는 않는다. 타고난 낙천적인 태도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과 낙천적인 태도는 부모님의 양육방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성격의 원천은 간헐적으로 어머니가 제공한 유기불안과 충분한 스킨십 사이 어디인가에 놓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글에서 연산군의 큰아버지인 월산대군의 시조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월산대군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에 대해 말을 했었다. 아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어머니인 인수대비 아래 월산대군과 성종에게는 ‘마더 콤플렉스’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심리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마더 콤플렉스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하자.
'마더 콤플렉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이해해야 한다.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이후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야기에는 '오이디푸스'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신탁의 예언대로 이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눈을 찌르고 유랑의 길을 떠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 인물로부터 비롯된 용어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프로이트는 아주 갓난아이에게도 욕망(성욕)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리비도'라고도 불리는 개념이다. 프로이트는 갓난아기에게도 이러한 욕망과 삶의 의지가 있으며, 성장과정에서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을 5단계로 구분하였다.
특히 최초의 구순기에는 리비도가 입술에 있고 이를 충족해야 하며, 항문기에는 배설의 욕망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남근기는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만족감을 느끼는 동시에 거세불안의 공포와 질서에 복종하는 것을 배우는 시기라고 본다. 그리고 이 남근기에 바로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 사랑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시기심이 생기지만, 아기는 아버지에 비해 너무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서 좌절하고 아버지의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로 인한 좌절감은 훗날 어머니 같은 여인을 이상형으로 설정하고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아를 인식하고 더불어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배워가는 단계가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라깡은, 남근기와 더불어 '거울 단계'로 접어들면서, '상상계'를 벗어나 현실 세계인 '상징계'로 넘어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아이들은 아버지의 질서와 규범 안에서 바람직한 사회화를 경험하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건강한 애정관을 만들어간다고 본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비정상적인 콤플렉스가 형성되면서 여러 장애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마더콤플렉스'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먼저 자녀가 어머니와 지나치게 밀착하여 분리되는 경험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이다. 마더 콤플렉스는 이런 문제가 가장 일반화된 유형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갈등 상황에서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또는 사별을 한 상황에서 모자가 지나치게 밀착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매우 엄격하게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의 편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허용적인 경우도 있다.
매우 엄격한 상황의 경우에는 아들은 어머니에게 종속되어 지나친 효자가 되거나 마마보이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허용적인 경우 아들은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때로는 함부로 하는 양가감정의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들이 성장하여 육체적, 심리적으로 어머니로부터 분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 영화가 바로 대표적인 마더 콤플렉스의 문제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도 이런 문제로 고민을 전하는 며느리들이 의외로 많다. 오죽하면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라고 ..... !
영화는 외아들과 단둘이 살아온 어머니 '진숙'(윤소정)이, 아들 '동우'(박용우)의 결혼 소식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동우는 사랑하는 여자 '수진'(최지우)과 결혼을 결심하지만, 진숙은 이를 곧 자신을 버리는 행위로 받아들인다. 그녀에게 아들은 단순한 자식이 아니라, 정서적 의존의 대상이자 남편의 대체자였기 때문이다.
진숙은 겉으로는 며느리 수진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듯하지만, 점점 집착과 질투를 드러낸다. 며느리의 행동을 감시하고, 그녀를 통제하려 하며, 결국 정서적·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욕조에서 며느리를 물에 빠뜨리고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는 그녀의 일그러진 애착과 승리의 환상을 드러내며, 아들과의 관계를 연인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심리적 왜곡을 보여준다. 결국 수진은 이 집을 떠나고, 진숙은 절망 끝에 아들마저 죽게 만들고 며느리도 죽이려다가 실패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진은 동우와 진숙의 유골을 함께 뿌리며, 두 사람의 병적인 애착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다.
『올가미』는 단지 한 편의 스릴러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고부 갈등이라는 전통적 갈등 구도를 넘어, 한국 사회의 가족문화, 특히 외동아들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왜곡된 정서 구조를 드러낸다. 현실에서도 ‘지나친 효자’, ‘엄마에게 못 벗어나는 남편’ 등의 문제로 고통받는 가정은 적지 않다. 며느리를 연인처럼 질투하는 시어머니, 어머니의 말만 따르는 남편 등은 더 이상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단순한 인격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고착에서 비롯된 관계 패턴일 수 있다.
한편 『올가미』외에 외국영화로는 『블러드 라인, HUSH』가 있다. 『올가미』가 개봉된 지 1년 만에 1998년에 개봉되었는데, 『올가미』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다음에는 인수대비와 아들들의 사이에 나타나는 '마더 콤플렉스'를 진짜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