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 젓가락

국어의 어원 1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질문에 답하다.

by 양심냉장고

'마더 콤플렉스' 관련 영화를 찾다가, 어떤 알고리즘인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된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래서 '인수대비'의 마더 콤플렉스를 말하기 전에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질문 하나를 간단히 정리하고 가기로 했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영화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은 영화였다. 환생으로 처리되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제인 동성애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후 배우의 비극적인 삶때문에도 다시 영화의 내용이 회자되고는 했다. 그리고 앞 내용에 비해서는 하찮은 논쟁이었지만, 여주인공이 질문해서 유명해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의 받침이 왜 다르냐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병헌)의 답은 비록 틀리긴 했지만, 매우 그럴듯한 창의적인 답변이기는 하다. 궁금하면 아래 영화 장면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곳도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다른 것도 알아볼 겸 해서 한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우리말의 어원이나 표기법에 대해서도 신기한 것들이 있으면 몇 개 더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먼저 다음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식당에서 옆 사람에게 '수저'를 달라고 하면, 숟가락과 젓가락을 다 집어 줄까? 아니면 숟가락만 집어 줄까? 이제는 대개 90% 가까이 숟가락만 집어줄 것이다. 그만큼 '수저'는 이제 '숟가락'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어휘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저'는 원래 '술저', 또는 '숟저'로, '술(숟)'과 '저'의 합성어였다. 따라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ㄹ(ㄷ)'이 탈락하여 '수저'라고 부르는 것이다. 'ㄹ'이나 'ㄷ'이 탈락하는 사례는 국어에서 흔한 일이니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불삽'이 '부삽'이 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럼 '숟(술)'은 뭐고 '저'는 또 무엇인가?

먼저, '저(箸)'는 원래 한자어이다. 순우리말로 보는 견해도 일부 있지만, 학교문법에서는 굳이 논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 논외로 한다. 따라서 '저(箸)'는 음식물을 잡는 데 쓰는'가락'이다.


그럼 '숟(술)'은 무엇인가? ' 어원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음식물을 떠먹는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말은 고어에서는 '숟'보다는 '술'로 더 많이 쓰였다. 그래서 '밥 한 술 줍쇼'와 같은 말이 있다. 또한 아래와 같은 사설시조에서는 '수박에 술 꽂아 놓고 한숨 겨워하노라'라는 내용도 있다.

수박에 술.png


따라서 '숟'보다는 '술'이 먼저였을 가능성이 더 많다. 이와 관련해서는 '밥이 술술 들어간다'는 표현도 있다. 한편 '술이 술술 들어간다'는 표현은 일종의 '언어유희'였을 것이다.


그런데, '술(숟가락)'과 '술(酒)은 표기가 같아 혼동이 될 가능성이 생기니, '술가락'을 '숟가락'으로 발음하는 게 더 편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젓가락'과 실제적인 발음을 유사하게 하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또 국어에서는 'ㄷ'과 'ㄹ'은 수시로 교체되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틀날-이튿날' 이나 '설달-섣달' 등이 그런 예이다. 그래서 점차 '술가락'보다는 '숟가락'으로 표기된 것이다.


자 그럼 답을 할 준비가 거의 끝났다.

아, 하지만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한다. 바로 현대국어의 '사잇소리 표기법'이다. 아래의 내용은 외울 것까지는 없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활용하면 된다. 요즘 학교의 문법은 암기보다는 주어진 자료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블로그 '투유'


위 맞춤법에 따라, 우리말은 '나뭇잎', '등굣길', '장맛비'와 같이 표기한다. 그래도 좀 이상한 것은 '장맛비'와 같은 표현은 좀 어색하기는 하다. 꼭 '장맛이 나는 비'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장맛비[장마삐]'가 표준어이니 주의해서 쓰고 발음하라고 한다. 때마침 요즘 절기는 '장마철'이다.


참고로, 위 규정에 따라, '장맛철'로 쓰면 잘못된 표기이다. 다만 국어 사용은 좀 실수해도 죽지 않는다. 사실 살다보면 맨날 틀리면서 산다. 하지만 폭우로 인한 피해는 진짜 조심해야 한다.


이제 '숟가락'과 '젓가락'의 표기가 왜 다른지 정리해 보자. 원래 '술(숟)가락'은 그냥 두 어근이 결합한 합성어이니 '사이시옷'이 쓰일 일이 없다.


하지만, '젓가락'은 '저+가락'으로, 두 단어가 합해져서 된 말이며, [저까락]으로 원래는 없었던 된소리가 나니 사이시옷을 넣은 것이다. 그래서 '저+(ㅅ)+가락 = 젓가락'이 된 것이다.


요즘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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