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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물들다 11화

여기서

물들다

by 양심냉장고

여기서, 그들이 만들어 만든 틀 안에서

그가 설계한 '넛지'라는 그물 안에서

지금은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어제는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가장 편해 보이는 매장에 들어가서

그들이 하라는 대로 옷을 입어 보고, 그들의 친절에 어떤 거절도 해보지 못하고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 할 말을 잊은 채로

그들이 책정한 터무니 없는 가격에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다.


돌아와서 나는 우울해졌다. 생각만 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한 나의 착함이 불편했다.

그러다가 곧 생각했다. 착한 것이 아니라 순진하거나 멍청한 것이었다고 ...


매정하게 뒤돌아 나올 수 있어야 했는데, 그 순간은 무슨 최면이 걸린 것처럼, 당연한 것이 당연한 권리로 느껴지지 않았고, 나도 이 정도는 누리고 살 수준은 된다고 거만해졌고, 내 가족들과 저들 앞에서 쪽팔리게 사는 것을 들키면 안된다고, 허영을 부리고, 만용을 부리고 쓸 떼 없는 자존심을 부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인지부조화'로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아!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자들의 피리소리에 따라 적당히, 나보다 조금 잘 난 누군가를 아주 많이 부러워하고, 나보다 조금 못 난 누군가는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여기서 도토리 키재기나 하면서, 저들이 생각하는 대로, 저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아주 모범적으로 ..


아주 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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