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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물들다 13화

읽고, 쓴다

by 양심냉장고

시골에서 사는 일이 지루하기만 한 건 아니지만,

뙤약볕 내리는 논밭에 나가 농삿일을 하는 날이면,

신작로 달리는 차를 따라서, 길끝에 가 닿는 도회지를 상상했다.

긴 방학이 지루하다고 빨리 끝나길 바라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건넌방에는 작은 누나가 가져다 놓은

'세계문학선집'과 '고전문학선집' 꽃혀있었다.

시골집에 뜬금 없이 문학전집이라니,

어린 촌놈이 책을 잡은 건 기적이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특별히 할 것 없는 밤이면,

임진록, 조웅전, 박씨전, 별주부전이나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마지막 잎새 같은 소설을 읽었다.

그건 누가 읽어도 재미있는 세상이었다.

신작로를 따라 도회지로 가는 꿈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나는 그런 책들 속에서 전혀 다른 탈출을 꿈꾸었던 것이다.

억지가 아닌 스스로 찾은 길에서는 더 넓은 세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그래도 '문학전집' 같은 기적이 자주 있는 건 아니었다.

산다는 건, 그리 만만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적이 없는 날이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기형도 시인은 그래서 '사랑을 잃고 쓴다'고 했을 것이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었고 마음은 가라앉았다.

생각지도 않게 좋은 글도 있었다.

글은 마음을 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살다 보면, 실수도 해서 다행인 적이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대로 되는 게 다 성공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외롭고, 지루하고, 힘들어도 괜찮다는 뻔한 말은 아니다.

나는 나의 삶이 작은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마냥 그럴 수 없는 날이기에 나는 다시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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