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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25. 2021

라이트 형제가 태어나기 천 년 전에 그가 있었다.

미국 교육의 영향으로 우리에게 홀대받고 잊혀버린 아랍의 천재 발명가

이슬람 왕국의 우마야드 왕조와 아바스 왕조가 교차하던 시대에 오늘날 스페인 지역인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났다.

그에 대해서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죽은 지 7세기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알제리의 역사학자 아메드 무하마드 알 마카리(Ahmed Mohammed al-Maqqari)의 저술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전해진 이 기록은 인류의 비행과 낙하의 역사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가 가졌던 다양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실험들 중의 하나는 바로 그가 날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목적을 위해 깃털을 몸에 붙여 감싸고, 날개를 붙이고, 두각을 나타내면서 공중으로 몸을 내던졌는데, 그 실험을 직접 보았던 믿을 만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마치 새가 된 것처럼 상당한 거리를 날았으나, 바로 다시 날아올랐던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등이 너무 아팠다. 새들이 땅으로 내려올 때 꼬리를 사용하는데, 그는 새처럼 꼬리를 활용하는 것을 만들어 붙인다는 것을 몰랐고 그래서 깜빡했던 것이다."  

우리가 비행기를 발명한 위인으로 기억하는 라이트 형제가 태어나기도 천 년 전에, 하늘을 최초로 날았던 아랍의 발명가를 대표하는 인물, 압바스 이븐 피르나스(Abbas ibn Firnas, 아랍어: عباس بن فرناس‎)의 이야기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그가 활약했던 나라는 현재 스페인 지역이지만, 당시는 이슬람 제국이었기에 그는 명백한 아랍권 인물이다.

서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었다면, 아랍에는 피르나스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다방면에 천재적인 발명과 연구로 성과를 일궈낸 인물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정확한 설계를 통해 행글라이더를 만들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오백 년 전에 그는 이미 행글라이더를 설계하고 직접 비행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발명은 물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라센(Saracen) 음악을 유럽에 보급시킨 것도 그의 공로였으며 여러 가지의 보석(寶石)을 만들어 자기 집에 일종의 프라네타리움을 만들고 별ㆍ구름ㆍ전광(電光) 등을 표시하는 천문학자로서의 뛰어난 모습도 보여주었다고 전한다.


피르나스는 무색 유리 제조 수단을 고안하고, 다양한 유리 평면을 발명하였으며, 현재의 안경과 현미경의  핵심기술로 설명되는 수정렌즈(판독석)를 만들고, 행성과 별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것들을 고안했으며, 스페인이 이집트에 석영 수출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암정을 자르는 공정까지 개발하였다.

이미 9세기에 최초의 비행에 성공하였고, 무엇보다 인류의 과학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렌즈를 발명한 그에게 대해서 우리는 왜 이토록 무지하였을까?


이슬람에 대한 서구권 특히 미국의 교육제도와 문화적 영향은 그들의 선진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미국의 혜택을 받고 보호를 받는 우리 문화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슬람 문화에 무지하고, 아랍권에 대한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별로 좋게 보지 않게 되었다.

내가 공부를 하고 나서 개인적 성향에 따라 호오를 정해 취사선택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다른 세계의 영향 때문에 제대로 된 지식을 얻지 못하고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고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에서 오늘 피르나스를 특별히 소개하게 되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 있는 광장의 피르나스의 동상

이라크에 가 본 사람들은 위 동상이 공항 인근에 있는 것에 깜짝 놀라곤 한다.

스페인 영토 쪽이라고는 하지만 이슬람 제국이었고, 그는 아랍을 대표하는 천재 발명가였고, 그들의 자랑이라고 그들은 공항 인근에 그의 이름을 따서 광장을 만들고 그의 동상을 세웠다.


수십 년도 아니고 수백 년도 아니고 천년이다.

라이트 형제가 태어나기 천년 전에 그는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실험에 돌입했다.

서양인들이 그렇게 천재라고 노래를 부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행글라이더를 만들기 오백 년 전에 그는 이미 이슬람 왕국에서 설계를 마치고 시험비행까지 했다.


물론 그가 발명했다고 하는 렌즈가 지금의 렌즈가 아니고, 그저 글자를 크게 판독할 수 있는 돌의 형태였고, 비행이라고는 하지만, 나뭇가지와 천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 탑 위에서 뛰어내렸는 것이 다였고, 그나마 그대로 떨어져 엉덩이를 다쳤다고는 하지만 명백히 최초의 비행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는 그렇게 비행 실험에서 떨어지면서 다친 척추뼈의 부상으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발명과 실험은 실패한 것인가?


누가 가장 먼저 무언가를 발명했는가에 대한 것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특히나 그것을 발명한 이들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지금의 변호사들이 그토록 돈이 된다며 특허 관련 변리사 자격증을 함께 따고 그 시장에 달겨드는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한 사실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거시적인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누가 먼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발상 자체를 떠올리, 그 발상이 인류의 발전과 진화에 맞물려 업그레이드되면서 더 나은 물건이 나오고 더 훌륭한 물건으로 개선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누군가 그 생각을 하고 기획을 하고 설계를 하면 그 다음은 더 나은 무언가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문명권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현대에 와서는 나라가 다르다고 해서 경쟁적으로 배척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과학이 극도의 발전 속도를 내보였던 시대는 다름 아닌,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피르나스가 한창 활약하던 시기는 9세기였다.

지금처럼 국가는 고사하고 지구 저 끝의 나라나 문명 간의 교류와 무역이 왕성하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상상을 현실화하였고 그가 구상했던 대개의 과학기술들은 현대 과학기술의 토대가 되는 것들이었다.

그가 어리석게도 새를 따라 퍼포먼스를 하다가 그냥 모스크에서 점프를 하여 척추뼈가 다쳐 죽은 정신 나간 연금술사 정도로 기억되도록 하는 것은 그의 노력과 업적에 모욕적일 수밖에 없다.

그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도 않고 뛰었을 리 없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실험에 다른 실험 지원자를 쓸 수도 있는 신분이었음에도 직접 실험체를 지원하여 활약했다.

과연 지금의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저건 보나 마나 경쟁률이 심해서 내가 명함도 못 내밀 텐데...

그걸 한 번에 해낸다면 그게 인간인가? 난 절대 못하지.

내가 천재냐? 그걸 내가 어떻게 하냐?


당신은 부끄럼없이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당신이 지금 실패하고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이유는 바로, 당신이 내뱉었던 위의 말들때문이고, 그런 생각으로 이제까지 인생을 살아오며 도전합네라고 떠들어댔었다면

당신의 실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당신은 지금 좌절이 아니라 접시물에 코를 박고 있어야 옳다.


해보기도 전에 당신이 지레 안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해볼 필요도 없다.

당신의 정신상태나 의지가 그 정도밖에 안된다면

오히려 그 상태에서 뭔가를 도모한다는 것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피르나스가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했을까?

그가 과연 실험이 잘못되면 죽을 것을 모르고 예배당 꼭대기에서 뛰어내렸을까?

내가 단언컨대,

그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청했을 것이다.


발명가나 과학자들이 실험체의 대상을 자신으로 삼는 경우는, 그 데이터를 자신이 가장 먼저 접하고 분석하기 위함이고,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이 가장 그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당신이 과학자나 발명가가 아니니 예외이지 않냐고?

정신 나간 소리 그만 좀 해라.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이 당신의 것이 아니라고

당신이 적당히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으로 당신의 삶을 제삼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남의 것이 아니기에 결코 관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뛰어들어 피가 끓어오르고

열기가 과해 얼음물을 끼얹어도 후끈한 증기가 피어오르도록 치열하게 살아도, 늘 부족하다고 후회하게 되는 것이 '내 인생'이란 말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을 사는 법이다.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치열하게

내 모든 것을 내던질 정도로

당신을 담금질한 기억이 있는가?

그런 경험조차 없다면,

아니, 그럴 용기조차 없다면,

같잖게 소주병을 기울이며 실패를 했다는 둥

좌절에서 어떻게 헤어 나오냐는 둥

헛소리를 하기 전에 


그 썩어빠진 정신상태부터

멀쩡한 새 것으로 갈아 끼우고 다시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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