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6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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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화와 51화에 걸쳐 한국인들의 질투심에 대해 분석하면서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과 상관이 없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지나친 오지랖을 펼치면서까지 스토킹 수준으로 관심을 보이는지에 대해 살짝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번 글에서 한국인의 질투심을 분석하면서 가지고 왔던 개념이었던,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와는 별개로, 기본적으로 왜 한국인들이 남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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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자기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그 집에 새 살림이 뭐가 들어오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호기심을 넘어 조금은 기괴할 정도로 관심을 갖는 특성을 보입니다. 뭘 입고 다니고 어떤 차를 가지고 다니며 어떤 집에 사는지 등등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외국인들이 보기엔 그야말로 오지랖을 넘어서 스토킹 수준이라고 신기해할 만한 부분이 분명하긴 합니다.
요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유행이 된 용어 중에서 ‘혼밥’, ‘혼술’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요. 이른바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술을 먹는 새로운 젊은이들의 문화를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이 개념에 대해서 외국인들, 심지어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에게 설명해 주게 되면 왜 한국에서 그렇게까지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한 일이었고, 혼자서 술을 먹는 것이 어색한 일이었는지를 도리어 신기해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은 ‘나’라는 혼자의 개념보다는 ‘우리’라는 집단의 개념이 문화적인 DNA에 이미 녹아들어 간 민족이고, 그 개념은 주거의 개념은 물론, 식생활문화의 전반에까지 깊숙이 박혀 언어에까지 자연스럽게 표출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즉, 같이 생활하고 서로 내외하는 것이 없었던 ‘우리’의 개념이 자연스러웠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 설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샀으며 어떻게 하고 지내는지에 대해서 모두 알아야 한다는 것은 등식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굳이 서양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가족끼리도 서로 지켜야 할 프라이버시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고, 서로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지대하기 그지없는 것일까요?
어제와 다른 표정으로 우울하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왜 그런지를 반드시 물어보고 알아야 하고, 갑자기 새 옷을 입고 나타난 직장 동료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새 옷을 사 입고 나타났는지를 다각도(?)로 물어 알아내고서 마침내 본인에게 직접 확인사살을 하는 최종확인질문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인의 민족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잠시 등장하기도 했지만, 한국인의 도드라진 특성 중에 하나는 기묘한 집단주의입니다. 단순한 본래 개념의 집단주의가 아닌 한국만의 한국인만의 집단주의적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기묘한’이라는 형용사를 부러 넣은 것인데요.
한국인은 남들보다 튀면 안 되고 대중의 속에서 적당히 묻혀 있어야 한다는 심리와 어찌 되었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나아야 한다는 심리, 특히 그것이 나의 심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심각한 병리적 증상에 가까운 형태로 양가치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절반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도 어느 지역의 어느 브랜드 아파트를 사는지 그리고 그 아파트의 몇 평형의 단지에 사는지를 통해 사람을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차를 끌고 다니는지 그리고 아이는 어떤 학교에 보내는지 등등으로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층차를 판단 지으려는 성향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그 사람의 통장에 돈이 많고 상가나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수입으로 빈부를 판단하는 국세청의 방식이 아닌 당장 눈에 드러나는 허장성세를 포함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명품사랑은 다세대 빌라의 옥탑방에 사는 허세녀라고 하더라도 밖에 나와 명품을 휘감고 활보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SNS에 잠깐 구경하러 올라간 5성급 호텔의 라운지 화장실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산다는 착시효과를 사실로 혼동시키는데 일조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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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특정할 수 있는 개념인 ‘눈치’를 설명하면서 부연했던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타인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고 신경 쓰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끊임없이 주변의 사람들과 비교합니다. 그래서 집단주의가 원래 가지고 있는 성향을 남김없이 발현하여 타인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려는 기묘한 행태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곤 합니다. 그런 경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들 그렇지 않아?’ 혹은 ‘나만 그런 거 아냐’, ‘원래 다 그래.’ 등등으로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거나 자신이 평균 일반인들의 대표인 양 익명성에 숨어 힘을 휘두르려 듭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어느 한 가지가 특정한 이유나 근거가 없이 대유행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묻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서울 강남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며 모든 아이들의 최애 간식으로 등장했던 탕후루 열풍이 그러했고, 이미 중국에서는 라면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음식인 마라탕 열풍이 그러했습니다. 그저 단순한 유행이 아닌, 그것을 먹어보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진 사람이 아닌, 비정상인 사람으로 취급하는 말투들은 이미 젊은, 아니 어린 친구들에게도 한국인의 DNA를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자신과의 무조건적인 비교는 열등의식과 불안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 중론입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면서 불안해하거나 다른 길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죠.
그렇다면 한국인은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의 촉을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요? 물론 심리학적인 일반론의 기준이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열등의식이 강하고 자존감이 낮은 민족이라는 설명은 논리적 모순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앞서 설명했던 한국인이 가지는 기묘한 집단주의나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회적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호구조사에 해당하는 지연(地緣)을 확인하는 ‘그 사람, 어디 출신이야?’에서 위아래 서열을 정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커리어를 맞춰보기 위한 기본적인 호구조사를 위한 ‘몇 살 이래?’, 그리고 학력 수준과 학연을 확인하기 위한 ‘어느 대학 나왔대?’에 이르는 아주 기본적인(?) 프로필 조사에서부터, 생활수준을 확인하기 위한 ‘집이 어디래?’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데?’까지는 너무도 당연한(?) 조사항목(?)에 해당하고, ‘그 집 애는 어느 대학 보냈대?’등등 세부적인 조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부분들은 단순한 대상에 대한 조사를 포함하여 나와 비교해서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위이고 무엇이 아래인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에 맞춰 상대를 평가함과 동시에 자신의 스텐스를 설정하는 것이죠. 그와 가깝게 지낼지 내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은 뭐가 있는지 등등을 확인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래야 자신의 심리가 편안해지는 묘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러한 한국인의 독특함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는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할까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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