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십결(囲碁十訣)>에서 인생의 나침반을 꺼내 들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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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취대(捨小就大)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해야 한다.
다섯 번째 가르침은 굳이 바둑의 위기십결(囲碁十訣)이 아니어도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흔히 언급되는 말입니다. 바로 앞의 네 번째 가르침에서 살펴보았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굳이 범주를 따지자면, 앞서 기자쟁선(棄子爭先)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내용이 선수(先手)를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부분에서 좀 더 세밀하게 집중된 내용으로 작은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이번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작은 것을 버리는 행위와 큰 것을 취하는 행위 중에서 작은 것을 버리는 행위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해석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크던 작던 결코 버리지 않고 모두 살리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하수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핵심인 ‘버린다’는 아주 어려운 결정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자 함이 이 다섯 번째 가르침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를 뭐 하러 그렇게 반복하느냐고 구시렁거리를 분도 계시겠네요. 하지만, 실상은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정작 살면서 그 당연하고 뻔한 가르침의 손톱만큼도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가 정말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이제 막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떼고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선물을 하나 줍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라 할 맛있는 콘 아이스크림을 줍니다. 아이는 온몸으로 행복을 표현하며 그 달콤함을 맛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다시 정말로 큼직하게 생긴 도넛을 다시 하나 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아이스크림이 떨어질까 조심스러워하며 다른 한 손에 도넛을 받아 듭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정말로 맛있는 선물을 두 개나 받아 행복에 겨워 온몸으로 춤을 출 정도로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에게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를 주면 아이의 행복은 더 배가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도넛을 들고 있는데 이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를 들 손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이제 울상이 된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고 다시 케이크를 들려고 시도하다가 도넛을 떨어뜨릴까 균형을 잃고는 케이크를 땅바닥에 엎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아이의 행복은 일순간 저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말죠.
성인이 된 당신은 아이와 크게 다르다고 자부하시나요? 사랑하는 연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과 공부를 열심히 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동시에 누릴 수 없는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주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회사의 일을 처리하느라 야근에 주말까지 출근해야 하는 경우를 모두 만족시키면서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밸런스라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밸런스는 여러 가지에 대한 균형을 이루는 것일 뿐 오늘의 가르침인 사소취대(捨小就大)의 의미와는 조금은 다릅니다. 다시 말해, 오늘의 가르침은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적당히 취하라’가 아니라 ‘버린다’는 행위에 핵심을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모든 것을 다 취하고 내 돌은 모두 살리겠다는 하수의 어리석음은 당장의 눈앞에 상황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한 번에 한 수밖에 둘 수 없으며 그것도 상대방과 순서대로 두는 바둑의 경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당장의 파견 군사는 단 한 개의 돌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돌이 가장 중요하고 크고 급한 곳에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수들은 그 전제를 잊어버리고 당장 상대가 둔 곳에 눈이 머뭅니다. 전체의 판세가 어떠한지 내가 지금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를 매 순간 읽어내기는커녕 당장 상대가 노리는 내 돌을 모두 살려야 하고 상대가 두어 보강한 그 돌을 모두 잡겠다며 아무런 전략도 없이 달려듭니다.
버린다는 것은 결국 비운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이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버려야만 합니다. 내가 갖고 싶은 더 좋은 물건을 두기 위해서는 기존의 물건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비워져 둘 곳이 있어야만 합니다. 바둑판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우주를 압축해 놓은 것과 같다고들 합니다. 바둑판은 좁고 한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세계는 공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욕심이 그득한 인간의 마음은 좁디좁아 모든 것을 한정 없이 들여다 놓을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들여놓고 싶다면 기존의 것들을 버려 공간을 비울 수밖에 없다는 물리학의 기본원칙을 철학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이해하고 체득해야만 합니다. 꽉 움켜쥔 사람은 움켜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바둑에서 눈앞의 작은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 대세를 노리는 인내와도 직결됩니다. 매번 발끈하며 승부를 걸겠다는 마음은 바둑을 일찌감치 망쳐버리기 일쑤입니다. 자신의 힘이 부족하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당장의 몇 개 돌이 상대의 수중에 들어가더라도 참고 더 큰 그림의 승리를 취할 수 있을 때까지 참아야만 합니다. 단순히 해당 국면의 승부에 집중하게 되면 전체적인 판을 읽는 판단이 흐려지므로 냉정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소취대(捨小就大)는 영어로 ‘Don't trade a dollar for a penny.’라고 번역합니다. 상대가 고수이면 고수일수록 내가 어떠한 희생도 치르지 않고서 바둑을 대승으로 이끌 수는 없다는 진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합니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는 수준의 상대를 굴복시키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내가 상대의 뼈를 취하려고 하는데 내 살점 하나 잃지 않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부심부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주식으로 백만장자가 된 그 분야의 대가들이 그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이익을 늘리는 기술보다 자신이 손해 볼 때 과감하게 손절하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한없이 하락하고 있는 주식을 보면서 ‘언젠가 저 바닥까지 가더라도 올라오겠지.’라는 식의 멍청함이 주식으로 패가망신한 이들의 전철을 밟게 만듭니다.
바둑을 포함하여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들과 똑같이 놀고 일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서, 노력을 경주하여 대가의 경지에 오른 이를 부러워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다섯 번째 가르침의 숨은 속뜻은, 다시 큰 것과 작은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형세판단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아이스크림과 도넛, 그리고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많은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우리의 인생에는 매번 도래합니다.
그 흔한 쇼핑을 하더라도 똑같은 물건이 어디에서 더 싸게 파는지, 그리고 그 물건을 얼마까지 흥정해서 살지 등등 수많은 판단의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원래 그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이 그저 싸게 판다고 하니까 자신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덜컥 사버리는 경우는 작은 이익은 고사하고, 전략을 고사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는 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밖에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둑은 오히려 단순한 것 같아 보입니다. 더 큰 집, 더 큰 대마를 위해 결정하면 되는데 그 결정이 무엇이 어렵냐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둑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바둑이 왜 인생의 축소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목적은 더 큰 집과 더 큰 대마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결정짓는 요소들이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가 거듭될수록 관계가 없던 지역 간의 연계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아무 의미가 없었던 폐석이 어느 순간 요석으로 변신해 버리는 순간들을 목도하게 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둑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그 오묘함에 대해 진중하게 연구하게 될수록 우연히, 아무런 생각 없이 두었던 돌이 운 좋게 나를 위해 작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돌을 처음 놓으면서 그 바둑의 최종판국의 형태가 어떻게 될지까지는 예상할 수 없을지라도 내가 놓는 돌의 하나하나가 의미를 두고 전략의 일환으로 두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 돌이 다시 기적적인 의미로 히어로의 역할을 하며 재해석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버리는 가장 큰 목적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하나의 돌이 그렇게 소중함에도 돌을 버릴 때는 단 한 가지 목적, 그것보다 더 많은 돌의 가치를 가진 곳에 가일수를 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루하루를 그저 일상이라며 살아가는 사람과 하루, 한 달, 1년, 3년, 10년의 계획이 모두 짜인 사람에게는 무엇이 버려야 할 것이며 무엇을 취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어나가는 기간 동안 참고 무엇을 감내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세상살이가 뭐 그렇게 달라질 것이 있느냐며 똑같이 먹고, 똑같이 같은 패턴으로 삶을 반복하기만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삶이 무기력하며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둑을 두면서 그냥 바둑을 두기로 했으니까, 혹은 내가 이겨야 하는 게임이니까,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과 이제까지의 바둑에서 배웠던 교훈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어떤 그림의 바둑을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계획하고 전략을 짜보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최대한 집중하여 그 의도를 읽어내고 상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까지 먼저 읽어내는 이가 승리하고 결국 자신의 바둑을 한 단계 높은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됩니다.
늘 하던 일이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그렇다면 뭐 하러 그렇게 아등바등 살겠다며 생을 연명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이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서 조금은 더 현명해질 수 있으시겠나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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