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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 번째 가르침, 공피고아(攻彼顧我)

<위기십결(囲碁十訣)>에서 인생의 나침반을 꺼내 들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50

공피고아(攻彼顧我) : 상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살펴보라.


이기기 위한 아집에 사로잡힌 승부를 하지 말라는 첫 번째 가르침에서 승부하는 상대방의 경계를 어디까지 삭감하고 공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법인 두 번째 가르침을 걸쳐 이제 세 번째 가르침에서는 구체적인 공략법(?)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위기십결(囲碁十訣)’의 열 가지 가르침은 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그렇기에 반드시 수양을 통해 절차탁마(切磋琢磨)가 되어야 할 마음가짐을 일러주는 내용들입니다. 세부적인 공략법이나 세세한 테크닉에 대한 부분이 없다고 공허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세세한 테크닉에 대한 부분들은 방법론적인 도구에 해당할 뿐이고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대한 흐름을 제대로 새겨놓지 않고 무작정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공허한 잡기(雜技)로 빠져버릴지 모를 일입니다.


바둑의 가르침이 인생의 가르침에 맞닿아 있다고 설명하면서 위기십결(囲碁十訣)을 첫 나침반으로 삼은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이 세 번째 가르침은, 구체적인 바둑의 격언 중 하나인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내가 살고난 연후에 상대를 잡으러 가라.)’의 기본적인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바둑의 기초이기에 매번 강조하지만, 바둑은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가에 대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내 군사(바둑돌)들이 그 영토를 둘러싸고 있어 그 안에 적군이 두 집을 내고 살 수 없도록 해야 온전히 내 영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투의 과정에서는 결국 내가 죽지 않고 두 집을 내거나 모든 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상대가 두 집을 내지 못하도록 포위하게 되면 상대를 몰살하고 그 영토를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해놓고 보면, 바둑의 하수들이 처음 바둑을 시작하면서 보이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능, 다시 말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상대방의 돌을 잡으려 드는 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할 것입니다. 격투기나 각개전투를 진행하면서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상대방에게 최선의 공격을 취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바둑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인전이 아닙니다. 바둑은 용병술이 필요한 사령관의 싸움입니다. 수많은 군사(바둑돌)들을 한정된 영토 내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는가 하는 부분을 다투는 게임이죠. 앞서 잠시 언급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기에 바둑은 내 돌을 모두 살리고 상대방의 돌을 모두 압살 하는 경우는 실력차이가 많이 나는 고수와 하수의 바둑이 아닌 다음에야 좀처럼 발생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 내 군사가 한 명이 추가되면 다음 순서에는 상대방의 군사가 한 명씩 추가되는 순서를 지키기에 어느 한쪽에는 내 군사가 모여 있을 수도 있고, 어느 한쪽에서는 덜렁 한 명이 나가서 불리한 싸움이 되거나 한 명도 없어서 상대방에게 영토를 고스란히 내줄 수도 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최선의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바둑에 있어서 아주 맞는 말도 아주 틀린 말도 아닌, 상황에 따라 변용될 수 있는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과도 같죠. 수천수만의 변화 속에서, 어느 상황에서는 내가 두 집을 내기 전이지만 먼저 칼을 뽑아 공격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겠으나 그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내가 살 수 있을지 말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을 먼저 죽이겠다고 맹렬하게 달려들기만 해서는 어느 순간 무리수가 발생하여 상대를 공격하던 내 군사(바둑돌)들이 모두 전사해 버리는 황망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둑은 수순의 미학을 제일로 삼는 게임입니다. 여기서 수순이란 매우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의 처리에 가장 효율적인 흐름을 뜻하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가장 먼저 군사를 보내야 할 우선순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 순서에 단 한 번의 바둑돌밖에 둘 수 없어, 한 명의 군사만을 보내야 할 때 영역을 더 확장하기 위한 결정을 내릴지, 상대방의 숨통을 끊어갈 수 있는 공격의 칼을 들지, 그도 아니라면 내가 지금 위태로운 지역에 군사를 한 명이라도 더 해서 안전을 도모할지에 대한 결정의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합니다.


명확하게 설명하자면, 공피고아(攻彼顧我)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를 포함하지만 더 큰 개념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는 내가 먼저 사는 것을 돌보는 것만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피고아(攻彼顧我)’의 핵심은 상대방을 공격한다는 의미보다는 ‘고아(顧我; 나부터 돌아보라)’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돌아본다는 의미는 단순히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나의 진영 전체를 읽고 있는지를 다시금 묻는 질문에 다름 아닙니다. 이는 상대방의 땅이 무조건 넓어 보인다고 깊숙이 들어가 상대방의 영토를 모두 뭉개겠다는 어리석은 마음을 경계했던 두 번째 가르침과 아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나를 돌아본다는 의미는 앞서 공부했던 형세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앞의 두 글자인 ‘공피(攻彼;상대방을 공격하라.)’의 의미는 역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만이 바둑의 가장 우선순위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는 가르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둑을 이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투를 통해 상대의 대마를 잡는 것, 내 영토를 최대한 넓게 확보하는 것, 내 실수를 최소화하면서 상대의 실수를 유발해 그 틈을 반격하여 반전을 이루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이 세 번째 가르침, ‘공피고아(攻彼顧我)’에서는 그 우선순위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바둑을 두는 이가 무엇을 가장 먼저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일깨워줍니다. 바로 자신의 약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묻습니다. 이것은 내 돌의 약한 부분만을 파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돌이 강한 부분과 상대방의 상태까지 그 전체적인 형세판단이 가장 우선되어야만 공격을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는, 매서운 꾸짖음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을 영어로 ‘Make a fist before striking.’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처음 바둑을 배우고 전체적인 판을 읽고 자신의 형세분석을 하기도 전에 ‘닥공(닥치고 공격)’하려는 인간의 그릇된 공격본능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약한 곳만을 살피는 것을 넘어 내가 강한 곳도 파악하라는 것은 이미 강하기 때문에 방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둑은 처음에는 영토가 넓어 서로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은 부분이어도 분명히 손을 빼고 다른 지역에 치중하고 있었는데 돌이 더 많이 바둑판에 올라가면서 교묘하게 다른 영역과의 연계가 이루어지는 부분을 생각할 때가 옵니다. 고수일수록 그 연계의 고리를 돌이 놓이기 전부터 읽어내고 활용하는 반면, 하수일수록 저 멀리 떨어진 지역과의 연계가 아직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착각하다가 판을 그르치기 일쑤입니다.


이것은 바둑의 고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빼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손을 뺀다.’는 의미는 지금 국지적으로 그 부분에 돌을 가일수하지 않고 다른 곳을 우선순위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수순의 예술을 극치로 삼는 바둑에서는 상대방의 노림수나 싸움에 응전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의도대로 두지 않고 내 흐름으로 더 급한 곳을 두어 상대방에 따라오지 않을 수 없게 선수를 잡는 것을 으뜸으로 칩니다.


다시 말해, 상대가 내 돌을 잡겠다고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응하지 않고 더 크고 더 급한 곳을 선택하여 돌을 두게 되면 상대방은 자신이 지금 싸움을 거는 곳보다 훨씬 더 크고 급한 자리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인즉은, 선수(先手; 먼저 두는 것)를 빼앗겼다는 것이고 한 발 늦게 상대방에게 대응하는 꼴밖에 되지 않기에 바둑에서 선수(先手)를 잡는 것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중요하다는 경중을 누가 정할까요? 전체 판을 읽고서 내가 계획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그 경중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 수만 손을 빼고 다른 곳을 두었다가 그간 놓았던 돌이 모두 죽는다면 섣불리 손을 빼고 다른 곳에 돌을 두는 것은 베짱이나 객기가 아닐 것입니다. 두 사람이 승부를 겨룸에 있어, 어느 곳이 더 급하고 어느 곳이 더 가치가 큰 곳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두 사람의 결정입니다.


인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선택의 기로에 서서 작든크든 선택을 해야 하고 문제들은 언제나 작든크든 일어나 삶을 힘겹게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하여 처리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처리하며 어떤 것들이 서로 연계가 되어 있는지를 충분히 분석을 통해 냉철하게 판단하지 않고서 그때그때 치이는 대로 처리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이 아닌 누군가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인생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수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싸움을 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상대방을 모두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수들은 항상 싸우기 전에 자신의 돌부터 돌아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돌이 약하면 싸우기 전에 힘을 비축하고 이길 수 있을 때까지 결코 싸우지 않고 준비를 합니다.

바둑도 인생도 타이밍(결국, 수순)이 중요합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때가 아님에도 욕심을 부려봐야 망신만 당할 뿐입니다. 때를 기다릴 경우에는 깊은 물속에 몸을 잠그고 숨은 용처럼 고요해야 하며, 준비가 되어 칼을 뽑아야 할 때에는 호랑이처럼 빠르고 용맹해야만 합니다.


파도를 피할 수 없다면 물고기처럼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도 따라야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참아야 할 곳에서 감정적으로 할 말 다하겠다고 나서서는 결코 일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과감하게 응징해야 할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버린다면 자존감은 물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때와 준비상황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상대가 아닙니다. 바로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생각만 그렇게 갖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라면 그 어느 위인들도 수많은 실패를 통해 완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인과 범인의 가장 큰 차이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그 실수를 통해 더 발전해 나가는가 하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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