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우선시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by 발검무적
貢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공이 초하루를 알리는 의식에 쓰는 양을 없애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그 예를 아낀다."


'告朔(곡삭)'이란, '연말에 천자가 내년의 책력을 제후들에게 나누어주면 제후들이 이를 받아 선조의 종묘에 보관해두었다가 매월 초하루에 양을 희생으로 삼아 종묘에 고하던 의식'을 말한다. 노(魯) 나라는 문공(文公) 때부터 초하루를 알리는 의식은 폐지하였으나 양을 바치는 일은 계속했다. 이에 자공은 초하루를 알리는 의식 자체를 거행하지 않을 바에야 굳이 양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언뜻 보면 틀린 행동 같아 보이지 않는다.

자공은 그 행사 자체가 없어져 실상이 없이, 양을 부질없이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그런데 공자는 자공의 그 생각이 짧다며 한숨을 쉬며 따끔하게 지적한다.


주자는 그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가 비록 폐지되었더라도 양이라도 남아 있으면 오히려 기억할 수 있어서 복구될 수 있거니와 만약 그 양마저 함께 없애버린다면 이 예가 마침내 없어질 것이니, 공자께서 이 때문에 아깝게 여기신 것이다."


앞에서 몇 번 보았던 한 마디의 말로 제자를 지적함과 동시에 당대의 문제점에 대해서 후려치는 공자만의 독특한 화법이 다시 화려하게 구사되고 있다.

자공의 초상(관상학적으로도 재벌의 상임이 또렷하다)

곡삭의 전통이 노나라에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을 꼬집으면서, 문제를 단면적으로만 이해해서 양의 희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제자의 짧은 생각에 대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라고 일러주는 스승의 너무도 부드러우면서도 따끔한 일갈.


양을 희생으로 삼는 것을 없앨 것이 아니라, 곡식의 전통을 제대로 살려, 왜 그것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본래의 의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내린 것이다.

차라리 일갈을 직접적으로 들었으면 시원하기라도 했을 것을, 이렇게 완곡하게 비꼬면서 말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자공은 본래 상인 출신으로 이재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상당한 재산을 모은 자산가 제자였다.

그러니 '아까워하다'라는 이 단어 한마디의 지적이 얼마나 적확하고 뼈아프게 들렸을까?

우리는 간혹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생각 없이 단편적으로 그것이 맞다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나 많다.

모든 일을 단편적으로 보면, 하나하나 합리적으로 결정한다고 하지만, 결국 합리적이라는 것은 한 사안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경우일 때가 많다.

돈을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맞지만, 내 아이가 정말로 필요한 물건을 사주지 않는다는 일관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오히려 그것은 아이의 교육상으로도 그렇고 정서상으로도 결핍을 우려할 위험성이 크다.


기업가가 당장 무언가에 큰돈을 들여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아끼는 것으로만 일관한다면 그는 절대 사업을 확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회가 왔을 때, 미래를 보고 지금은 조금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투자를 하지 않고 미래를 얻는 사업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사안에 대해 궁극적인 목적과 문제의 본질을 다각적으로 살피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만 하나의 현상에 적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을 읽어야 한다는 문제가 얽히기 시작하면 더더욱 복잡해진다.


이어령 선생의 따님이 쓴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언제나 청탁받은 원고를 작성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 어린 딸이 서재에 접근하는 것을 금기시하며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던 아버지가, 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피아노를 무심한 듯 지나치는 듯했지만 직접 신경 써서 주문해주던 날에 대해 묘사한 것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물론 당시 피아노라는 물건이 가볍게 살만한 싸구려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어령 선생이 그것을 구매하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글쓰기에 몰입하여 아이들과 놀아주는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로 금세 돌아오지도 않았고 그런 분도 아니었지만, 선생의 따님은 그 피아노가 실린 트럭이 집의 골목으로 들어오는 길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적었다.

그녀가 당시 느꼈을 그 뿌듯한 행복감은 그녀가 그 나이, 바로 그날이 아니면 가질 수 없었던 행복을 오롯이 그녀의 기억 안에 담아다 주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어령 선생도 그것을 알았기에 무심한 듯 자신의 글쓰기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딸이 바라던 그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만약 나중에 그보다 더 훌륭한 그랜드 피아노를 사줬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하고 '나중에 정말로 연습을 해서 잘 치게 되면 사주는 것을 생각해보기로 하자.'라는 식으로 했더라면 그녀는 자신의 가장 행복했을 그날을 추억으로 간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소 감성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이것은 공자가 이 장에서 말한 예의 본질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런 의미 없이 형식만 남아 있는 예에 대해서는 공자도 긍정하지 않는다.

행사가 있다면 그 행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참석하는 이들이 공감하는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옳다.


마을에서 함께 사는 이들과 친목을 다지자는 행사에, 참석하는 국회의원을 소개하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국회의원이 적당히 인사를 치르고 나가면 사람들이 우르르 그와 인사를 하겠다고 빠져나가는 행사 따위는 이미 본래 그 행사가 가져야 할 의미도 없어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주객이 전도되어 변질되어 버렸을 뿐이다.


당신이 정치를 하든, 행정을 집행하는 이가 되든,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든, 그 무엇을 하든 간에 당신에게는 그것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당신이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왜 당신이 그 일을 선택한 것인지, 당신이 왜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제대로 답변할 수 없다면 당신은 길을 잃은 것이다.

차라리 그것을 잘 모르는 정도면 다행이라 하겠다.


정 반대 혹은 엉뚱한 방향으로 목적을 호도하고 혹세무민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가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생겼다면 당신은 길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길을 아예 잘못 들어선 것이다.


그것을 깨닫기도 어렵지만,

깨닫고서 다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잘못된 길을 바로잡아 가지 않으면

당신은 미아가 되어버리고 만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모두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본래 내가 생각했던 길인지

아주 가끔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다각도로 판단하지 않고서 섣불리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순간, 당신은 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공자는 정작 당신이 무엇을 아까워해야 하는지 다시 묻는다.


당신이 이제까지 잘못 걸어온 길이 아깝다고,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 가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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