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만 해도 훌륭하다고 우러러보는 세상이 되면 안 된다

그렇다고 기본조차도 못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by 발검무적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 예를 다함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하는구나!"

황 씨(黃氏)가 이 장에 대한 설명을 명쾌하게 하고 있으니 먼저 그 해설을 들어보자.

"공자께서 임금을 섬기는 예에 더한 바가 있었던 것이 아니요, 이와 같이 한 뒤에야 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능히 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첨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를 말씀하여 도리의 당연함을 밝히신 것이다."


정자(程子)가 공자의 에둘러 모두 까기 화법에 대한 해설을 조금 덧붙인다.


"성인께서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함을 당시 사람들이 아첨한다고 말하였으니, 만일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면 반드시 '내가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함을 소인들이 아첨한다고 하는구나'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말씀은 (소인이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고), 이와 같음에 그치셨으니, 성인의 도가 크고 덕이 넓음을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다."


공자의 화법에 직설은 없다. 그 행간의 뜻을 이해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더 강한 후려치기만이 있을 뿐이나, 그것을 알아듣는 수준이라면 얼굴이 벌겋게 변해 어쩔 줄 몰라할 정도의 꽁무니를 내뺄 지경인 것이다.

아첨꾼(toady)은 두꺼비(toad)에서 유래한다.

이 장에서 나온 공자의 한 마디가 향하는 칼날은, 당시 노나라의 참람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던 대부 세 가문을 향해 있다. 그들이 군주에게 도저히 행해서는 안될 무례함을 보이는 것에 불만이던 공자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제대로 된 예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랬더니 이 후안무치한 무리들은 공자에게 아첨한다는 비아냥과 야유를 보낸다.

그것에 대해 그들을 탓하지 않고 뒤에서 후려치는 완곡어법을 구사하는 공자의 수준은 과연 성인이라 할 만하다.

내로남불.

참 해괴한 사자성어가 요즘 한국에서는 심심치 않게 사용된다.

내가 혹은 우리 진영의 사람들이 하는 잘못된 언행은 어떻든 괜찮은 거고,

똑같은 언행을 했더라도 다른 진영이나 남이 했을 때는 천하에 몹쓸 짓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이 장에서 벌어진 상황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가 봤을 때, 세 대부 가문은 그나마 아첨조차도 하지 않고 참람되이 구는 지경이었다.

공자의 켜켜이 쌓여있는 양파 같은 에둘러치기의 속을 하나 더 까 보자면,

세 대부는 정말로 제대로 예를 갖춰 천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공자는 비판하고 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여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니 보고 듣고 배우라고 보여준 것이다.

그 깊은 뜻을 그들이 알고서 저 난리를 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긴 하지만, 공자에게나 나에게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그들이 모두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까.

최근 10여 년 아주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당혹스러운 일을 반복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있다.

구체적인 사안은 저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케이스라고 지칭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대방의 태도가 같은 선생에게 배운 아이들처럼 똑같이 구는 데 있다.

심지어 그들의 워딩 자체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건 저희들이 할 일이 아니니 다른 쪽에 알아보시지요."

"저 말고 제 윗분이나 상사를 찾으셔도 연결해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최종 책임자니까요."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저희들도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뭐 이런 워딩들이다.

한창 어린 20대나 30대 초반이 그럴 경우에도 난감하지만, 대개 중간책임자나 한창 일을 리드해야 할 30, 40대의 젊은 친구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경우에는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대개 그들은 나와 같은 케이스를 처음 보거나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혼나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많다.

처음 뭔가 삐끗하고 잘못 시동이 걸리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아차 한다.

'!,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가?'


10여 년이 넘도록(물론 그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수없이 많은 데자뷔가 그들에게는 머리 털나고 처음 겪는 참 교육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는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부탁을 한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이러지 맙시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뿐이잖아요."


이 말의 행간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야. 네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시정하겠다는 겸허한 태도를 보인다면 나는 너그러운 아량으로 너의 사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하지만 99% 그들은 이 행간을 읽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의 무언의 메시지는 구체화된 언어로 튀어나온다.

"해볼 수 있는 거 있으면 해 보세요. 저희 조직의 장을 잘 아세요? 아, 네. 그러시구나. 해보세요."

결국 다음날 그들의 장이 있는 사무실에서 불려 나온 그의 혹은 그녀의 몰골은 추례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이런 메시지가 쓰여 있다.

'정말 아는 사이셨으면 힌트나 사인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어요!'

늘 마지막에 내가 나즈막히 그들에게 묻는다.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알려줬잖아요. 이렇게 되면 불편해질 거니까 이러지 말자고 부탁했잖아요."

이른바 참교육이라는 것을 받고 혼쭐이 난 놀부가 이후에 새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참교육 한 번 받았다고 개과천선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을 리가 없다.


그런데 아까 99%라고 했던 것은, 1%이긴 하지만 정말로 행간을 읽은 사람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잘못을 고치겠다고 진심을 다해 말하는 이가 있었다.

10년에 한 명꼴이긴 하지만 정말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나는 그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겸연쩍어하며 당연한 것이라고 답하는 그에게 내가 웃으면서 이런 말을 보탠다.


당신의 언행이 특별하다거나 대단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닌데, 워낙 대다수의 이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 당신의 용기있는 사과가

당신의 언행이 특별해보이고 당신이 도드라져보일 수밖에 없다고.

그런 현실이 참 서글프다고.

이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 누군가에 대해 비난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비난하는 행동에 있어

당신의 기준이 두 개이지는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도리에 맞춰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칭찬받는

이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너무도 당연한,

법이나 규정이 아닌

그저 당연히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상식에 의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면 이제 우리 사회는 굉장히 특별해질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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