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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16. 2021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성공에 찬사를 보낼 의향은 없다

패자가 되는 과정도 중요하고, 된 이후의 행동은 더욱더 중요하다.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의 기국이 작구나!"
어떤 사람이 "관중은 검소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씨는 삼귀를 두었으며, 가신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어야 병풍으로 문을 가릴 수 있는데 관씨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어야 두 임금이 우호로 만날 때에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를 둘 수 있는데 관씨도 술잔을 되돌려 놓은 자리를 두었으니, 관씨가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  
관중의 초상화

  管仲(관중)은, 제(齊)나라 대부로, 이름은 이오(夷吾), 중(仲)은 그의 자이다. 공자보다 약 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으로 환공(桓公)을 도와 내정을 개혁하고 국력을 증강시킴으로써 패업을 완성시켜주었기 때문에 공자는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별로 대단치 않게 여겼다.


  주자는, 이 장에서 공자가 관중을 '기국이 작다'고 평가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기국이 작다는 것은 성현이 펼친 대학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국량이 좁고 얕으며 규모가 낮고 협소하여 능히 몸을 바루고 덕을 닦아 군주를 왕도에 이르게 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공자의 원뜻에 좀더 날을 갈아 서슬이 퍼렇게 만든 느낌의 해설이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검소한가에 대해 물은 것은, 기국이 작다는 것이 검소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물은 것이다. 역시 공자의 대답은 가차없다.

  그런데, 대답중에 '管氏有三歸'라는 구절은 여기서는 '삼귀를 두었다.'라고 해석하였는데, 해석의 취지는 결코 검소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사례인데, 그 해석에 여러가지 설이 있어 참고삼아 비교하면 도움이 될 듯 하여, 적어본다.

  ① 집을 세 군데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② 세 나라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설.

  ③ 집안의 제사 때 세 가지의 희생을 썼다는 설.

  ④ 삼귀(三歸)라는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⑤ 삼귀대(三歸臺)라는 누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⑥ 삼귀라는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⑦ 조세를 많이 거두어들였다는 설.

여기서는 주자의 해설에 따라, 다섯번째 설을 취했다.

 

 다른 사례로, '가신의 일을 겸직시키게 하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통상 경대부의 신분이라면 가신이 관속을 다 갖출 수 없어 한 사람이 늘 몇 가지 일을 겸하기 마련인데도 관중은 그렇게 하지 않을 정도로 가신을 여럿 두고 썼으니 결코 검소하지 않다는 반례를 들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친구인 포숙아와 함께 언급된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묘사한 그림

그러자 이번에는 '검소하지 않은 것이 예를 아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인가?'를 의심하여 묻는다. 이전에 다루었던 것처럼 예를 갖추기 위해 다소 검소하지 못함을 감수한 것이 아니냐는 일반인들이 할만한 의문을 가정한 것인데, 이것에 대한 대답역시 가차없다.

  경대부로서 참람되이 하지 말아야 할 제후만이 할 수 있는 예를 했다면서 예를 알지도 못한 자였다고 엄중하게 비난한다.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강조를 위한 표현이기 떄문이다.

  

  이 장에 대해 주자는, 공자가 왜 관중에 대하여 기국이 작다고 하였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조금 길게,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덧붙여 해설하고 있다.

  정자(程子)는 이 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치하고 예를 범하였으니, 그 기국이 작음을 알 만하다. 기국이 컸다면 스스로 예를 알아 이러한 잘못이 없었을 것이다."


  소씨(蘇氏)는 이 장의 의미를 파악함에 있어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집어내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중은 삼귀와 반점을 두었고, 환공은 안으로 여섯 명의 여인을 사랑하면서 천하에 패자가 되었으니, 그 근본이 진실로 이미 얕았다. (그리하여) 관중이 죽고 환공이 죽자, 천하는 다시 제나라를 종주로 삼지 않은 것이다."


  패자가 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나, 그들이 패자가 된 이후 보인 근본을 잃은 행위들이 결국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세대가 바뀌기가 무섭게 이어지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는 점을 역설한다.

  양씨(楊氏)는 또 이렇게 이 장의 의미를 해설한다.

  "夫子께서 관중의 공로를 크게 여기시면서도 그 기국을 작게 여기셨으니, 이는 왕자를 보좌할 만한 재질이 아니면 비록 제후를 규합하여 천하를 바로 잡았더라도 그 기국은 칭송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도학이 밝지 못하여 왕도와 패도의 개념을 섞어 한 길로 삼았다 이 때문에 관중의 기국이 작다는 말을 들으면 검소한 것인가 하고 의심하였꼬, 검소하지 않았음을 말씀해 주면 또 그가 예를 알았는가 하고 의심하였으니, 이는 세상이 바야흐로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함을 공으로 여겨 법대로 할 줄을 알지 못해서이니, 그 기국이 작음을 깨닫지 못함이 당연하다."


  양씨의 마지막 이 말은 의미심장하면서도 왜 공자가 관중에 대한 인간됨을 인정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일부 시사해주고 있다.

  기국이 작다고 평가한 이유로,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함을 공으로 여겼다.'라는 구체적인 언급이 나온 것이다. 이는 앞의 설명과 맞물려 관중이 환공을 패자로 만들어 올렸으나 그것이 결코 옳은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에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위에 말한, 그들이 보인 행동들이 결코 성현의 도학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재확인함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얼핏 보면, 참 까탈스럽기도 그지없다고 혀를 내두를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하다.

패자가 되는 과정도 중요하거니와 패자가 된 이후의 행동은 더더욱 중요하다니, '그 모든 까탈스러운 공자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자가 과연 있기는 하단 말인가?' 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만하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그것을 부정하고 나설 도리가 없다.

중국의 역사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역사는 묘하게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그것으로부터 반면교사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자백가들이 존경에 마지않았던 관중을 대놓고 저격하는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과정이 공정하다고 인정받을만하지 못한 것은 이후에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 그렇게 결과가 좋아 스스로 공이라고 인정하고 자기들끼리 만족하는 행위가 부적절함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패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보인 행위가 뭇 사람들이 성현의 도학으로 존경을 받을만한 모범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결코 한 세대도 더 이어지지 못하고 역사의 참혹한 비난을 피할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요즘 한국 정치판에서는 저마다 역사인식이니 친일파니 하는 진영의 싸움이 한창이다.

하긴 '요즘'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논쟁이다.

수십년, 혹은 수백년이 지났다하더라도 만일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 적절한 지적과 반성을 통한 재정립 과정은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두말한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진영의 논리로 활용되어, 본질적인 것에 대해 토론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닌, 그저 잡스러운 트집잡기나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한 촉매제정도로 사용된다면 그렇게 대중을 호도하고 혹세무민하는 것들의 조악한 셈법을 애저녁에 박살내어 버릴 필요가 있다.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시키는 사회는 결코 건전하다고 할 수 없다.

결과만 좋으면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 성과주의가 만연한 탓에 벌어지는 수많은 불공정과 부정부패는 그것을 저지른 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방관한 자들에게도 똑같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뭘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잘못을 하고서 혼날 때,

"쟤도 그랬는데 왜 나만 혼내요?" 라던가 "쟤가 그래서 저도 그랬어요."식의 변명을 보이면 제대로 된 어른은 어떻게 그 아이를 훈육하는가?


아이가 아니라 다 큰 어른, 그것도 명문대를 나와 사회지도층 혹은 전문직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런 행태를 버젓이 보이고 그것이 문제되어 처벌을 받을 때 억울하다고 항변하면 당신은 그들에게 뭐라 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사실은,

당신이 그들의 라인에 서서 콩고물이라도 받아먹겠다고 발버둥을 쳤었거나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적당히 눈감아주며 '세상이 다 원래 그런거지'라고 했던 존재라면 당신들은 이미 비판의 혀를 놀릴 자격조차 상실한 공범이고 방조범인 것이다.

 

까탈스럽긴 하였으나 자신이 말하고 가르친 것과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기에 공자는 성현으로 추앙받는다.

성현이 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그 성현이 수천년 뒤를 살고 있는 당신이 보이는 그 안일한 사고방식에,

이 장을 통해 정신차리라고, 정신개조차원의 아이스버킷을하는 것이니

번쩍 당신의 양심이 정신을 차리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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