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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17. 2021

그 음악만 듣고서도 세상을 읽고, 그 사람을 읽는 법

조화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를 제시하는 형태, 음악.

子語魯大師樂, 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공자가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음악은 알 만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적엔 (五音을) 합하여, 풀어놓을 때에는 조화를 이루고 분명하며, 연속되어서 한 장을 끝마쳐야 한다."

앞뒤 맥락도 없이 갑자기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팔일편의 23,24,25장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공자의 말씀을 풀어내고 있다.

예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왜 갑자기 음악에 대한 부분이 팔일편에 속해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정치상황과 관련하여 음악에 대한 부분은 <논어> 미자 편의 9장에 나오는데 '악관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라고 언급한 부분과 연계하여 살펴보면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본래, 공자가 종주(본보기)로 삼고 있는 주나라에선 백성을 교화하는데 있어 엄숙한 의례(儀禮) 만큼이나 조화로운 음률로 이뤄진 음악을 중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중대한 국가행사뿐 아니라 왕이나 제후의 일상에서도 음악 연주가 빠지지 않았다. 음악에는 춤이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엄격한 종법제에 입각해 연주곡의 길이와 악단과 무용단의 숫자도 다 달라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팔일편이 처음 예와 관련된 팔일춤의 규정으로 언급을 시작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의례가 질서를 상징한다면, 음악은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고문에서는 이를 하나로 묶어 '예악(禮樂)'이라 칭한 것이다.


대사 또는 태사라는 직책은 궁중 악대의 총책임자를 부르는 말이다. 요즘 말로 마에스트로(총지휘자)에 해당한다고 보면 무방하다. 왕과 제후는 식사를 할 때도 음악 연주를 하도록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반, 삼반, 사반은 제후가 식사를 할 때 풍악을 담당하는 악장인데, 주나라는 왕의 경우 하루 네 끼, 제후는 세끼를 먹었다고 한다. 따라서 노나라 제후는 하루 세 차례 식사를 할 때마다 각기 다른 연주를 들으며 식사를 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연주를 담당하는 악장도 달랐다. 예컨대, 아반은 조찬, 삼반은 점심, 사반은 저녁 담당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노나라의 소공은 노나라 정치를 전횡하던 삼환을 제거하기 위한 역(逆)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북쪽으로 이웃한 강대국 제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이로 인해 노나라에선 7년간 제후가 공석인 상태에서 계평자를 중심으로 삼환이 노나라를 대리 통치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은 결국 노소공이 망명지에서 병사하자 삼환이 노소공의 동생인 노정공을 제후로 옹립하면서 삼환의 승리로 귀결된다.


 이러한 내전 아닌 내전 상황에서 노나라 최고의 악공 8명이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들이 주군으로 모시던 노소공이 장기 부재중인데 그렇다고 차마 주군을 몰아낸 계손, 숙손, 맹손 씨 휘하 악단에 의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각자도생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를 중시하는 악공의 자존심 상 자신들의 등급을 스스로 떨어뜨릴 수 없다는 강한 자부심이 작용한 터였다.


주지했던 바와 같이, 노나라는 주나라 예약의 창시자인 주공의 봉지였다. 그래서 주공이 설계한 예악의 원형을 보존해왔다는 자부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런데 그 예약의 핵심 인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 노나라의 정체성이 통째로 무너져버리는 전조였다는 것에 다름 아닌 상황인 것이다. 노소공의 실정과 삼환의 횡포로 주공이 창안하고 설계한 성인지도(聖人之道)가 산산이 부서져버린 상황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내용인 셈이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서 다시 이 장으로 돌아와 보자.

음악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악관에게 도리어 공자가 음악이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

이 장에 대해 사 씨(謝氏)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五音과 六律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음악이라 말할 수 없다. 翕如는 그 합함을 말한다. 오음이 합하면 淸濁과 高下가 마치 五味가 서로 도운 뒤에 조화되는 것과 같기 때문에 純如라고 말한 것이다. 합하여 조화를 이루면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고자 하므로 噭如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宮은 宮만 하고, 商은 商만 할 뿐이겠는가. 서로 반대되지 않고 서로 연결됨이 마치 구슬을 꿴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연속하여 음악을 끝낸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조화로움'에 방점을 두고 설명한 것임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이 있다. 공자는 음악의 전문가였기에 태사에게 음악의 본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 근거로, ‘사양자에게서 거문고를 배우다’라는 뜻의 ‘학금사양(學琴師襄)’이라는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앞서 <논어> 미자 편의 9장에 나오는 뿔뿔이 흩어졌다는 8명의 악공 중 ‘격경 양(襄)’이라고 지칭되는 사양자(師襄子)에게 공자가 거문고를 배우게 되는 일화가 <공자 가어>에 전한다.

본래 사양자(師襄子)는 옥으로 타악기 경쇠 연주자이지만, 거문고 연주에도 일가를 이룬 악공이었다. 사양자가 공자에게 거문고 곡을 하나 가르친 뒤 연주 실력이 출중하니 다른 곡으로 진도를 나가도 될 것이라며 종용한다. 하지만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미 그 곡조는 익혔으나 연주하는 수법은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나 사양자가 공자에게 말했다.

“이 거문고를 연주하는 수법을 터득하셨으니 다른 곡을 배워도 되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저는 그 수법은 터득했다고는 하나 아직 그 뜻하는 바를 곡조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가 지나자 사양자가 공자에게 말했다.

“이제 노래가 말하려고 하는 뜻을 거문고로 표현할 수 있으시니 다른 곡을 배워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다시 이렇게 답한다.

“그렇지만 아직 그 곡을 만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 공자는 조용한 가운데 깊이 생각하고 또 즐거움 속에서 원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사양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이제야 곡을 만든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피부는 검고, 키는 크며, 눈을 빛나 멀리까지 볼 수 있는데, 마치 사방의 제후국을 다스리는 것 같았으니 이는 문왕이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

그러자 사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자를 향해 절을 올리며 말했다.

“선생은 성인이심이 분명하십니다. 원래 나의 스승께서도 이것은 문왕 조(文王操; 주 문왕의 곡조)라는 곡이라 말씀하셨었습니다.”

본래 음악이란, 그 곡조 안에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곡조 하나만으로도 지나간 일들의 이루어 짐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곡조를 만들 때 아무런 생각과 감성 없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다. 때문에 이 장의 의도를 설명한 사 씨가 '연속하여 음악을 끝낸다'는 표현을 쓴 것도, '음악이란 그 일의 이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 공자의 의도를 읽어낸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장의 내용은 음악을 말하고 있으나, 독자들이 짐작한 바와 같이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자기 자리를 빼앗으려 하지 않고, 한때는 들어갔다가 다시 빠졌다가 하면서 궁극적인 조화로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음악임을 강조하는 것은, 음악으로 포장하는 '예'라는 것이 그러하고, 그 '예'라는 엄격한 규율이 생긴 이유가 되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가 모두 그러하다.

오케스트라로 비유되는 이 상황은, 사회를 구성해가는 원리와 지극히 흡사하다.

어느 한 악기 파트가 자신이 도드라져 보이겠다고 튀는 순간, 음악의 조화로움을 깨져버린다. 그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률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협주가 갖춰야 할 기본이 깨져버리는 순간, 그것은 소음으로 인식될 뿐이다. 세상을 놀라게 할 천재적인 독주를 하는 이도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되어 협주를 하는 순간, 독주를 하는 방식으로 연주를 하는 순간, 음악의 기본도 갖추지 못하고 하모니를 깨버리는 무식한 이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 기본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음악을 온전히 연주하는 데 있어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알면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하수들의 방법이다. 공자가 보여준 고수의 방법은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함으로써 그 음악을 만든 이에게 도달하는 것이고 그가 노래하고자 했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수적이다.

그 음악을 이해하고 그 음악이 전하려는 바를 이해하고 연주하게 된 음악은 그저 급급히 악보를 따라 기술적인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허둥대는 수준과는 당연히 다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과서로 삼는 모범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선대의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선정하는 것부터가 중요하겠지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본받을 것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그것을 선정하는 데 있어 자신과 자신들이 속한 무리의 이익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순리는 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모범이 되는 것의 본질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협주조차 다 망쳐버리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처럼 말이다.

백성들이, 민중들이 바라고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정치하는 이들이 할 일이다.

그들이 그렇게 일하지 않은지는 이미 너무 오래되어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비뚤어져 잘못 흘러가는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먼저 할 것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자들을 걷어내고 다시는 위정자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것은 당신들만 정신 똑바로 차리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당신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자각을 얼른 하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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