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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18. 2021

몇 마디만 나눠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자신의 내공을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儀封人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 曰: "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의(儀) 땅의 봉인이 뵙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군자가 이곳에 이르면 내 일찍이 만나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했다. 종자(공자의 수행자)가 뵙게 해주자, (그가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공자께서) 벼슬을 잃을 것이라 걱정하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夫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주윤발이 공자를 연기했던 영화, <공자>

儀는 위나라의 읍이다. 封人은 국경을 관장하는 관원이다. 여기까지는 표면적인 설명이다.

<논어>에서 나오는 인물들 중에 이름이 나오지 않거나 특정할 수 없는 이들은 대개 은둔 고수를 의미한다.

국경을 관장하는 관원은 높은 벼슬자리라고 할 수 없는 자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군자가 이 지역에 왔을 때 내가 만나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라고 정중하면서도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은 여느 낮은 벼슬아치의 태도라고는 볼 수 없다. 그 당당함은, 자신이 평소에 현자들에게 만남을 요청하였을 때, 거절당한 적이 없음을 말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정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은, 사자를 통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므로 확인된다.

그렇게 숱하게 여러 현자들을 만났다고 말했던 은둔 고수는 공자를 드디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이 장의 핵심이 아니다. 공자를 만나고 나온 후, 그가 공자에 대해 내린 평가에 방점이 있다.

딱 세 문장으로 그는, 어째서 자신이 세간의 그 어느 현자보다 위에 있다고 여길만한 자부심을 갖춘 자인지를 증명한다.

첫 번째 문장, '그대들은 공자께서 벼슬을 잃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공자가 그의 명성과 학문 수양의 정도에 비해 제대로 된 중용을 받지 못하였다는 평가에 대해 한마디로 평가한 것이다. 지금 자리는 물론이고, 앞으로 높은 벼슬을 얻지 못했다고 근심할 이유가 없다는 평가이다.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필요가 없다. 다음 문장으로 이 평가의 근거가 제시된다.


두 번째 문장, '천하의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다.'


이 문장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다. 당시 시대가 공자를 담을만한 위정자가 정치를 하는 제대로 된 정국이 아님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첫 번째 의미이며, 뒷 문장으로 이어질, 왜 공자가 높은 벼슬자리에 중용되지 못하고 천하를 주유하는지에 대한 대의명분을 명확하게 설명하며 강조하기 위한 전제를 까는 것이 두 번째 의미이다.


세 번째 문장,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갑자기 목탁이라니? 의아하다. 목탁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자는 목탁을 '정교를 베풀 때에 흔들어 여러 사람을 경계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문장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면 마땅히 다스려지는 것이니, 반드시 장차 부자로 하여금 지위를 얻어 교화를 베풀게 하여 오랫동안 벼슬을 잃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곧 공자가 벼슬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을 의미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도, '혹자(어떤 사람)'의 말이라고 인용하며 이렇게 행간의 의미를 다시 풀이한다.

"목탁은 길에 순행하는 것이니, 하늘이 부자로 하여금 벼슬을 잃고 사방을 널리 돌아다니면서 그 가르침을 행하게 하여, 마치 목탁이 길에 순행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은둔 고수, '혹자'의 의견에 방점을 찍는다. 이 해석이, 은둔 고수 봉인의 세 번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를 제대로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세상을 살면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참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업무상으로도 그렇지만 예기치 않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남은 물론이고 전화통화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다양한 직업군과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노소를 알게 모르게 만나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저 스쳐 지나는 만남이 아닌, 토론이나 서로 다른 의견때문에 민원이나 항의를 하게 되는 경우, 우리는 전화를 통해 먼저 상담원 역할을 하는 이와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매일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만 응대 업무를 하는 이들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몇 마디의 대화만 나눠보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을 축적한 직업군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 그들과 통화를 해보면, 그들에게는 이미 그것이 그저 반복되고 지겨운 업무의 하나일 뿐 축적된 자신의 노하우로 몇 마디만 나눠보더라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파악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능력 따위를 갖춘 이들은 없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수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되었든, 강력한 항의성 민원이 되었든, 로스쿨에서 진행하는 토론이 되었든 상대방에게 내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설득시켜 내 의사를 관철하는 것은 전문가만의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핸드폰고 싶은 아이가 아빠에게 그저 핸드폰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것과 자신이 어떤 일에 대한 성과의 보상으로 지금 어떤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아빠가 핸드폰을 사줬으면 좋겠다고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는 것은 매우 분명하고도 큰 차이가 있다.


이 장에서 은둔 고수인 봉인은, 단 한번 잠시 공자를 만나고 나와 그 그릇의 깊이를 단번에 이해하고는 감탄한다.

공자의 대단함을 강조한다고 느꼈을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오히려 은둔 고수 봉인의 깊이를 눈여겨보았다.


검도 시합을 하게 되면, 죽도를 잠시나마 살짝 스치는 경우가 생긴다. 그때 고수는 느낀다, 상대가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갖춘 사람인지를.

유도시합을 하게 되면, 옷깃을 잡아채이는 순간, 상대가 내 옷깃을 잡는 그 짧은 사이에 고수는 느낀다, 상대가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갖춘 사람인지를.

전화를 통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되더라도, '여보세요'이후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더라도 상대의 억양, 어투, 말투, 분위기 등을 전체적으로 읽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통화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고수는 금세 읽어낸다.

이른바, 콜드 리딩 (cold reading)은, 읽어내는 수준과 범위가 훈련을 통해 확장된 능력을 의미한다. 공전의 히트를 친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엄청난 관찰력을 통한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내는 것이 콜드 리딩 (cold reading)의 좋은 예라 하겠다.


당신의 내공 수준이 궁금하다면, 애써 테스트를 받거나 전문가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당신이 대하는 그 수많은 인간군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것을 읽어내고 그의 심중을 파악하는지를 가늠해보면, 당신의 지금 내공 수준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것은 당신의 문제 해결 능력과 밀접하며 당신의 스트레스 수치를 줄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무엇보다 당신을 지금 있는 위치에서 보다 위로 끌어올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복합적인 수련을 필요로 한다.

먼저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확실히 숨겨져 있는 행간까지 빠르게 읽어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말뿐 아니라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깊이 있는 다양한, 그러면서도 꾸준한 독서는 수련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말하기 역시 의미 없는 수다가 아닌, 정련된 말하기 연습 역시 필수적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단순한 수준의 것이어서는 도움이 안 된다.

검도도 유도도 기본기는 사범에게 배울 수 있으나, 기본기 다음부터는 스스로의 수련과

스스로 단련을 통해 얻게 되는 순간의 깨달음만이 당신의 수준을 수직 상승시켜준다.

하물며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그보다 쉬울 리 만무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의도하는 바를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기본이지만 어렵고,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여 그의 행동화를 유발시키는 것은

단순한 설득의 수준을 넘어서기에 더더욱 어렵지만 그만한 가치를 충분히 갖는다.

정치를 한답시고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자들이 TV에 나온다.

자신이 무슨 말을 떠들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헛소리를 하는 자들이 여의도에 모여있음을 본다.

그들을 보면서 당신이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를 경계하며 마음가짐을 가다듬을 계기를 마련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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