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고소 - 4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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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뭐라고 교단에다가 얘기 했길래요?”
느긋하게 자기 짐 꺼내가겠다며 딴청을 피우던 추 목사가 교단의 지역 노회 이야기가 나오자 날카롭게 바뀐 반응을 보였다.
“짐 가져가신다면서요? 들어오세요.”
교수는 그의 똥줄 타는 모습을 보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른 짐부터 어디 있는지 찾아서 꺼내시지요.”
목사는 영 마뜩잖은 표정으로 뭐라고 하려다가 일단 주방으로 가서 의자를 가지고 싱크대의 가장 윗 칸을 열기 시작했다. 마치 시골에서 늙은 할머니들이 하듯이 싱크대의 손이 닿지 않을 가장 꼭대기 칸에 김치통이 들어있었고 그 안에 비닐로 몇 겹이나 싼 무언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목사가 내려와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보였다.
“지역 노회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그쪽에서 뭐라 이야기하는지 잘 들어보시고, 잘 판단하시면 좋겠습니다.”
“뭐라고, 이 씨...”
교수의 아내가 서 있는 방향을 보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려던 추 목사의 앞으로 교수가 다가섰다. 교수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며 험악한 얼굴로 바뀌며 눈을 부릅뜨자 목사는 급히 말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듯 현관문을 나섰다.
“여기요. 손상된 물품들 목록 리스트입니다. 그날 목사님이 그랬죠? 손상된 부분이 있으면 모두 배상하겠다고.”
“누가 그걸 배상한답니까? 이미 이사한 지가 며칠인데?”
추 목사의 반응은 언제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자기가 말한 약속을 또 어기겠다는 거죠?”
“흥~! 어디 두고 봅시다.”
그의 의미심장한 말투는 여러 가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저주하는 말 그대로 ‘저주의 기도’ 같았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 교수는 아내와 서울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말로 초동 수사를 하는 경찰이라는 자가, 목사에게 저따위로 쓰레기 덩어리를 가져다주면서 그것을 원상복귀로 인정해준다고 코치를 했다면 이미 경찰에 고소한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을 터였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다짜고짜 경찰에게 전화 걸어서 당신이 그렇게 말한 사실이 있느냐고 따지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일단 수사의 진전을 기다리기로 했다.
고소를 한지 두 달여가 지난 6월이 지나도록 중양 경찰서 경제 1팀의 이 경사는 아무런 연락을 취해오지 않았다. 물론, 교단 지역 노회의 총무 목사나 반장 목사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은 없었다. 그들이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추 목사의 범죄행위에 대해 처벌이 멀어져 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교수와 그의 아내는 불쾌감이 내려가지 않는 체기처럼 무엇을 하든 간에 가슴 한쪽 얹저리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달력이 7월로 바뀌던 날, 교수는 중양 경찰서 경제 1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 경사님 되시나요?”
“네. 누구시죠?”
그의 직통번호에 그가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저 지난번 저주의 기도하고, 자기 돌 갓 지난 아기 던지려고 한 목사를 고소한 김 교수라고 합니다만...”
“아...”
뭔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말투고 이 경사가 대꾸했다.
“저 기억하시지요?”
“아, 예. 그런데 어쩐 일이시죠?”
“지난번에 두 달이 수사 종료 기일이라고 하셨는데 두 달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수사에 무슨 문제라고 있는 건지 해서요.”
“아, 그게.... 제가 지금 다른 수사 중에 전화를 받았는데요. 이따 오후에 제가 다시 전화를 드리면 안 될까요?”
“아,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에 전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내내 교수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퇴근하기 직전 즈음이 되어서야 중양구의 지역번호가 찍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네. 중양 경찰서 경제 1팀의 이 경사입니다. 김 교수님 되시죠?”
“네. 전화 기다렸습니다. 바쁘신데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조사가 늦게 끝나서요.”
“네. 수사가 어떻게 된 겁니까?”
교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 그게 아직 수사 중이고요. 결과가 안나와가지구요.”
“이유가 뭡니까? 두 달이 기본적인 수사 기한이고 특별한 경우에만 연장을 신청하는 걸로 아는데요.”
“아, 뭐, 그게 워낙 사건이 많아놔서요.”
“사건이 많다고 모두 뒤로 밀리는 게 아니지 않나요? 이 사건처럼 증거나 증인이 명확한 사건에 뒤로 밀릴 만큼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요?”
교수의 집요한 추궁에 이 경사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며 우물쭈물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큰 문제는 없는데, 그게....”
“혹시 피의자가 아이를 던지려고 한 사실에 대해서 부인을 합니까?”
“네? 아니요, 그건 아닌데...”
“혹시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수사를 위해서 제가 당시 모든 상황을 녹취했으니까 녹취 파일을 보낼 수도 있구요.”
“네? 녹취요? 그날 그 상황을 모두요?”
“처음 친형을 사칭했던 그 늙은 목사와의 대화에서부터 그 난리가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눌러놓았었습니다.”
“아!”
그의 탄식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필요하시면 보내드리구요. 피의자가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인가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굳이 그 파일을 보내실 필요는 없구요.”
“아니면 대질심문도 해도 좋습니다. 그 현장에 성인만 7명이 넘게 있었습니다.”
“아!”
계속해서 나오는 경찰의 탄식이 교수는 못내 거슬렸다.
“저주의 기도를 해독해주신다는 목사님이 있으셔서 그 녹취파일을 보냈는데, 심지어 그 기도문이 라틴어도 아니고 히브리어도 아닌 그저 협박을 위해 만들어낸 헛소리라는 확인 이메일도 받아두었습니다. 그거라도 보내드릴까요?”
“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라구요? 네. 그러면 그건 보내줘 보세요.”
무슨 의도인지 이 경사가 저주의 기도에 대한 부분은 보내달라고 했다.
“혹시 그 사람이 멋대로 가져갔던 마블 대리석을 모두 손상시키고 일실된 상태로 쓰레기 부대에 가지고 왔던데, 가져와서 담당 수사관이 그렇게라도 가져다 놓으면 원상복귀로 인정되니 문제가 안된다고 말했다고 하던데요. 설마 이 경사님이 그런 코치를 하신 건 아니죠?”
“네? 아, 무슨 그런 황당한... 저는, 그러니까 그런 말 같은 거.... 코치라니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가 상당히 당황하며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들으며 교수는 속으로 천불이 났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뭔가 바꾸거나 그를 다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교수는 잘 알았다. 그저 확실한 사실만으로 그가 이상한 장난질을 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그날 일부러 전선을 잡아당겨 끊어버려서 전기가 누전되어 보일러는 최고로 틀어놓은 상태에서 지하수 모터가 돌지 않아 물이 끊기고, 심지어 자기 차를 차고에 넣어놓고 자동 차고 문이 전기 누전으로 열리지 않아서 나가지 못하는 촌극까지 벌였습니다. 그러니 이건 일부러 손상시켰다는 명백한 반증이기도 하구요.”
“아!”
“이 경사님. 이런 부분들 정리해서 추가 진술조서의 형태로, 아까 저주의 기도 부분과 함께 같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사실관계를 피의자가 부인하게 되면 언제든 대질 심문을 잡아주세요.”
“아,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음 조사를 또 약속을 잡아둬서요.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셔야죠.”
급한 나머지 자신의 이메일 주소도 알려주지 않고 전화를 황급히 끊고 도망가려는 경찰에게 교수가 이메일을 묻고 받아 적었다. 그리고 경찰은 바로 도망치듯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하는 내내 교수가 읽었던 경찰의 그 지저분한 속내에 대해 따로 분석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가 빠져나가지 못할 사실 증거와 논리적인 추궁을 통해 사건을 뭉갤 수 없도록 추가 진술조서와 저주의 기도에 대한 분석과 음성 녹취 파일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열흘이 되지 않아 교수의 아내에게 중양 경찰서에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고소하신 사건에 대해서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우편으로 통지서를 발송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맥이 탁 빠지는 소식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흥분해서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아내를 보며 교수는 더 속이 뒤집혔지만, 차분히 아내를 달래며 말했다.
“아니야. 일단 무슨 근거로 죄가 안된다고 판단했는지 보고 나서 흥분하더라도 하자구.”
교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경사가 직접 무혐의 처분을 하며 직접 작성한 통지서를 받고 나서는 도저히 그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다 되어 2020년 7월 26일, 도착한 이 경사가 작성한 통지서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놓으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피의자들이 이사 의사 없이 보증금을 반환받은 사실에 대하여
- 피의자들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전 실제로 이삿짐 용역 계약을 하는 등 이사를 진행한 사실과 실제 당일 이사를 마친 점,
피의자가 돌려받은 돈은 임대차 계약 만료오 인한 보증금을 반환받은 것으로 피의자들이 상대방을 기망하여 새로운 재산상 이득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없는 점으로 혐의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2) 마블 대리석 변상 의사 표시 후 번복하여 변상을 거절한 사실에 대하여
-피의자들이 ‘마블 대리석’에 대한 변상 의사 표시 후 번복 또는 철회한 것은, 이미 반환받은 보증금에서 변상을 거절하는 것으로, 귀하의 새로운 재산상 처분행위로 인하여 재산상 이득을 얻은 사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혐의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 피의자가 알 수 없는 날 점유하고 있던 귀하 소유의 ‘마블 대리석’을 임의로 다른 장소로 옮겼던 사실은 인정되나, 대리석을 다시 찾아 돌려놓은 점과, 돌려놓은 대리석의 보관상태를 참조하면, 개인적으로 은닉하여 취득하려 했거나 타인에게 판매 등 처분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으로 피의자에게 대리석에 대한 영득 의사가 있었음을 인정하기 어려워 민사상 배상 책임은 별론으로, 형사상 횡령 혐의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 당사자들의 진술 및 제출된 사진 등에 의하면 귀하의 주장과 같이 벽난로, 싱크대, 전원등 전선, 수도, 보일러 등이 일부 파손되거나 정상 작동이 되지 않는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런 시설물 등의 파손은 피의자가 귀하의 주택을 임차하고 있던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일상 사용 중 자연파손 또는 과실 파손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어 피의자가 물건의 파손에 대한 변상 책임이 있는 임차인의 지위에서 고의로 위 재물을 손괴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려워 민사상 배상책임은 별론으로, 피의자의 재물손괴 혐의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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