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고소 - 6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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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스승에게 자문을 구한 교수는 먼저 경찰청에 정식으로 수사이의제기를 신청함과 동시에 초동 수사관인 중양서 경제 1팀의 이 경사에 대한 감찰을 요청하기로 했다. 수사이의를 제기할 경우, 그에 대한 비위 감찰을 진행하지 않고 수사과정이 적법했는가만을 따진다는 말도 안 되는 선 긋기를 경찰이 내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에 두 가지 루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원칙대로라면 ‘수사이의’라는 것은 수사결과에 대해 잘못되었으니 다시 살펴봐달라고 하는 제도였는데, 경찰은 그 제도를 마치 자신들의 조직이 깨끗하다는 광고용으로만 쓰고 경찰에 송치한 내용에 대해 검찰이 어떻게 처분하는지에 따라 요식행위로 그 결과를 덮는 것으로 쓰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활용하거나 정말로 수사에 문제가 있어서 그 팀에서 현장에서 잘못된 부분을 적발하여 조직 내에서 자정 역할을 했던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민원인들에게 버젓이 숨기지도 않은 채 추악한 진실을 변명으로 사용했다.
“저희는 수사가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를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수사과정이 적법했는지 아닌지를 보는 곳일 뿐입니다.”
어이없는 자기 고백이고 모순이었다. 수사이의라는 의미 자체가 수사가 잘못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들여보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과정인데도, 과정이 적법한지만을 본다는 것은, 경찰청마다 달려있는 청문감사관실에서 경찰이 직접 뇌물을 수수하는 장면을 찍어오거나 녹취해오거나 뇌물을 준 장본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니 살펴보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과 똑 닮은 말이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었다.
나 역시 경찰 마와리를 돌면서 그 썩은 조직이 어떻게 버젓이 그런 짓을 하는데도 어떤 기자들도 그것에 대해서 기사를 쓰지 않고, 어떤 행안위 관련 국회의원도 그 점에 대해서 지적하거나 개선하려들지 않는가에 대해 의아했다. 하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경찰은 능력도 없고 그저 그런 인간들이 모인 조직이었지만 전국구 조직이었고, 나름 머리를 굴린다는 간부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전국에서 수집되는 상대의 아킬레스건이 되는 정보를 취합하여 자신들의 조직에 함부로 총구를 들이대거나 메스를 들이대려는 자들에게 반대로 더 큰 칼을 들이미는 방식으로 그들의 입을 닫게 했다.
하는 짓은 마약을 파는 조폭들이 하부 조직들을 겁박하는 것과 같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그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조폭이었고, 경찰은 합법적으로 국가가 공인한 나쁜 놈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영화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상상이나 풍자가 아닌, 현실의 아주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것은, 금품과 향응을 받고 수사를 무마해주었다고 하여 수갑을 차고 구속되는 경찰은 있어도 그런 경찰들이 사정 작용으로 경찰의 수사이의제기 과정이나 감찰 과정에서 그렇게 적발되어 처벌되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명징하게 증명되었다.
그런데, 순진한 교수는 모든 경찰 조직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기어코 국민신문고를 통해 수사이의제기와 감찰 요구 두 가지를 모두 제기하였다. 담당이 서울경찰청 수사이의제기팀과 감찰계로 지적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고, 7월 말에 접수된 그 조사는 교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묻기까지 무려 두 달이라는 시간을 꼬박 잡아먹었다.
그리고 그전에 검찰에서는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어 불기소 처분한다는 의견을 송치된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시점에서 보내왔다. 경찰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인 검찰 수사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불기소 이유서에는 아이를 던지려고 한 행위를 인정한 문구가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양심에 찔렸는지, 그 부분을 ‘설사 그런 행동이 있었다 하더라도’라는 생뚱맞은 문구를 살짝 집어넣어 손보는 센스를 보였다. 이미 경찰이 그 행동이 있었다고 규정했음에도 피해자를 불러 단 한 번도 조사를 하지 않은 검찰 수사관이 소설도 아니고, 그런 문구를 감히 덧붙여 작성할 수 있다는 비참한 현재 대한민국 검찰 수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는 다시 한 장, 교수의 데이터 베이스에 추가되었다.
교수는 스승의 조언대로 당연히 항고하기로 했다. 하지만, 스승 발검 무적은 법률 조언을 하며 김 교수에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형사 사건을 검사가 불기소 처분했는데, 다시 그것이 잘못된 처분이니 제대로 수사하라고 항고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한 가지가 있어야만 해. 전관이 항고를 해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만약 김 교수가 정말로 단 한 명이라도 대한민국에 제정신이 박혀 있는 검사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면 논리적으로 항고 이유서를 작성해서 내는 걸 만류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전관을 사서 항고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문적인 전관 검사 출신의 변호사에게 조언을 받는 건 꼭 거쳐보길 바라.”
그렇게 김 교수는 중앙지검에서 검사를 거치고 나와 항고를 전문으로 한다고 인터넷에 광고로 도배질을 하는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사무장으로 보이는 이는, 기본적이 사건 관련 서류와 불기소 사유서까지 모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서류를 모두 보내고 코로나로 인해 직접 만나서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알려와 노트북을 켜고 전관 변호사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박 변호사라고 합니다. 보내주신 서류 검토해보았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대로 제출하면 항고에서 다시 수사를 제대로 하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하하! 왜 저에게 연락하셨죠? 다 아시는 거 아닐까요?”
변호사가 호탕하게 웃으며 김 교수에게 되물었다.
“네?”
“이 당연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경찰에서 덮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저주의 기도에 대한 모욕죄 같은 경우는 현행법상 모욕죄의 성립요건을 피해 가기 좋게, 그 욕설이나 저주의 기도에 사용된 언어를 아무도 해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법은 그를 처벌하지 못합니다. 그건 아시죠?”
“네.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좀 황당하긴 하더군요.”
교수가 시무룩해져서 대답했다.
“그런데, 그나마 경찰에서 대놓고 덮어주겠다고 한 건에 대해서 현직 검사가 그 많은 사건들 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몇 천만 원 몇 억씩 손해가 발생한 사건도 신경 써서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 누가 죽기는커녕 다치지도 않은 이런 사건에 대해 정말로 신경 써서 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죠?”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세상이 도덕책에 쓰여 있는 것처럼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시간이 돈인 사람이라 짧게 결론만 말씀드리죠. 착수비 300만 원을 내시면 제 이름을 넣고 이 사건에 대한 항고 이유서를 작성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착수비를 300만 원을요?”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100% 항고가 먹힌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이 들어간다는 것과 전직 검사였던 사람이 작성하는 항고 이유서는 아무래도 현장에서 늘 보고하던 방식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 작성하는 것이니 먹힐 확률이 지금처럼 장황하게 다 늘어놓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렇긴 한데, 후우!”
교수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300만 원을 들여서 진실을 밝힐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이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작성하는지 자신의 사무장이 작성하고 자신이 첨삭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중앙지검장 출신도 아니면서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검사가 눈에 익은 방식으로 작성은 해주되,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항고를 하면 받아들여줄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김 교수가 여유 있게 느기작거리며 미소 짓는 화면 속의 박 변호사의 물었다.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선생님이 생각해보세요. 일단 대강이라고는 하지만, 일선 검사의 도장이 찍힌 불기소 사유서는 그 사람이 이건 사건이 되지 않는다고 내친 겁니다. 그렇다면 특별하게 그것을 다시 봐야 할 사유나 불가피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인사고과와도 관련이 되는 문제인데 상급자에 해당하는 검사가 이건 처음 살펴보았던 검사가 제대로 보지 않아서 놓친 사건이니 다시 제대로 수사하라고 인정해줄까요? 검사들이 얼마나 서로를 챙겨주는데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건도 그냥 한번 불기소가 나면 덮어버리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경찰이란 놈들이 사건을 제멋대로 뭉개고 손을 타는 이유도 검찰이 이렇게 그냥 넘긴다는 것을 경험상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지요. 자아,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습니다. 잘 생각해보시고, 저희 사무실에 의뢰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그때 연락을 다시 주시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화면을 아웃시키고 사라져 버렸다. 그를 대신해서 다른 화면에 있던 사무장이 아무 친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김 교수를 달랬다.
“저희 검사님이, 아니, 변호사님이. 다른 분들 케이스에 비해서 특별히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면서까지 상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제가 조금 첨언하자면, 지금 처음 고소하신 내용을 살펴보고 불기소 사유서와 비교해봤는데요. 물론 사실이고 증거도 명확해 보이긴 하지만, 이 바닥의 생리를 너무 모르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이렇게 저희 사무실에 연락을 주신 것도 인연이니 제가 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목사라는 작자는 분명히 범죄에 해당되어 처벌을 받을만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경찰에 고소하게 되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최소한 자신이 한 행동이 사실이라는 점은 이 사람도 다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거야 그렇겠죠. 제가 녹취까지 했으니....”
“그렇죠.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냥 경찰에서 부르는 대로 가서 조사에 응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아니죠. 자신이 저지른 죄가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지금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 빠져나가려고 하겠죠.”
“그렇겠죠.”
“그러면 당연히 그 일을 해줄 변호사를 구했겠죠?”
“그렇겠죠. 그런데 변호사를 구한다고 있는 죄가 지금처럼 없어지기로 한다는 건가요?”
“선생님. 생각해보세요. 변호사들은 법조인이기 이전에 이런 일을 수도 없이 처리하는 게 밥줄인 사람들입니다. 맞죠?”
“그렇죠.”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경찰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이 경우에 지금처럼 대강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적당히 무혐의를 받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매번 연구해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네?”
술술 과정을 서술하는 사무장의 설명에 교수가 속이 느글거리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죄가 있는 걸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죄가 없다고 넘어가 줄 수 있는 경찰이나 검찰의 입맛에 맞게 서로 맞춰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서류를 꾸며주고 그들이 원하는 그림대로 넘어가 줄 수는 있다는 거죠.”
“아니, 죄를 짓고도요?”
“아, 물론 당장 그 자리에서 사람을 죽이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거나 하는 경우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심지어는 직접 그 자리에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마저도 그 분야에 닳고 닳은 판사 출신의 전관이 들어가게 되면, 살인은 했지만, 감경받을 수 있는 갖가지 이유들을 만들어내고 심지어 심신 미약이라던가 정신병자라고 판정을 받아서 형을 감형하거나 감옥에 들어가지 않게까지 하는 노하우를 적용하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선생님이 직접 지금 당하셨잖아요? 선생님이 보내주신 증거사진만 보더라도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지금 초동 수사관이 자기가 손수 작성한 무혐의 처리 통지서에 버젓이 아이를 던질듯한 행위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넘어가겠다잖아요? 선생님은 이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십니까?”
김 교수는 사무장의 말에 뭐라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설명은 일목요연했고, 변호사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 그리고 경찰들이 그 박봉에서 어떻게 차를 사고 어떻게 자식들을 과외시키는지 명확하게 주석을 달아 해설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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